동료 알바생 ‘금수저’ 알고 일 꾸며…폭행·자해·공갈 등 CCTV에 담겨 ‘징역 10월’
자해공갈 시작은 이랬다. 지난해 5월 갓 스무 살이던 이 씨는 군대 입대 전까지 한 떡볶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씨는 임금을 체불당했고 자신이 말해봤지만 통하지 않아 어머니 차 아무개 씨가 대신 나서게 됐다.
차 씨는 가게에 “애 아버지도 명문대 나와서 애를 바르게 키웠다. 돈을 목적으로만 아르바이트 한 게 아니다. 남편은 S 사 임원이고 집도 59평에 산다. 인생수업 차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돈 떼이는 경험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침 그 얘기를 떡볶이집 주방장도 듣게 됐다.
2020년 9월 21일 이 씨는 떡볶이집 옆 가게인 맥줏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5일 뒤인 9월 26일 맥줏집 직원 A 씨는 이 씨에게 “퇴근 후 술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막내였던 이 씨는 가기 싫었지만 참석했고 같은 가게 주방 보조이자 친구인 B 씨도 왔다.
이들은 술을 마시다 새벽 6시가 됐고 A 씨는 이 씨에게 ‘자신의 오피스텔 테라스에서 술 한잔 더 하자’고 했다. 이 씨가 자리를 떴다가 늦게 오자 A 씨는 “싸가지 없다”면서 “벽으로 서라”고 했다. 이어 A 씨는 “여기는 CCTV가 없다”면서 이 씨 턱을 잡고 팔꿈치와 주먹으로 명치와 뺨, 팔 등을 때렸다. A 씨는 폭행 중 갑작스럽게 상의를 벗고 오른팔에 문신을 보이면서 위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 씨는 A 씨에게 명치를 맞아 가슴을 쥐며 쓰러졌다. B 씨가 나서 ‘그만하라’며 A 씨를 밀었고 상의를 벗고 있던 A 씨가 일부러 넘어지면서 상처도 입게 됐다. 테라스가 소란스러워지자 주민 신고를 받은 경비원이 올라와 ‘경찰 신고 전에 내려가라’고 했다.
A 씨는 ‘일단 내 집으로 들어가 얘기하자’고 했고 이 씨는 무서워 거부했다. 그러자 B 씨는 “지금 집에 가면 네가 가해자가 된다. 얘기 다 마무리 짓고 풀고 가자”고 했다. 일방적으로 맞았지만, 심리적으로 겁에 질린 이 씨는 어쩔 수 없이 A 씨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A 씨는 이 씨를 화장실로 불러 “너희 집 돈 많냐? 너희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그 사이 B 씨는 현관을 지켰다. 전화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자 A 씨는 이 씨 뺨을 때리면서 “너희 집 59평 아파트고, 아버지 임원이라는데 그럼 부자 아니냐”면서 전화를 강요했다. A 씨가 이 씨와 일한 지 며칠 만에 이런 정보를 알게 된 건 옆 가게 떡볶이집 주방장이 A 씨 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살고 보자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A 씨는 이 씨 어머니 차 씨에게 “이 씨가 때려서 크게 다쳤다. 다쳐서 출근을 못 하고 있다. 치료비도 책임져달라”고 했다.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차 씨가 “우리 애는 한 번도 폭력 등 사고를 친 적이 없다”고 하자 A 씨는 “이 씨가 밀쳤는데 비탈길에 돌벽으로 넘어져서 다 찢어졌다”고 설명했다. A 씨는 “3000만 원을 주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A 씨는 차 씨와 통화를 했고, B 씨는 맥줏집 사장에게 전화하는 등 분주해졌다. 이 틈에 이 씨는 휴대전화도 두고 맨발로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고 경찰에 신고를 요청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이 건너편 파출소가 이 씨 눈에 들어왔다. 공포로 질려 있던 이 씨는 즉시 맨발인 채 파출소로 뛰어 들어갔다.
이 씨가 도망친 뒤에도 A 씨 공갈은 계속됐다. A 씨는 차 씨에게 “진단이 다리 4주, 팔이 3주 총 7주 나왔다”고 하면서 “내가 CCTV 다 확인해봤다”고 했다. 이후에도 A 씨는 지속해서 전화로 ‘치료비를 달라’거나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이 씨가 하도 억울해하자 차 씨는 해당 오피스텔로 찾아가 경비원에게 CCTV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개인정보를 이유로 처음에는 보여주지 않았다. 차 씨가 지속해서 사정하자 경비원이 CCTV를 확인하더니 “경찰에 신고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애매한 답변만 남겼다.
2020년 9월 28일 A 씨는 ‘이 씨에게 폭행을 당했다’면서 거짓으로 고소까지 했다. 바로 다음 날인 9월 29일 이 씨와 차 씨도 A 씨와 B 씨를 무고, 공갈 미수, 폭행, 상해, 감금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런데 반전은 경찰서에 일어났다.
양측이 대질신문을 받는 자리에서 A 씨가 ‘폭행을 당한 사람은 나’라며 소리를 높였다. 조사를 담당한 경찰이 황당해했다. A 씨가 차 씨에게 ‘CCTV에 폭행 장면이 다 나온다’고 했던 점을 언급하며 경찰은 ‘혹시 CCTV 안 봤나’라고 물었다. 경찰은 이들에게 확보한 CCTV를 보여줬다.
영상 속 이 씨는 맞고만 있고, A 씨가 일부러 넘어져서 자해하는 장면이 나왔다. 영상을 보던 A 씨는 곧바로 태도가 바뀌었다. A 씨는 “술에 취해 이 씨 때문에 다친 것으로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재판에서도 계속된다.
검찰은 A 씨를 무고, 공갈 미수, 폭행, 상해 등으로 기소했다. B 씨의 감금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이 씨가 경비원이 왔을 때 떠날 수 있었고 집 안에서 나오는 것이 불가능했다거나 어려웠다고 단정 지을 증거가 없다’고 불기소 이유서에 기재했다. 이 씨는 “당시 폭행을 당한 뒤였고 두 명이 위압감을 주고 있어 도망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집에서 나올 때도 맨발로 도망치듯 뛰쳐나오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지난 7월 A 씨에게 징역 10월이 선고됐다. 수원지방법원 재판부는 “A 씨는 사소한 이유로 이 씨를 폭행했고 상해를 가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거짓말로 이 씨와 어머니 차 씨 등을 협박해 금전을 갈취하려 했다. 일부러 넘어진 것이 명백한데도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부인하면서 ‘술에 취해 착각했다’는 변명을 계속하고 있다”며 실형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A 씨가 폭력 범죄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공갈 범행으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전력도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