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언·악재 불구 보수정당 경로 의존성 덕 승리…공수처 수사·이준석 대표와 관계설정·단일화·TK 지지율 등 풀어야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의 본선 경쟁 등 남은 대선 일정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재명 산맥’ 자체도 위협적인 것이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등 산맥 정복에 앞서 거쳐야 할 언덕들의 높이도 윤 후보로서는 험난하기만 하다.
#경로 의존 굳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은 결국 윤석열 후보가 승리했지만 사실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윤석열 X파일’ 논란으로 도덕성 리스크가 부각됐고 ‘전두환 옹호’ 논란 발언이나 ‘개 사과’ SNS(소셜미디어) 글은 치명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여의도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윤 후보는 1일 1설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수가 잦았고, 그때마다 여론의 난타를 당했다.
경선 막바지 터져 나온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SNS 글은 메가톤급 폭풍우를 몰고 오기도 했다. 윤석열 캠프 한 관계자는 “임금 왕(王) 글자를 손에 쓴 소동도 컸지만 정말 아찔한 장면은 전두환 발언에 이어 개 사과 논란이 나왔을 때였다. 경선 막판으로 가는 시기라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는데 여론조사의 지지율 내려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여파가 컸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충분히 뒤집어질 상황이 나왔고, 여론도 출렁였지만 홍준표 후보의 뒤집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뒤집기를 막아낸 가장 큰 방어막은 보수정당 국민의힘의 전통인 경로 의존성이었다. 한국 보수정당 대선 경선 역사에서 대선을 코앞에 두고 뒤집기가 일어났던 사례는 없었다. 민주당 계열은 2002년 대선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이 뒤집히면서 노무현 돌풍이 나왔지만 보수정당은 그렇지 않았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은 대세론으로 쉽게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고, 1997년 15대 대선에서 9명 후보가 맞붙었던 ‘9룡 대결’에서도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돼 이회창 후보가 대선으로 직행했다.
2002년 대선 역시 한나라당 경선은 대세론을 이어오던 이회창 후보가 최종 경선에서 최병렬 의원, 이상희 의원, 이부영 부총재 등을 싱거운 승부 끝에 가뿐하게 꺾었다. 2007년 17대 대선도 사정은 마찬가지. 대선 1년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대세론을 만들었던 이명박 후보는 그 기세를 이어가면서 BBK 의혹 등 여러 악재에도 불구, 박근혜 후보를 최종 경선에서 따돌렸다.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박근혜 후보 역시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그해 봄 19대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면서 일찌감치 독주체제를 형성, 84.0%라는 역대 대선 경선 사상 최대 득표율을 받으며 보수정당 최종 후보가 됐다.
윤석열 후보 역시 문재인 정부 대항마라는 고정 이미지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대세론을 만들어냈다. 정치 입문은 올해 여름이지만 2019년 여름, 검찰총장 임명 직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에 나선 시점부터 이미 보수정당 지지층은 그를 ‘점찍어’ 둔 셈이다.
결국 지지층 선점을 통한 대세론 경로 형성은 당원 투표 성적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윤 후보를 최종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국민의힘 최종 경선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후보는 5%포인트(p) 내외로 우위를 보여 왔던 기존 여론조사와 달리 48.2075%(17만 5267표)를 얻으며 윤석열 후보(37.9375%, 13만 7929표)를 두 자릿수 격차로 크게 앞섰다. 그렇지만 윤 후보는 당원투표에서 10만 표 가까운 차이로 홍 후보를 압도, 최종 승리를 따냈다.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은 “홍 의원이 26년간 당에 몸담으며 당 대표 두 번, 대선후보 한 번을 했지만 당심을 잡지 못해서 졌다. 당원들은 홍 후보의 인성까지 다 알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홍 후보가 2030 세대에게 강한 지지를 받았을지는 모르겠으나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에서 정권교체 아이콘으로 떠오를 동안 조용히 있었던 것이 책임당원들이 민심을 따르기보다는 더 적합한 후보로 윤석열을 택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시장 선점 효과라는 것이 있다”면서 “라면 업계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우지 파동’ 같은 것이 벌어지지 않는 한 윤 후보가 갖고 있는 ‘정권 대항마’ 이미지를 경쟁 상대들이 넘어서기 힘들었던 판”이라고 분석했다.
