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단 주장·코치 이탈 파문 해법 ‘갈팡질팡’…700억 손실 디스커버리 사태 대처 ‘미적지근’
기업은행 배구단은 2011년 창단한 뒤 2012-2013시즌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창단 2년 만에 통합우승 신화를 창조했다. 이어 2012-2013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6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세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2012-2013, 2014-2015, 2016-2017시즌)을 차지하며 단숨에 여자배구 명문구단으로 떠올랐다. 올해는 도쿄올림픽에 소속 선수들(김수지·김희진·표승주)이 국가대표로 선발돼 활약하면서 4강 신화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2일 주장이자 주전 세터 조송화가 팀을 무단이탈하면서 일명 ‘기업은행 사태’가 시작됐다. 18일에는 김사니 코치마저 선수단을 떠났다. 구단의 설득으로 조송화와 김사니 코치 모두 복귀했지만, 조송화는 16일 재이탈했다.
구단은 선수단 관리 실패와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동시에 경질했다. 하지만 김사니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기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김사니 코치에게 무단이탈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팀의 정상화를 위해 힘써 달라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업은행 배구단이 조송화의 서면 신청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임의해지를 강행하려 했다가 망신을 샀다. 지난 6월 새로 도입된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임의해지 시 선수가 먼저 서면으로 신청하도록 돼 있다. 배구연맹 규약 52조도 ‘선수가 계약기간 중 자유의사로 계약의 해지를 원하는 경우 구단에 서면으로 임의해지를 신청할 수 있다. 구단은 선수의 임의해지 신청 사실을 연맹에 통보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시즌 초반이지만 기업은행 사태로 남은 경기를 우려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기업은행이 새 감독 선임부터 팀을 무단이탈한 선수와 코치에 대한 징계까지 팬들을 납득시킬 수 있도록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감독 임면권을 쥐고 있는 구단주 윤종원 행장의 현 사태에 대한 태도가 미온적이고 어정쩡하다는 의미다. 기업은행 사태와 별개로 과거 기업은행 배구단 내부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기업은행 배구단에선 전임 감독 시절부터 일부 고참 선수들이 불성실한 태도로 훈련을 해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고참 선수들 ‘텃세’가 이어지면서 배구단 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음에도 구단에서 이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기 2년차인 윤종원 행장이 그간 기업은행 배구단의 내부 쇄신을 이끌지 못했다는 평가도 여기서 나온다. 실제 기업은행 배구단 팬들은 커뮤니티 등을 통해 “구단에서 이탈한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앉히는 등 희한한 결정을 했는데 조직 분위기상 구단주 직접 지시는 없었더라도 (윤종원) 행장 부임 후 그의 지휘 방침에 맞춰 직원들이 일처리를 그리 하지 않았을까 싶다” 등의 의견을 내보였다. 윤종원 행장이 구단주로서 운영 능력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 기업의 스포츠단을 총괄하는 인사는 "물론 단장과 감독에 대한 임면권은 구단주에 있고, 최종결정도 구단주가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그러나 스포츠단 스태프가 구단주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끔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금융 업무와 스포츠재단이 분리돼 답변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또 IBK기업은행 스포츠재단 측에 한 시간 간격으로 일곱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회의'를 이유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윤종원 행장은 2019-2020시즌이 한창인 지난해 1월 제26대 IBK기업은행장으로 취임했다. 거시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선임행정관(노무현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이명박 대통령), 경제수석(문재인 대통령)을 거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그러나 윤종원 행장은 취임 당시 청와대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기업은행 노동조합의 출근 저지를 당하며 국내 금융권 역사상 최장기 출근 저지 CEO(최고경영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배구로 유명한 인창고등학교 출신인 윤종원 행장은 평소 배구와 골프 등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종원 행장 취임 후 공교롭게도 기업은행 배구단의 성적은 과거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2019-2020시즌에는 8승 19패로 6개 구단 중 5위라는 창단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흥국생명에 패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비록 정규리그 3위로 2019-2020시즌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지난해 덕장으로 알려진 김우재 감독 체제 아래에서도 잡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올 시즌 성적은 더 처참하다. 개막 후 내리 7연패를 당했다. 여자부 신생팀이자 7구단 페퍼저축은행과 2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3-2로 간신히 이겨 연패에서 벗어났지만 곧바로 기업은행 사태가 터졌다. 구단을 향한 팬들의 신뢰는 곤두박질쳤다.
신뢰를 추락시킨 일은 기업은행 금융부문에서도 발생한 바 있다. '디스커버리 사태'다. 디스커버리 사태는 기업은행이 2017~2019년 판매한 ‘디스커버리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와 ‘디스커버리US부동산선순위채권펀드’에서 환매 중단이 발생한 사건이다. 미국 현지 운용사가 펀드 자금으로 투자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기업은행에서만 총 761억 원(글로벌 605억 원·부동산 156억 원)이 상환되지 못했다.
논란이 커지자 윤종원 행장은 지난해 6월 디스커버리 피해자들과 만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피해자 면담은 딱 한 번뿐이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디스커버리펀드 투자 피해자 2명에게 각각 64%, 60%를 배상하라는 조정안을, 나머지 피해자들에게는 투자원금의 최소 40%에서 최대 80% 내에서 보상하라는 배상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100% 보상안을 요구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지난 11일 기업은행 본점 로비에서 디스커버리 사태 피해자들이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우리도 한때는 기업은행의 VIP 고객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지난 17일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시행 후 기업은행과 디스커버리 피해자들이 재면담을 실시했다. 사태 해결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할 윤종원 행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윤 행장이 일련의 사태들을 더 이상 회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서 배구단 갈등, 디스커버리 사태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시중은행보다 모범이 돼야 하고 스포츠재단 운영에서도 정도경영이 이뤄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구단 내부 갈등 상황에서 윤종원 행장이 출장길에 올랐는데, 은행 수장으로서 업무상 떠난 것이겠지만 디스커버리 사태처럼 (배구단 사태에 대해) 시간을 끌면 안 된다”며 “이미 배구단 내부 갈등으로 팬들의 신뢰를 잃었고, 디스커버리 사태로 고객 신뢰와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다.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윤종원 행장이 구단주로서, IBK기업은행 수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