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방 시청률 8.7% 순조로운 출발…‘고리타분’ 편견 깨고 SNS 이슈몰이, 정통 사극 부활 효시될까
KBS 정통 사극의 부활은 2016년 ‘장영실’ 이후 5년 만이다. 사실상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대하드라마의 맥이 끊기는 듯했으나 사극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경인 ‘여말선초(고려 말 조선 초)’, 그것도 태종을 중심으로 한 후속작의 등장은 2021년 하반기 드라마 판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시기 KBS 2TV의 ‘연모’와 ‘꽃 피면 달 생각하고’가 퓨전 로맨스 사극 분야를 선점한 상황에서 KBS 1TV는 정통 사극인 ‘태종 이방원’을 내놓으면서 옛 사극 팬덤과 MZ세대 퓨전 사극 팬덤을 모두 아우르는 모양새다.
앞서 ‘장영실’이 그랬듯 ‘태종 이방원’ 역시 50회를 거뜬히 넘었던 기존의 대하드라마와 달리 ‘짧고 굵은’ 32부작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여말선초를 다뤘던 타 작품이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조선 초기의 정치사를 중심으로 긴 이야기를 전개해 왔다면 ‘태종 이방원’은 이방원이라는 인물 그 자체에 온전한 스포트라이트를 쏟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태종 이방원’에서 다루는 이방원의 모습도 그간 대중들에게 익숙한 것과는 사뭇 달라 이슈가 됐다. 같은 시기를 다룬 KBS 1TV ‘용의 눈물’ ‘정도전’이나 SBS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JTBC ‘나의 나라’에서 이방원은 훗날 태종이라는 아이덴티티에 맞게 강한 무인적인 기질이나 철혈군주로서의 면모가 강조됐었다. 정적을 무자비하게 쳐내는 모습을 두고 '킬(Kill)방원'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이와 함께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이라는 큰 줄기에 매달린 다소 굵은 가지 중 하나로 취급되는 일이 잦았다. 반면 ‘태종 이방원’의 이방원은 그가 해온 행위의 당위성을 찾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대의 속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태종 이방원’의 제작진은 이 같은 차이점이 “이방원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대하드라마에서는 늘 다른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보는 ‘역사의 제삼자’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포커스 자체를 이방원의 손에 들려준 것이다. 혼란했던 고려 말부터 조선 건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소용돌이 속 중심에 선 이방원을 새롭게 비춰냄으로써 그동안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 이방원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포부였다.
이에 따라 ‘태종 이방원’은 조선의 역사라는 큰 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방원을 비롯한 전주 이씨 가문의 인간 군상에도 조명을 드리우고 있다. 앞선 작품에선 쉽게 볼 수 없었던 ‘문과 출신’ 이방원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난 초반부를 두고 신선한 해석이라는 호평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이성계나 이방원의 치적을 강조하기 위해 축소되거나 왜곡됐던 이방과(훗날의 정종), 이방간 등 형제들에 대해서도 기록에 맞는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이야기에 입체감을 더했다.
이처럼 여러 모로 새로운 시도들이 눈에 띔에도 거슬린다는 불평이 나오지 않는 것은 제작진의 숨가쁜 노력 덕이었다. 지난 12월 10일 열린 ‘태종 이방원’ 제작 발표회에서 김형일 감독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의 가치,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연구와 자문을 빠짐없이 체크하고 있다. 드라마는 한편의 해석이 들어가지만 이렇게 해석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역사 왜곡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 직전에 비슷한 배경으로 그려졌던 SBS 판타지 사극 ‘조선구마사’가 중대한 역사 왜곡 문제로 한국 방송 역사상 최초인 방영 취소 결말을 맞은 바 있었기에 그런 지점에 대한 우려를 미리 불식시킨 셈이다.
역사 왜곡 문제 외에도 그간 정통 사극이 제작되지 않았던 것에 업계 관계자들은 2018~2019년을 강타했던 연예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성폭력 고발 운동) 사건과 PPL(간접광고)을 통한 수익 창출의 어려움을 이유로 꼽아온 바 있다. 앞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KBS 1TV ‘정도전’은 주연인 정도전 역의 조재현을 둘러싼 성추문으로 인해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한 재방영도 불가능해진 전적이 있다. 이처럼 대하드라마의 경우 방송 전후로 미투 등 부정적인 이슈가 터지면 일반 트렌디 드라마에 비해 작품이 입을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방송사가 제작과 편성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이 가진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복이나 장소 협찬 정도가 아니라면 PPL 자체가 어려운 장르의 성격도 제작을 어렵게 하는 주요 요소가 됐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퓨전 사극이라면 코믹한 요소로서라도 PPL을 집어넣을 수 있지만 정통 사극은 애초에 그런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인물의 복장 제작이나 세트장 설치비용부터 CG, 수많은 엑스트라 활용까지 생각한다면 손해를 각오하고 제작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여기에 정통 사극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어렵다는 편견까지 더해지면서 기피 장르로 여겨져 왔다는 게 방송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반대로 그런 부정적인 시선을 벗어난 ‘태종 이방원’을 두고 정통 사극 부활의 효시가 될 것인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3년간 중국의 ‘문화동북공정’과 역사 왜곡이 지속적인 문제로 대두돼 왔던 점을 주목한다면 웰메이드 정통 사극의 해외 수출이 이에 대한 반격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업계가 현재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태종 이방원’이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세대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편견과는 다르게 오히려 국내 대중들에게는 이런 정통 사극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역사 왜곡 문제가 위기로 대두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등장임과 동시에 앞으로 제작될 다른 대하드라마를 견인할 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