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2제도 시행 영향 3학년 이후엔 다수가 축구 포기…선수 선발·육성 어려움 호소
#U-22제도의 빛과 그림자
과거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부분 명단을 차지하던 올림픽 대표팀, U-20 대표팀 등은 이제 대부분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다. 결승 진출 신화를 일군 2019년 U-20 월드컵에 참가한 21명 중 19명이 프로에서 활약하던 선수였다. 이들 중 14명이 K리그에서 소속돼 경기 경험을 쌓았다.
U-22제도가 시행되면서 2021시즌에도 스타가 탄생했다. 단연 관심을 받은 선수는 수원 삼성 소속 정상빈이다. 지난해까지 고등학생이던 정상빈은 이번 시즌 K리그 데뷔전을 치러 꾸준히 경기에 나서며 22경기 6골 2도움을 기록했다. 리그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도 발탁,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U-22제도에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도의 변화에 따라 빛이 있는 만큼 그림자도 생겨났다. 그 피해를 대학축구가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부터 아주대학교 축구부 지휘봉을 잡고 있는 하석주 감독은 "대학축구 현장의 상황은 심각하다"며 "실력 있는 선수들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 다수가 프로로 가고 대학생 선수들도 1, 2학년 재학 도중 프로에서 뽑아간다. 그러다보니 요즘 대학 축구부에는 '졸업'에 대한 개념이 없다. 3, 4학년 선수들은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많은 선수들이 축구를 그만두거나 군대로 간다"고 털어놨다.
에이전시 업무를 병행하는 최명진 JMJ 스포츠컴퍼니 대표는 "과거에 비해 3, 4학년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며 "실력이 있는 선수라고 하더라도 3학년 이후로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대학 무대 지도자로 활약한 오승인 광운대학교 감독도 "대학축구는 지금 엉망"이라며 "과거에 비해 하향평준화가 되고 있다. 막을 수 없는 흐름인 것도 맞지만 분위기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대학 축구
축구계 관계자들은 대학축구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산하 연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일부 대학팀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확실히 요즘 대학축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실감된다"고 말했다.
한 축구 에이전트는 어린 선수들의 무분별한 프로행을 경계하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했다가 대부분 중퇴하고 프로에 입단한다"면서 "각 팀마다 매년 많게는 10명 내외의 신인들을 선발하지만 그중 프로 무대에 오랜 기간 살아남는 인원은 10~20% 정도다. 이들이 다시 프로팀에서 나오면 갈 곳이 없다. 축구를 놓지 않고 다시 도전하려는 선수들은 비인기 대학이나 창단 이후 역사가 짧은 대학에 편입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규모가 작은 대학들은 조금이나마 성적을 끌어올리려 편입을 장려한다는 이야기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학 선수들의 프로 입단 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최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고교 선수들을 대상으로 준프로 제도를 내놨다. 대학 선수들 대다수가 프로에 입단하려면 대학교를 그만두고 간다. 이 과정에서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학교 측에서 환영할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준프로 제도'는 고교 선수들이 프로 생활을 병행할 수 있게 만든 제도다. 고교생 신분으로 준프로 계약을 맺으면 평소 프로 구단에서 훈련을 하다가도 프로 경기 출전이 여의치 않으면 고교팀에서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준프로 선수들은 고등학교와 프로에서 동시에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선수 선발의 어려움
지도자들은 선수 유출뿐 아니라 최근 대학의 선수 선발 과정도 운영상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학력 관련 특혜 논란이 일었던 '정유라 사태' 이후 특기생 선발 절차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팀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감독인데 원하는 선수를 뽑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하석주 감독은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여섯 개 대학에 원서를 넣는다. 선수도 지도자들도 진학 결과를 알 수 없다"며 "고교 무대를 다니며 점찍어둔 선수가 있어도 '우리 학교도 한 번 (원서) 넣어봐라'라고 말하는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오승인 감독도 "선수 선발에서 학교 측이 관여하는 부분이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인사들이 선수를 단 1시간 정도만 지켜보고 당락을 결정한다. 학교 측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제도가 그렇다"고 말했다.
대학 측도 이 같은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석주 감독은 "어렵게 선수를 뽑아놔도 1~2년이 지나면 프로에 입단한다. 지도자로서 어느 정도의 성적도 내야 하는데 팀 전력을 유지하기가 참 어렵다"며 "학교에서는 4년을 다니고 졸업을 하는 학생을 원한다. 특기생을 뽑을 때는 장학금, 훈련시설, 합숙 등 많은 지원을 약속한다. 하지만 졸업까지 하는 선수 숫자가 많지 않다 보니 학교 측에서도 난색을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하석주 감독은 "과거엔 3학년 정도에 프로팀에 입단하면 일반 학생들이 '취업계' 같은 것을 내듯이 선수들도 리포트 등을 제출하면서 졸업을 하게 해줬는데 '정유라 사태' 이후론 그런 것도 못하게 됐다. 입학해서 졸업까지 가는 선수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안은 없나
한 대학축구 관계자는 K리그에서 시행 중인 U-22제도에 의문을 표했다. 그는 "유망주를 길러내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은 맞다. 한국 축구에 필요한 제도인 것도 알겠다"면서도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제도인지는 모르겠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22세 이하 선수를 5분 이내로 짧게 출전시키는 경우도 많지 않나. 그렇게 뛰게 하려고 선수를 뽑아가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K리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U-22제도를 강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이어지며 세계 축구는 교체카드를 5장까지 활용할 수 있게 장려했고 K리그는 1부리그에서 이를 적용시켰다. 하지만 22세 이하 선수가 최소 1명 이상 선발로 출전해야 하고 또 다른 1명이 교체로 경기장을 밟아야 교체카드 5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교체카드가 줄어드는 페널티를 받는다. 이에 일부 구단들은 22세 이하 선수를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만 뛰게 하는 '꼼수'를 사용하기도 했다.
앞의 대학축구 관계자는 "그런 상황이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 맞는 것인가 묻고 싶다. 3분, 4분 뛰게 하려고 어린 선수들을 입단시켰나. 억지로 어린 선수들을 뛰게 하면서 오히려 베테랑 선수들의 기회가 사라지는 부작용도 있다"며 "결국은 U-22제도에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부 리그에서만 연령제한제도를 두는 것은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대한민국의 최상위 성인리그인 K리그1과 K리그2 외에도 하부리그인 K3, K4리그에도 연령제도가 운영되기도 했다. 이들의 기준은 K리그보다도 낮은 21세였다.
오승인 감독은 "제도 운영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도 들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프로리그, 국가대표가 우선인 것은 맞다. 대학축구가 과거에 비해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라며 "하지만 여전히 80개가 넘는 대학팀이 있다. 선수를 육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지금처럼 무시당하기만 해선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5년 가까이 대학 감독 생활을 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내가 할 일은 후배 지도자나 축구인들을 위해 개선할 것은 개선하는 데 힘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