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내역 밝혔지만 일부 누락 및 정보 삭제…신한-동부 사이 거래 5건 내용 지워져 아리송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였던 권오수 회장이 2009~2012년 주가조작 ‘선수’로 불리던 이정필 씨 등과 공모해 주식 1599만 주(636억 원 상당)를 불법 매수하는 등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이 사건 주요 혐의자들은 최근 줄줄이 구속됐다. 권 회장과 공모해 주가조작에 뛰어든 투자회사 대표 이 아무개 씨 등 3명은 10월 25일과 11월 5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뒤 이미 기소됐다. 주가조작 핵심으로 알려진 이정필 씨는 10월 6일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피했다가 37일 만인 11월 12일 검거돼 구속됐다.
권오수 회장은 11월 16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검찰은 권 회장이 주가를 띄우기 위해 회사 내부 호재성 정보를 유출해 매매를 유도하고, 자신이 관리하는 계좌로 허수 주문을 내거나 외부 세력을 동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수사만을 남겨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건희 씨를 제외한 이번 사건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인물들이 모두 구속됐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쌍특검 콜? 대선정국 들이닥친 ‘특검의 시간’ 어떻게 흘러갈까).
김건희 씨와 이정필 씨는 2010년 2월쯤 권 회장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김 씨는 이 씨에게 자금을 관리하도록 10억 원이 들어 있는 신한증권 계좌를 맡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씨는 주가조작에 이용될지 알면서도 자신의 10억 원 계좌를 넘기는 등 ‘전주’ 노릇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석열 후보 측은 “김건희 씨는 이정필 씨가 골드만삭스 출신 주식 전문가라고 소개 받아 2010년 1월 14일 신한증권계좌를 믿고 일임했다”며 “네 달 정도 맡기니 도이치모터스 외 10여 개 주식을 매매했는데, 4000만 원가량 손실을 봤다. 그래서 같은 해 5월 20일 남아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 모두를 김건희 씨 명의 별도 계좌로 옮김으로써 이정필 씨와 관계를 끊었다”고 해명했다.
윤 후보 측은 2013년 경찰이 내사를 진행한 바 있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것은 혐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여권에선 10년 넘게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한 부분이 오히려 석연찮다고 반박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 말이다.
“10년 전에 벌어진 사건인데 이제 와서 관련자들이 모두 구속됐다. 그만큼 혐의가 확실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수사 단계상 김건희 씨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작에 했어야 한다. 입건을 하든, 기소나 불기소 판결을 내리든 일단 김 씨를 먼저 불러야 하는데 전혀 움직임이 없다. 검찰 수사가 김건희 씨 앞에만 가면 멈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의 김건희 씨 연루 가능성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제기됐다. 10월 15일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윤석열-홍준표 맞장토론’에서 홍준표 의원이 문제를 지적하며 “(김건희 씨) 신한은행 계좌 공개할 수 있나”고 물었고, 윤석열 후보는 “2010년 때 계좌 공개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윤석열 캠프에서는 닷새 뒤 23장 분량의 김건희 씨 신한증권 계좌 거래내역을 공개했다. 이 내역에는 2010년 1월 14일부터 2월 2일까지 도이치모터스 주식 57만 3000여 주(14억 5000억여 원)를 집중적으로 매입한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홍준표 의원 측은 “윤 후보가 공개한 주식 거래내역은 총 62쪽 중 38~60쪽, 2010년 1~5월 4개월치 매집 내역만 발췌했고, 상당 부분을 임의로 삭제해 수정한 것”이라고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씨가 이 씨와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하는 2010년 5월 20일경에도 도이치모터스 주식 22억 원 상당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었다”며 “언제, 얼마에 매도해 얼마의 실현이익을 얻었는지가 국민적 의혹의 핵심이다. 실현이익이 확인되는 계좌 거래 내역은 모두 숨긴 채 나머지 거래 내역만 일부 발췌·편집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윤 후보 측은 “홍 의원이 말하는 주가조작이 일어났던 시기는 2011년, 2012년인데 그때는 주식 거래를 하지 않아 거래가 없었다”며 “거래가 없었는데 어떻게 하냐”고 항변했다.
실제 2010년 5월 20일 이후엔 신한증권 계좌에서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윤석열 후보 측이 공개한 계좌 거래내역을 보면 조회기간이 2009년 1월 1일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 2년이다. 공개된 페이지는 총 62쪽 중 38~60쪽까지다. 5월 20일부터 12월 31일까지 거래내역은 공개되지 않은 61쪽과 62쪽에 적혀 있다.
1쪽당 10건가량의 거래내역이 적혀있다는 것으로 추정해보면 이 기간 대략 20건의 주식거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시세 조종을 위해서는 거래가 활발해야 하는데, 이 계좌를 통해서는 주가조작을 하지 않았다고 해석된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앞서 윤석열 후보 측도 언급했지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2011년에도 진행됐다. 경찰의 2013년 내사 보고서에서는 2011년 11월을 주가조작 ‘작전’ 종료 시점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김건희 씨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2011년 주식 거래내역과 매도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여권에선 주식 거래내역 일부 내용이 지워진 점도 문제를 삼는다. 윤 후보 측은 내역 중 개인정보 및 도이치모터스 외 다른 정보들에 대해서는 삭제하고 공개했다. 그런데 삭제된 부분 중 도이치모터스 주식 출고 관련 사항도 있었다. 앞서 윤 후보 측은 “5월 20일 남아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 모두를 김건희 씨 명의 별도 계좌로 옮겼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 주식 거래내역을 보면 5월 20일 5번에 걸쳐 도이치모터스 주식이 김건희 씨 명의의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과 거래가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정확하게 어떤 거래인지가 삭제돼 있다. 윤 후보 측 설명대로라면 도이치모터스 거래구분에 ‘타사출고’라고 적혀있어야 한다. 다른 거래들의 경우 ‘매도’ ‘매수’ ‘이체출금’ 등을 삭제하지 않고 남겨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김건희 씨가 동부증권에 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주가조작에 활용하기 위해 신한증권으로 ‘입고’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 감추기 위해 거래구분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에 윤 후보 측은 “‘동부(증권)로 적힌 내역 5건’은 전부 ‘출고’로 돼있다”면서도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 수사와 연관돼있고, 여러 사안이 있어 현재로서는 공개하기가 애매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김건희 씨가 보유해온 약 82만 주의 도이치모터스 주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잔고 변동내역을 공개하면 된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선대위에 몸담은 한 민주당 의원은 “거래내역은 모든 계좌의 움직임을 보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김건희 씨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언제 얼마나 보유했고, 얼마에 팔았는지 등 잔고의 변동 과정을 공개하면 의혹을 씻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후보 측 한 관계자는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연루 혐의를 찾아내지 못하니, 검찰도 소환조사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공개된 김건희 씨 증권 거래내역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니 민주당 측에서 괜한 트집을 잡고 논점을 흐리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추가적인 정보 공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마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