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논란 신형욱 감독 별다른 징계 없어…배후에 고위 임원 H씨가? ‘한체대 카르텔’ 뒷말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체조는 대약진했다. ‘여홍철의 딸’ 여서정은 도마에서 여자 체조 역사상 첫 메달을 획득했다. 남자 도마 종목에선 신재환이 한국 체조 역사상 2번째 금메달을 안기는 쾌거를 이룩했다. 신재환은 금메달을 획득한 뒤 신형욱 남자 체조 국가대표팀 감독과 머리를 맞대며 기쁨을 만끽했다. 신 감독은 2017년 남자 체조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 4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이란 성과를 냈다.
신재환이 금메달을 획득한 순간 함께 기쁨을 나눴던 신 감독은 3년 전 은폐된 국가대표 선수 폭행 의혹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한 체조계 관계자는 “2018년 초 한 국가대표 선수가 감독으로부터 폭행 및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선수촌을 무단이탈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체조협회는 사건의 초점을 지도자의 폭행 및 폭언이 아니라, 선수의 선수촌 무단이탈 쪽으로 맞췄다”면서 “협회는 A 씨에 대해선 퇴촌 조치했고, 지도자들은 경고 조치를 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체조협회에 폭행사건 관련 경위서를 제출했다. 여기엔 A 씨가 신형욱 감독으로부터 받은 폭행 및 폭언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 일요신문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이 경위서를 단독 입수했다.
경위서는 2018년 2월 13일 작성됐다. 경위서에 따르면 A 씨는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이탈한 이유는 기계체조 국가대표팀 감독님의 폭행과 관련된 내용도 있지만, 폭행 이후 저에게 했던 무시와 차별, 무관심 등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자신이 피해를 당한 사실을 명시했다. 다음은 A 씨 경위서 내용이다.
(2017년 11월 중순경)A 씨의 무단이탈, 폭행 의혹 등이 발생했을 당시 체조협회는 이 문제를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조협회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시 회의에서 협회 전무가 ‘상벌위원회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선수 무단이탈에 대한 걸 갖고 논의를 하라’고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철봉 종목 기술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실수가 나왔다. 그런 과정에서 감독이 화를 내면서 “왜 그렇게 하냐”고 묻기에 솔직하게 기술을 잊어버린 것 같아 “까먹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감독이 “지금 뭐라고 했느냐. 까먹은 것 같은데요?”라고 하면서 이리 오라고 했다. 전체 선수가 운동하고 있는 체조장 철봉 앞에서 손바닥으로 뺨을 3대 맞고 광대뼈와 가슴 등을 주먹으로 3~4차례 맞았다. 엉덩이를 발로 차는 등 참기 힘든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바로 (감독이 A 씨를) 탈의실로 불러 입에 담기 힘든 심한 욕(개XX, XXX끼, X만한XX, XX놈아)을 하면서 “감히 너 따위 XX가 나한테 이럴 수 있냐. 너는 운동할 자격도 없으니 운동하지 말고 가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탈의실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약 5분 정도 있다가 (감독이) 종이 2장을 들고 와서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내가 왜 맞았는지도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는데 반성문을 쓰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 거짓된 반성문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반성문 제출 이후부터 약 2주간)
일본 전지훈련을 가기 전까지 팀 파트 훈련에 제외됐다. 다른 선수들과 떨어져서 코치님도 없이 혼자 운동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감독님은 나한테 어떠한 관심을 떠나 말 한마디 하지 않았으며, 나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시작했다.
혼자 운동하는 2주 동안 코치가 “감독님께 잘못했다고 하라”고 권유했다. 팀 파트 훈련에 참가하고자 2차례 감독님 방에 찾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감독은) 내가 온 것을 확인하고 “가라”고 한마디하고 문을 닫았다. 그 후 나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더 심해졌다.
(2017년 11월 5일 진천선수촌)
진천선수촌으로 이사한 날 감독님 방 청소를 했다.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라 해서 나는 정말 방바닥을 걸레로 두 번이나 빡빡 밀었는데 (감독이) 확인을 하고 누가 닦았냐 물어보고 (닦은 사람을) 불러오라 했다. 감독 방에 갔다. 감독은 “먼지가 그대로 있는데 이게 청소한 거냐”라고 하면서 뺨을 1대 때렸다. 너무 억울했다. 깨끗이 닦으라고 해서 혼날까봐 정말 열심히 그리고 두 번씩이나 밀었는데도 똑바로 하지 않았다고 혼이 나고 맞은 것이 너무 속상하고 억울했다.
