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공적자금 7조 원 투입, 기업결합 심사 난항 불구 무리하게 추진 비판
이렇다 보니 이동걸 KDB산업은행(산은) 회장이 처음부터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수가 무산될 경우 이 회장이 내년 대선 이전에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산은의 대우조선 매각이 3년여 만에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현대중공업에 반독점 거부권을 행사해 기업결합 심사를 불허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우조선의 주채권단이자 최대주주인 산은은 2019년 3월 현대중공업과 인수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민영화를 추진했다. 분식회계 등 논란이 있던 대우조선의 회생과 침체 국면에 있는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세계 3대 조선사 중 2곳을 합병하기로 한 것이다.
유럽연합 경쟁당국은 내년 1월 20일까지 기업결합 승인 심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조선과 항공 등 다국적 기업은 인수합병(M&A) 진행시 각국의 경쟁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불허할 경우 해당국에서는 사업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의무사항이다. 대우조선 인수에는 카자흐스탄·싱가포르·중국·일본·유럽·한국, 6개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이뤄진다. 그중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중국의 승인이 이뤄졌으나 일본과 유럽, 한국은 지연되고 있다. 특히 유럽은 조선사에 발주를 넣는 대형 선주들이 대거 포진돼 있어 핵심으로 꼽힌다.
한국과 일본은 사실상 유럽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조선·항공사의 기업결합 심사가 미뤄지고 있다는 지적에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는 아직 1차 심사도 개시하지 않았다. 공정위의 판단이 지연되는 것에도 이유는 있다. 독과점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제적으로 승인하는 전례를 만들면 향후 다른 기업이 M&A를 진행할 경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에 밀려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 의도적으로 심사를 늦추면서 주도권을 쥐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독과점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 양사의 LNGC(액화천연가스운반선),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VLGC(초대형가스운반선) 등 선박의 세계 수주 점유율은 60%가 넘는다. 이는 당초 산은이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 매각을 추진할 때부터 관련 업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한 문제다. 유럽은 경쟁제한성 해소를 위한 시정방안을 지난 7일까지 제출하도록 한국조선해양에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LNG사업부 매각 등을 통한 ‘조건부 승인’ 카드를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한국조선해양이 시정방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심사는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유럽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기도 어렵다. 시너지는커녕 자칫 국내 조선사의 경쟁력이 깎이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어차피 유럽에서도 다 자기들 이권을 위해 늑장을 부리는 것”이라며 “글로벌 환경규제 영향으로 최근 몇 년간 LNG선 발주가 늘어나면서 조선 경기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유럽이 경계하는 것에 말려들어서 핵심 기술이나 사업부를 매각하는 것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인수 무산이 오히려 한국조선해양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EU 반독점 당국이 미승인할 경우 대우조선으로의 1조 5000억 원 증자 계획이 철회돼 여유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며 “오히려 주가에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조선해양은 대우조선 인수시 증자 지원을 위한 자금 1조 2500억 원을 보유 중”이라면서 “기업결합이 불허되더라도 자금 활용이 가능해 주가에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인수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산은과 이동걸 회장의 책임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시민단체 등이 합세한 ‘재벌특혜 대우조선매각저지 전국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입장문을 내고 “당초부터 LNG선 시장점유율 60%를 넘게 되는 거대 조선사의 탄생에 대해 외국 경쟁당국이 순순히 승인할 리 만무한 일”이라며 “국내 조선사들은 통합시켜 ‘슈퍼 빅1’을 만든다는 정부와 산은의 설계는 애초에 실패를 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인 김남주 변호사는 “산은이 최대주주로 있어 사실상 공기업인 대우조선을 회생하는 데 막대한 공적기금이 투입됐다”며 “수조 원의 혈세를 투입해 살려놓은 기업을 왜 재벌에 안겨주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산은은 대우조선 회생에 7조 1000억 원 이상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대우조선 노조)도 최근 새 집행부가 들어서며 매각 반대를 위한 움직임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양사 합병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조선 자재업체 중심의 거제 지역경제 초토화 등을 우려하고 있다. 대우조선 노조 관계자는 “처음부터 되지도 않는 매각 방식을 추진하면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EU가 조건부 승인이라도 제시하면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라며 “한국 조선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데도 자신의 치적이나 업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매각 추진이 아니었나”라고 비판했다.
반면 산은의 대우조선 매각이 국내 조선경기 활성화 측면에서 불가피했다는 견해도 있다. 조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조선업은 국가 기간산업이고, 대우조선은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 혈세를 투입해 공적 성격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조선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슈퍼 사이클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LNG선이 차지하는 비중도 아직 미미하기 때문에 압도적인 시너지를 내기 위한 합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11월 30일 매각 무산 우려에 대해 “결과 예단은 부적절하다”며 “개인적으로 플랜 D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언급한 ‘플랜 D’를 두고도 설왕설래다. 일단 방위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우조선 특성상 해외 매각은 불가능하다. 생산 설비를 완전 분리해야 한다는 문제 탓에 부분 매각도 요원하다. 대신 한화·효성·포스코 등이 인수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오는 2023년에 임기가 종료되는 이동걸 회장의 거취도 주목된다. 국책은행장의 경우 대선 이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경우가 있었다. 유럽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가 내년 1월 20일까지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에 매각이 무산될 경우 이 회장이 3월 대선을 전후로 거취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이 회장은 앞서 2019년 “대우조선 인수합병은 노조와 지역사회,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반대 등 리스크가 많지만 승산은 50% 이상이라고 본다”며 “(산은 회장으로서) 마지막 미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기대효과가 큰 만큼 리스크도 크기 때문에 잘못되면 직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산은 관계자는 “기업결합 심사는 산은이 아니라 인수자인 현대중공업이 진행하는 것”이라며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전제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매각이 최종 무산될 경우 이 회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보자”고 선을 그었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