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한 일처리 탓” 피해 호소 급증…보험사 책임 회피 못하게 해야 지적도
손해사정은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공정하고 객관적인 손해사실 확인과 손해액 산정으로 적정한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손해사정사는 보험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 사고의 경위를 조사해 손해액을 계산하고 보험금을 합당하게 정하는 일을 한다. 가입자가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손해사정사는 가입자의 보험금 지급 정당 사유를 판단한다.
손해사정사는 보험사 일을 처리하기에 얼핏 보험사 직원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손해사정사가 모두 보험사 소속 직원은 아니다. 한국손해사정사회에 따르면 손해사정사는 △고용 손해사정사 △위탁 손해사정사 △독립 손해사정사로 구분된다. 고용 손해사정사는 보험사가 직접 고용한 사정사를 말한다. 위탁 손해사정사는 보험사의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아닌 손해사정사법인에서 보험사로부터 내려받은 업무를 수행한다. 독립 손해사정사는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손해사정사로 보험사와 관련 없이 보험소비자가 직접 선임한다.
이처럼 손해사정사별로 비록 소속은 다르지만 이들은 보험소비자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손해사정사들이 보험소비자들의 권익 보호에 힘쓰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에도 손해사정사들이 치료 횟수 정보를 거짓으로 전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줄이려는 행태가 적발되고 있다.
지난 6월 인천의 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50대 최 아무개 씨는 손해사정사에게 잘못된 치료 횟수 정보를 전달받았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당시 넘어지면서 좌측 손과 우측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최 씨는 인천시를 통해 도로의 부실 공사 때문에 넘어진 것을 확인했다. 이후 인천시는 영조물배상책임보험에 따라 한국지방재정공제회(공제회)를 통해 최 씨에게 삼성화재를 연결해줬다.
삼성화재는 현재 공제회 담당 보험사다. 인천시 소속 한 건설과 공무원에 따르면 공제회에선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제금을 받아 재해 복구 지원을 위한 보험사 가입 등을 이행한다. 즉, 인천시에서 최 씨의 사고 경위를 공제회에 전하면 공제회에서 지정된 보험사(삼성화재)를 지자체를 통해 피해자에게 연결해주는 셈이다.
최 씨는 정형외과·피부과·한의원에서 부상에 따른 진단서와 전문의 소견서 등을 받아 삼성화재와 위탁계약을 맺은 A 손해사정사업체(A 업체)에 제출했다. 최 씨에 따르면 A 업체 소속 손해사정사 B 씨는 지난 7월 “비급여 항목 치료와 관련해 도수 치료 4회, 체외충격파 치료 4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로부터 4개월이 지난 뒤 최 씨는 B 씨의 얘기와 달리 도수 치료 10회, 체외충격파 치료 6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올 7월 B 씨가 전한 대로 도수치료를 4회까지만 진행했다”며 “손해사정사가 고지를 제대로 했다면 이달 전까지 도수치료를 10회 받았을 것이고 이는 즉시 상해 회복과 예후에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치료 횟수에 대해 거짓말 한 이유를 B 씨에게 묻자 ‘지식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는데 (B 씨가) 인천시에는 ‘다른 보험사와 헷갈렸다’고 전했다”며 “이런 사례가 나만 있겠느냐. 현재 왼쪽 엄지손가락이 잘 안 접힌다. 지난달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분개했다.
A 업체와 위탁계약한 삼성화재도 도수 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등 비급여 항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씨는 “삼성화재 측에 이 사태를 전했더니 보상 관련 부서의 한 직원이 ‘(삼성화재) 내부지침으로 비급여 항목(도수 치료 등)에 대해 횟수 제한을 두고 있다’고 안내했다”며 “해당 팀 선임이라는 직원이 이후 ‘(비급여 항목에 대한 치료 횟수 제한이 담긴) 내부지침은 없고 손해사정사가 실수한 것이다’라며 잘라 말했다”고 언급했다. 같은 부서 직원들이 비급여 항목에 대한 내부지침 여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최 씨는 삼성화재 타 부서에서도 “‘공식적으로 비급여 항목에 대한 치료 횟수 제한이 담긴 내부지침은 없다’고 했다”고 부연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정확히 알아봐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손해사정사의 치료 횟수 허위 고지 등 잘못된 부분이 확인되면 해당 손해사정사 업체에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거나 계약상 불이익을 주는 정도의 제재를 가한다”고 말했다.