(2018년 1월 28일 진천선수촌)
일요일에 외박하고 복귀했다. 감독이 체육관 청소를 하라고 했다.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음 날 혼이 났다. 감독은 운동이 끝나고 집합했을 때 나를 콕 집어 “야 A 너네 집은 갑부야? 집에 청소부 10명씩 데리고 있어? 청소 안 배웠나. 청소할 줄 모르나”라며 따로 혼을 냈다. 다 같이 청소했는데 왜 나한테만 따로 이러는지 억울했다. 차별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1월 29일 진천선수촌)
마루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다쳤는데 다친 직후 아무도 내게 오는 사람이 없었다. 담당 코치만 잠깐 와서 “어떻게 그런 걸 하다가 발목이 돌아가느냐”라고 말한 것 외엔 내게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
(수강신청 관련)
학교 수업 때문에 선수촌에서 경기도 OO에 있는 학교까지 왔다갔다해야 한다. 학교를 다녀오면 자꾸 시간이 늦어서 눈치를 봐야 했다. 어느 날 수강신청하는 날에는 감독이 “이 수업은 왜 듣냐. 이건 빼라. 넌 운동이 중요하지 학교가 중요하냐. 학교가 중요하면 거기서 운동하지 왜 여기서 이렇게 운동하고 있냐”라면서 내 가슴을 주먹으로 2대 쳤다. 그 수업을 빼면 졸업할 때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못할 수도 있다. 감독 강요에 못 이겨 수업을 2강좌 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폭행, 언어폭력, 무관심과 차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여 지금 이 상황까지 와 선수촌을 이탈하게 됐다. 지금은 그 사람들과 단 5분도 같은 공간에서 숨 쉴 수 없을 것 같다. 진천선수촌은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 돼버렸다.
이 관계자는 “무단이탈을 했던 선수 A는 퇴촌했고, 감독과 코치들은 구두 경고 조치 해서 끝내자고 얘기가 됐다. 그 가운데 선수는 퇴촌을 시키고 지도자는 구두 경고만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고, 이에 따라 지도자들에게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지도자가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고 했다.
사건 당시 선수들에 대한 상담을 진행한 한 체조인은 “선수들을 상담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이것은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일부 선수들은 A 씨가 훈련 중 폭행을 당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고 했다.
체육 단체에서 특정인에 대한 공식적인 징계를 논의하는 회의는 상벌위원회다. 그런데 이 사건은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논의됐다. 체조협회는 이 사건과 관련해 상벌위원회를 따로 열지 않았다. 사건은 선수 A 씨가 퇴촌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복수 체조인은 해당 사건을 무마한 배후로 당시 전무 직을 수행하던 체조협회 고위 임원 H 씨를 지목했다.
H 씨는 경기인 출신으로 18년 동안 체조협회 임원 신분을 유지한 인물이다. 한국체대 교수이기도 하다. 폭행 논란 중심에 선 신형욱 감독은 H 씨의 조교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선 체조계 내부에서 한국체대 출신들이 주류로 떠오르면서 그들만의 카르텔이 태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 체조계 원로는 “A 씨 대한 폭행 및 폭언, 왕따 논란 등이 불거졌는데 한국체대 출신 국가대표 지도자가 의도적으로 다른 학교 출신 선수를 찍어 누르고 협회가 이를 무마한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출하기도 했다.
대한체조협회를 둘러싼 국가대표 선수 폭행 의혹과 관련해 신형욱 남자 기계체조 대표팀 감독은 12월 1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지도 차원에서 주의를 준 것은 있지만 폭행이나 폭언은 일절 없었다”면서 의혹을 부인했다.
12월 2일 H 씨는 신 감독과 사제관계에 의해 사건이 은폐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해당 건과 관련해 체조협회 공정위원회와 스포츠윤리센터에서 조사 중”이라면서 “사건 발생 당시에 있었던 일들은 협회 절차를 다 거쳐서 위원회를 통해 조사를 했고 이사회를 통해 다 보고가 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H 씨는 “A 씨 관련 건은 당시 협회에 제출하지도 않았던 그런 자료들이 최근에 협회를 좀 ‘디스’하는 입장에서 그런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그 여부를 지금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