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피고인 거부 땐 증거로 못 써, 공판중심주의 강화 목적…무죄율 증가·재판 장기화 부작용 우려
#증거 여부 피고인이 선택
원래 검찰은 기소 전 피고인을 불러 조사하는 과정을 문서화해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다. 검사가 한 질문에 피고인이 답한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인데, 주고받은 대화를 그대로 적는 게 아니라 ‘네, 아니오’ 정도로 요약해서 적는 게 일반적이다. 당연히 수사기관의 의도가 담기는데, 법정에서 증거로 활용되기 때문에 검찰도 피고인에게 신문조서에 동의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신문조서 각 페이지마다 도장이나 지장을 찍는 방식으로 ‘질문-답변’에 동의했다고 인정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이 신문조서 내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수정하는 방식을 거친다. 이렇게 완성된 신문조서는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수사 방식이 피고인의 법정 대응 전략으로 불리하다는 지적도 당연히 나왔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혐의 내용을 인정했지만, 수개월 뒤부터 시작되는 법원 재판부를 상대로는 진술을 일부 바꿔야 하는 경우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존 형사소송법에서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됐다는 사실만 인정하면 증거로 채택할 수 있었다. 때문에 피고인은 피의자신문조서 증거 채택을 막기 위해서 ‘검찰 진술 내용이 잘못 기재됐다’는 점을 재판부에 설득해야만 했다.
하지만 2022년 1월 1일 이후 기소되는 사건부터는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 여부를 피고인이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박주민·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12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법에 따르면 피고인이 법원에서 증거 동의를 하지 않으면, 검찰이 원해도 증거로 활용할 수 없다. 수사기관이 자백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수사를 하는 관행을 막기 위한 장치다. 입법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법조계 “성급한 결정” 비판
법조계에서는 “성급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무죄율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재판 장기화와 검찰 수사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검찰 내부에서 우려가 상당하다. 여러 명이 공모한 사건의 경우 공범 관계를 입증하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A, B, C가 공모해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고 가정해보자. A와 B는 수사기관에서 자백을 했지만, C는 혐의를 부인할 경우 공범으로 기소가 되더라도 새롭게 입증해야 한다. 기존에는 A와 B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삼아 C의 혐의 부인을 부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C가 A와 B의 증거조서를 부정할 경우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 검찰이 A와 B를 C의 재판에 증인으로 등장시켜 일일이 재판부에 설명해야 한다. 특히 A와 B가 먼저 체포돼 처벌을 다 받은 뒤, 밀입국했던 C가 뒤늦게 기소될 경우 A와 B에게 ‘진술 번복’ 등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주가조작 등 많은 금융범죄는 ‘진술’이 있어야만 사건의 사실관계를 짜맞출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피의자신문조서를 피고인 마음대로 법정에서 증거 배척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수사기관은 수사 시점과 기소 시점, 재판 진행 시점마다 피고인 및 핵심 증인들의 진술·태도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력 비리 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간부급 검사 역시 “검찰 진술 때에는 검찰로부터 유리하게 처분을 받기 위해 혐의를 인정하는 듯 얘기했다가, 나중에 재판에 가서 ‘그런 취지로 얘기한 게 아니다. 검찰 수사 후 상세한 내용이 기억이 났는데 피의자신문조서에 잘못된 내용이 들어갔다’고 하면 검찰은 대응이 어려워지고 결국 무죄가 나면 욕까지 먹게 되는 것 아니냐”며 “권력형 범죄나 성범죄처럼 물증 확보가 어려운 사건은 수사가 많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력에 대한 우려로도 이어진다. 검찰과 법원 사이에서 말 바꾸기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수사력 공백도 우려된다. 기존에는 객관적 증거만으로는 입증이 어려운 사건에서 피의자신문조서가 검찰의 부족한 지점을 메워주는 증거 역할을 했었지만, 이 부분을 검찰이 더 보완해야 한다.
당장 2022년부터 재판 장기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직 판사는 “검찰에서 짧으면 2시간, 길면 10시간에서 20시간도 하는 피의자 신문을 재판 중에 해야 하기 때문에 사건 하나를 판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공판 횟수가 최소 2회, 많게는 3~4회 늘어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플리바게닝까지? 검찰 대응 주목
검찰은 일단 영상조서와 조사자(검찰, 경찰 등) 증언으로 이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피의자 신문을 할 때 이를 촬영하는 영상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입법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영상녹화 내용 가운데 일부를 녹취록 방식으로 법원에 제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녹록지는 않아 보인다. 영상조서에 대해 대법원은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면 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한 기존 법보다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고, 공판중심주의를 위해 신문조서도 ‘휴지조각’이 되는 상황에서 영상조서를 위한 입법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때문에 검찰은 조사자 증언 제도 활성화도 검토 중이다. 형사소송법 316조 1항에는 수사 단계에서 이를 조사한 경찰이나 수사관이 법정에서 진술 내용을 증언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그동안에는 조서를 증거로 활용했기 때문에 조사자 증언이 법정에서 등장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피고인이 신문조서를 부정할 경우 검찰은 경찰이나 수사관을 재판에 출석시켜 맞선다는 계획이다.
자연스레 ‘진술의 일관성’을 검찰에 약속할 경우 ‘약한 처벌’을 보장하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이 더 보편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그동안 검찰은 수사에 협력한 피고인에 대해서는 불구속이나 약한 구형을 하는 방식으로 플리바게닝을 해줬다”며 “공모관계가 복잡한 사건일수록 법정에서 진술을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피고인에게 플리바게닝을 주는 폭이 더 커지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