손해사정사가 병원 소견서를 입맛대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6월 롯데손해보험(롯데손보)을 통해 간편심사보험에 가입한 C 씨는 백내장 수술 진행 후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심지어 과거 암 치료력이 있다는 이유로 계약이 해지됐다. 롯데손보 간편심사보험의 경우 3개월 이내 입원·수술·추가검사 필요소견, 3년 이내 입원·수술(제왕절개수술 포함), 5년 이내 암 진단·입원·수술이 없으면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C 씨는 당시 “암 치료를 받은 것은 6년 전이고 그 이후로는 암으로 수술이나 입원 등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알고 보니 C 씨 담당 손해사정사가 병원의 암 결절 소견을 간암으로 조작해 고지위반으로 보험을 해지시킨 것. C 씨는 “이 사실을 늦게 알았다”며 손해사정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연락이 두절된 사례도 있다. D 씨는 지난해 11월 자녀의 성조숙증 의심증상으로 내원해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자녀가 질병코드 E301의 성조숙증 진단을 받아 가입돼 있던 교보생명의 무배당교보실손의료비보험을 통해 1차 치료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D 씨는 같은 해 12월 2차 치료비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담당 손해사정사는 지급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 기준상 나이가 초과됐다는 이유다.
그러나 D 씨는 해당 보험의 약관상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진료받은 경우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D 씨는 “보험 가입 당시 내가 해당 보험사의 설계사였고 실제로 질병 치료 목적이 명백하면 나이가 지나도 괜찮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보상을 받고 있다”며 “본사와 손해사정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반박했지만 (손해사정사 측은) 답변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보험업법 제189조 제3항 및 보험업법 시행령 제99조 제3항에는 손해사정사의 금지행위로 △고의로 진실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손해사정을 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손해사정 업무를 지연하거나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고 손해액 또는 보험금을 산정하는 행위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 중 손해사정사가 고의로 진실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손해사정을 한 경우 보험업법 제204조 제1항 제8호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전문가들은 손해사정사들이 보험소비자에게 불신을 주는 행위들을 차단하기 위해 보험사에서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손해사정사의 의무 위반 시 해당 보험사에도 적절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험사가 고용한 손해사정사가 공정한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로 인해 소비자가 피해를 봐도 보험사의 처벌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위 사례들과 같은 재산상의 손해를 보상해주는 목적으로 하는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손해보험협회에서 공시한 민원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3분기 국내 17개 손해보험사로 제기된 민원 건수는 2만 963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7% 증가했다. 보험사별로는 삼성화재의 민원이 601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 DB손해보험(5287건), 현대해상(4661건) 순이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손해사정사의 활동이나 손해사정회사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실질적 지배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계약서 관계에서만 갑과 을이 아닌 현장에서도 손해사정사들이 팩트 체크를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보험소비자에게 전달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발을 빼는 자세를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해사정사들을 향해선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했다. 이 관계자는 “손해사정사는 공평무사해야 하는 직업”이라며 “보험소비자의 신뢰도가 손해사정사라는 직업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명했다.
보험소비자가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는 독립손해사정사 제도를 이용하라는 추천도 나온다. 보험사를 통해 배정받은 손해사정사보다 피해에 대한 보상과 보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훈 한국손해사정사회 사무총장은 "보험사를 통한 손해사정사는 과거력을 조사하는 등 보험금 미지급 근거를 찾는 데 힘을 쏟는 반면 독립손해사정사는 보험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데 좀 더 앞장서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