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만에 다시 넘겨 화해 제스처? “정치적 여파 고려 오해 소지”…기자들 가족 통신 조회 논란도 일파만파
게다가,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건과 관계된 인물에게 취재 목적 차 전화를 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통화기록 확인 과정에서 법조 출입 기자에 대한 조회도 있을 수 있지만, 기자의 어머니와 동생의 통신자료도 수차례 조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결국 김진욱 공수처장은 시민단체의 고발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광철 결정 피하려고?
공수처는 2021년 3월, 검찰과의 갈등 국면 속에서도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및 유출 의혹 사건을 가지고 왔다. 검사의 비위를 다루는 동일 사건을 수사 중일 경우 공수처에 관할권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검찰은 이규원 검사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처리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해 기소까지 했던 상황에서 공수처의 이첩 요구를 원치 않았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접대 공여자 윤중천 씨에 대한 보고서 내용이 유출돼, 곽상도 전 의원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명예가 훼손됐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검사가 허위 사실을 보고서에 담고 이를 유출했다는 정황을 발견했지만 사건을 공수처에 넘겨야만 했다. 당시에도 “공수처가 형식적으로 사건을 가지고 간 뒤 다시 검찰에 돌려보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공수처는 예상과 다르게 강제수사를 진행했다. 이 검사를 세 차례 소환 조사하고 사건과 관련해 이광철 전 청와대 비서관을 상대로 압수수색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었고 12월 17일, 이첩 9개월 만에 다시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한다고 알렸다. 사건에 대한 판단은 전혀 포함하지 않은 채로 “합일적(두 개 이상을 하나로 합치는 것) 처분을 위해 검찰로 이첩한다. 대검찰청과 협의한 사안”이라고만 밝혔다.
비판이 쏟아졌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합일적’이라는 단어는 여러 수사 주체도 동일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진행할 때 등장할 수 있는 법적 단어지만, 이첩 등의 기준에는 합일적 처분을 위해 한다는 조항이 그 어디에도 없다”며 “공수처 존재 이유는 검사의 비위를 ‘내 식구 감싸기’를 못하게 하기 위함 아니냐. 이제 와서 다시 검찰에 넘기는 것은 공수처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직 검사 역시 “넘길 것이면 9개월 전에 이첩 받았을 때 검토한 뒤 곧바로 다시 넘겼어야 한다”며 “지금까지 사건을 들고 있다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니까 다시 검찰로 떠넘긴 것은 정치적 여파를 고려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검찰 안팎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광철 전 비서관에 대한 결정을 피하려고 이첩한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도 대검찰청과의 협의를 했다는 점 자체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공수처 관련 담당 업무를 맡은 적이 있는 검사는 “그동안 공수처가 소통 대상도 제대로 잡지 못해 일선 청과 직접 소통하는 등 혼란스러운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검과의 협의 과정을 통해 이첩을 결정했다더라”며 “적어도, 공수처와 검찰의 커뮤니케이션만큼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진욱 경찰 수사 불가피
그럼에도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언론사 기자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 공수처는 2021년 6~8월 사이 최소 15개 언론사 기자 60여 명의 통신기록을 조회했다.
사실, 검찰이나 경찰에서 기자들의 통신기록을 조회하는 것은 왕왕 발생하는 일이다. 검찰이나 경찰에서 수사하는 인물에게 기자들이 취재 차 전화를 거는 일이 빈번한데, 거꾸로 수사 대상자의 통화 리스트를 확보해 일일이 누구인지 확인하려면 통신기록 조회가 필요하다.
하지만 공수처의 이번 통신기록 조회는 범위가 논란이 됐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과 통화한 적 없는 야당 담당 기자나, 민간 외교안보연구소 연구위원의 통신기록까지 조회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자의 어머니나 동생의 통신기록도 수차례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팀 소속 취재 기자들뿐만 아니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취재를 담당한 정치부 기자들과 외교안보·경찰 취재 기자들도 통신기록 조회 대상에 포함됐다. 한 언론사 법조팀 기자는 “특정 사건으로 인해 한두 차례 통신기록 조회는 그렇다고 쳐도, 야당 기자들까지 통신 조회를 한 것은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이 나서기까지 했다.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12월 22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장 없이 이뤄지는 통신자료 조회 근거법령 폐지를 요청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했다.
공수처는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을 확인하기 위해 적법하게 이뤄진 절차일 뿐 언론 사찰은 어불성설이다. 기자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동생 등 가족의 통신기록까지 조회당한 기자가 2021년 4월 ‘이성윤 서울고검장 관용차 에스코트 조사’ CCTV 영상을 보도했다는 점에서, 표적으로 통신기록 조회 대상을 선정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김진욱 공수처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했고, 경기남부경찰청은 공수처의 언론 사찰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이번 사건으로 공수처장이 처벌받을 확률은 낮지만, 공수처의 통신기록 조회 대상이 과도하게 많았다거나 수사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이라도 밝혀질 경우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