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세무공무원 면제과목 과락률 82% ‘밀어주기’ 의혹…산업인력공단 “인위적 조작 사실무근”
세무사 2차 시험은 회계학1부, 회계학2부, 세법학1부, 세법학2부 총 4과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과목에서 40점 이상을 받아 과락을 면하고, 전 과목 평균 점수가 60점 이상인 응시생은 세무사 자격을 부여받는다. 경력 20년 이상인 세무공무원은 4과목 중 세법학1부, 세법학2부 시험을 면제받는다. 풍부한 세무 행정 실무 경험을 인정해주고, 공무원의 성실한 장기근무를 유도하자는 취지에서다. 회계학은 계산형 주관식, 세법학은 논술형 주관식이다.
문제는 이번 세무사 2차 시험에서 세법학1부 과락률이 무려 82.13%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일반 수험생들이 세법학1부에 발목이 잡힌 사이 세법학을 면제받은 세무공무원들이 대거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보통 40점 안팎으로 형성되는 회계학1부 평균 점수가 이번에는 65.36점이 나올 만큼 쉽게 출제된 것도 세무공무원 출신 합격자 폭증에 영향을 미쳤다.
#‘막차 태우기’ 목소리도
세법학은 어렵게 나오고 회계학이 쉽게 나온 것을 두고 ‘세무공무원 밀어주기’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2022년 11월 23일 세무공무원 출신 세무사의 전관예우를 방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이번 시험이 ‘막차 태우기’로 이용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현직 세무공무원에게 세무사 자격증을 밀어주기 위해 시험 난이도와 채점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서울시 서초구 학원가에서 만난 세무사 수험생 A 씨는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며 “(일반 수험생만 응시하는) 세법학이 너무 어렵게 나왔으니 자연스럽게 (세무공무원 밀어주기라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수험생 B 씨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예전부터 세무공무원 밀어준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회계학이 쉽게 나오고 세법학이 어렵게 나온 이번 시험 때문에 수험생들의 의심이 더욱 커진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번 시험에 조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개선연대) 측은 “세법학1부 4번 문제에서 0점을 받은 수험생이 많다”며 “백지 제출이 아닌 이상 2점이라도 줘왔던 지금까지의 관행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개선연대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세법학1부 과락자 244명 가운데 113명이 4번 문제에서 0점을 받았다.
다만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측은 “출제나 채점에서 누군가를 밀어줄 수 없는 구조”라며 “수험생들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난이도 조절 실패한 건 사실
적어도 이번 세무사 2차 시험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데엔 대다수가 동의하는 추세다. 현직 세무공무원들에게 세무사 자격증을 부여하기 위해 출제 및 채점을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으나, 회계학1부가 쉽게 나오고 세법학1부가 어렵게 나와 일반 수험생이 대거 탈락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2014년부터 공개하고 있는 세무사 2차 시험 결과 지표를 봐도 올해 회계학1부 과락률은 ‘역대 최저’, 세법학1부 과락률은 ‘역대 최고’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세무공무원 출신 수험생에게는 유리하고, 일반 수험생에게는 불리한 시험이 됐다는 의미다.
세무사 수험생들을 가르치는 현직 세무사 C 씨는 “출제자의 고유 권한인 영역이라 제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역대 시험 중에) 회계학1부가 제일 쉬웠고 세법학1부가 가장 어려웠기에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건 합리적인 추론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했다.
세법학을 가르치는 또 다른 강사 D 씨는 학원 강의에서 “(이번 세법학1부는 난이도가 높아) 관련 법리가 뭔지 모르고 답을 쓴 수험생들이 다수라 채점할 수 없는 답안이 많았을 것”이라며 “다만 채점 불가능한 답안이라도 백지 답안과 뭐라도 쓴 답안을 똑같이 0점을 준 건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고 말했다.
#시험 과정 투명화 필요
불투명한 채점 과정을 투명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험생이 어떤 이유로 몇 점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시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논술형인 세법학은 수험생이 자신이 받은 점수만 알 수 있을 뿐, 점수 산출 과정 및 근거는 알 수 없는 구조다.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채점 기준표, 모범 답안, 구체적인 득점 내역 등을 원활한 시험 관리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아서다.
김현주 세무사(30)는 “회계학은 계산 시험이라 맞다 틀리다가 확실하다. 그런데 세법학은 논술형이라 내가 맞게 썼는지 틀리게 썼는지 알 수 없다”며 “내가 쓴 키워드가 맞다 틀리다 정도는 알 수 있게 모범 답안 공개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선연대 측은 세법학1부 모범 답안, 채점 기준 등을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받기 위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개선연대 관계자는 “명확한 채점 가이드라인과 문항별 득점 공개가 필요하다”며 “2022년부터라도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수험생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정하게 시험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헌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