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조훈현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 등 올드스타 출동…서봉수 마우스 조작 실수 아쉬운 시간패
이 대회는 만 50세 이상 기사들의 무대다. 2019년 첫 대회를 치른 후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했고, 올해는 몇 차례 연기 끝에 온라인 방식으로 개인전만 개최했다. 나라별 선수 구성은 한국 8명, 중국 3명, 일본 3명, 대만 2명.
한국은 취소됐던 작년 대회 국내 선발전 통과자들(서능욱, 김종수, 김영환 9단)이 출전권을 이어받았고 차수권 8단은 사정상 추가 와일드카드 김일환 9단으로 대체됐다. 여기에 서봉수, 유창혁 9단이 랭킹 시드로 조훈현, 최규병 9단은 와일드카드로 합류했다.
중국은 녜웨이핑, 위빈, 루이나이웨이 9단 등 3명이, 일본은 다케미야 마사키, 고바야시 고이치, 요다 노리모토 9단이 초청받았고 대만의 왕리청, 왕밍완 9단까지 총 16명이 토너먼트를 벌였다.
16강전 왕리청, 8강전 위빈, 4강에서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 등 왕년의 라이벌들을 거푸 제압하고 결승에 오른 유창혁은 대만의 왕밍완 9단에게 어려운 반집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결승전은 시종 접전이었는데 유창혁은 한때 불리하기도 했지만 마지막 끝내기에서 상대의 방심을 틈타 행운의 반집 역전승을 거뒀다.
국후 유창혁은 “예선부터 결승까지 운이 너무 좋았다. 모든 판이 굉장히 힘들었고 마지막 결승전도 서로 실수가 많았다”면서 “8강전 위빈 9단과의 대국은 큰 실수가 많아서 가장 어려웠다”고 소감 말했다.
#국제 시니어대회 원조는 녜웨이핑
전성기를 보낸 올드스타들의 경연장이지만 예상외로 시니어 대회는 팬들의 호응은 뜨겁다. 아무래도 바둑의 전성기였던 60~80년대를 추억하는 팬들 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국제 시니어대회는 특히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중국에서 제일 먼저 시작됐고 한국이나 일본으로 이어졌으니 중국이 시니어 대회의 원조라 할 만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녜웨이핑 9단이 있다. 녜웨이핑은 1980년대 열렸던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중국의 최종 주자로 나와 남아 있던 일본 기사들을 모두 무찔러 ‘철(鐵)의 수문장’이란 별호를 얻었다.
문화대혁명 이후 ‘바둑은 반동분자들이나 하는 비생산적 놀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흑룡강성의 돼지 도살장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던 녜웨이핑은 중일 슈퍼대항전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인해 중국 정부로부터 ‘명예기성(棋聖)’ 타이틀까지 수여받을 정도로 국민적 인기가 높은 기사다.
비록 바둑올림픽이라는 제1회 응씨배 우승컵은 한국의 조훈현 9단에게 패하면서 놓쳤지만 녜웨이핑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지금도 심심찮게 각 성(省)에서 이벤트 시니어바둑대회를 열고 있고, 2019년부터는 아예 ‘녜웨이핑배’ 국제 시니어바둑대회란 타이틀로 대회를 열 정도다. 올해까지 3회 대회가 열렸다.
서봉수 9단은 “10년 전쯤 중국 초청으로 시니어대회에 참가했는데 예선에서 녜웨이핑을 이기고 우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에 누가 호텔 방 문을 두드리는 거다. 뭔가 해서 일어났더니 중국 관계자가 하는 말이 지금 녜웨이핑이 떠나고 있으니 빨리 나가 환송을 해야 하는데 나도 같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얼떨결에 따라 나가 맨 끝에서 녜웨이핑의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고 회고할 정도로 녜웨이핑이 중국 바둑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가 고위 공산당 당원이고 중국의 최고 권력자 시진핑과 학장시절부터 절친했다는 사실과 관계없이.
#‘다크호스’ 왕밍완 인상적 활약
16강전에서 ‘우주류’ 다케미야 마사키 9단, 8강전에서 녜웨이핑 9단을 꺾고 준결승에 올랐던 서봉수는 대만 대표 왕밍완 9단에게 불의의 시간패를 당해 아쉬움을 남겼다. 백을 든 왕밍완 9단의 98수째 착점 후 서봉수의 다음 수가 놓이지 않았다. 대국 개시 1시간 7분께였다. 생중계 화면상으로 마우스를 흔드는 모습도 보였으나 서봉수는 곧장 자신의 시간패를 인정했다.
서봉수는 국후 멋쩍은 표정으로 “마우스패드 끝에서 착점하다가 순간적으로 커서가 움직이지 않은 것 같다. 기계적 오류는 아니었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서 9단이 우세를 확보한 장면에서 나온 실수라 더욱 아쉬웠다.
한편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졌던 왕밍완 9단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첫 판에서 철녀(鐵女) 루이나이웨이 9단을 꺾은 왕밍완은 한국의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을 연파하고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통했다. 비록 결승전에서 유창혁에 반집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번 대회 그의 활약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왕밍완은 대국이 끝난 후 가진 현지 인터뷰에서 “줄곧 내용이 좋지 못했는데도 결승까지 간 것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 형세판단이 정확하지 못했던 데 반해 유창혁 9단의 형세판단은 정확했다. 축하한다”고 선선히 패배를 인정했다.
전남 신안군이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는 ‘2021 1004섬 신안 국제시니어바둑대회’의 우승 상금은 3000만 원, 준우승 상금은 1500만 원이다. 제한시간은 각자 30분에 30초 초읽기 3회.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