#도랑 치고 가재까지
윤 후보는 결과가 좋았고, 과정 역시 좋았다는 정치권의 평가도 있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몸을 만들었고, 큰 부상 없이 승리까지 잡아냈다는 이유에서다. 도랑도 쳤고, 가재도 잡았다는 윤 후보 측 자체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실 윤 후보 정치 일정은 최대한 늦게 국민의힘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 공식 선언 이후 지지율 정체가 만들어지면서 위기가 찾아오자 윤 후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예상보다 훨씬 빠른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입당 당시만 해도 “너무 빨리 들어가면 난타를 당해 조기에 강판당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윤 후보는 물론, 캠프 내부에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진검 승부에 앞서 당내 경선을 통한 예행연습이 앞으로 큰 싸움에서 좋은 약이 됐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매를 맞으면서 맷집도 키웠고 상대의 총질에 응사하는 법도 제대로 익혔다는 것이다.
윤 후보도 이런 판단을 고스란히 털어놨다. 그는 11월 5일 경선 결과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힘 입당 결정이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다. 정치 시작할 때 바깥에 있으라고 권하는 분도 많았지만 국민의힘에 들어와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졌던 비판을 두고도 공부를 많이 했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윤 후보는 “국민들께서 ‘저런 소리를 하냐’ 그런 비판이 나왔을 때 참 정치라는 것은 자기 마음, 또 그것이 표현돼서 국민께 들릴 때 받아들이는 것과 굉장한 차이가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알아야 했다. 이를 배우는 과정이 어려운 과정이었고, 하여튼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윤석열 캠프 소속 한 전직 의원은 “임금 왕 글자, 전두환 옹호 발언, 개 사과 논란 등이 이재명 후보와 맞붙은 본선에서 불거졌다고 생각해본다면 식은땀이 줄줄 나올 정도”라며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좋은 바로 그 기분”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낙연 후보와 다투는 모습을 보이면서 컨벤션 효과를 보지 못한 이재명 후보와 달리 패배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이 모두 아름다운 승복의 모습을 보이면서 유종의 미를 거둔 점도 윤 후보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중도층은 정치인들이 싸우는 모습을 가장 싫어하는데 이런 점에서 이번 경선이 중도층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겨준 이벤트였다는 것이다.
#'재명 산맥' 넘어설까
당내 경선에서 일단 축배를 들었지만 윤 후보의 앞길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 못지않은 고정 지지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산맥으로 불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넘어서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른 장애물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우선, 자신을 향한 현 집권세력의 사법 칼날을 피해야 하는 최대 난제를 안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가 진행 중인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가장 우선적으로 털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후보는 자신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공수처가 압수수색 등 전면적인 강제 수사 기법을 동원 중이어서 만만치 않은 폭풍이 밀려올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시각이다.
아울러 부인 김건희 씨 허위 이력 및 논문 표절 의혹, 그리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서도 윤 후보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윤 후보가 지난 17대 대선의 이명박 후보처럼 보수는 물론 중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작은 위험 요소 하나하나에도 휘청거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대선후보 선출에 따라 만들어질 당내 세력 재편도 윤 후보에게는 큰 숙제다. 제1야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윤 후보는 11월 5일부터 국민의힘 당무 전반을 주도하게 됐다. 사실상 ‘제1야당 대표’ 역할을 맡아 인사, 조직, 재정 등 당무를 총괄한다. 국민의힘 당헌 제74조는 ‘대통령후보자는 선출된 날로부터 대통령선거일까지 선거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준석 대표와 윤 후보 사이에 역할 분담이 얼마나 매끄러울지에 관심이 쏠린다. 윤 후보는 입당 초반 이 대표와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이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경선 결과가 나오면 후보 캠프 인사들이 상당히 고압적 자세로 당무 접수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등판으로 형성된 대선 다자 구도 역시 윤 후보에게는 큰 부담이다. 윤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박빙 승부로 치달을 경우, 안 후보의 몸값이 덩달아 상승하며 단일화 여부가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여러 언덕을 잘 지나 마침내 ‘재명 산맥’을 넘어서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윤 후보는 그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 표를 이 후보가 상당 부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좌불안석이다. 정치권에선 윤 후보가 TK 당원을 중심으로 한 몰표에 힘입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것처럼, 본선에서도 TK에서 80% 이상의 득표율을 올려야 이 후보를 상대로 승리가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이에 맞서 경북 안동 출신의 이재명 민주당 후보 측은 TK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중 역대 최대인 30%의 지지율을 웃돌 경우 윤 후보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을 감안한 듯 이 후보는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당일인 11월 5일 전격적으로 대구를 방문해 표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TK 출신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의 역대 최고 기록인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의 21%를 넘어 20% 후반대를 TK에서 얻어간다면, 윤 후보의 최종 본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