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SK LG 과반이 X세대 이하, 네이버 MZ세대 임원만 23명…젊은 총수들 신사업 진출이 배경
#임원들 절반은 X·MZ세대
2021년 말 단행된 대기업 인사 키워드는 ‘세대교체’였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기준 국내 30대 그룹 상장사 197개 기업의 임원 7438명(사외이사 제외)을 조사한 결과 1969년 이후 출생한 임원(52세 이하)은 3484명(46.8%)으로 집계됐다. 주요 기업 임원들 가운데 X세대와 MZ세대가 절반가량을 차지한 셈이다.
젊은 리더가 가장 많은 그룹은 네이버(94.2%)로 121명의 임원 중 7명을 제외한 94.2%가 X세대 이하 임원이었다. 이 중 23명은 2021년 11월 인사에서 새 대표이사로 내정된 최수연 책임 리더(1981년생)와 같은 MZ세대다. 다음은 카카오(92.9%)로 상장된 3곳의 임원 15명 중 김범수 의장(1966년생)을 제외한 나머지 14명은 모두 X세대 이하 세대였다. 셀트리온(72.7%)과 CJ(67.4%), 롯데(61.3%), 신세계(54.4%), 현대백화점(51.2%) 등 바이오와 유통 등 업종에서도 X세대 이하 임원이 평균 이상이었다. 중후장대 산업군 포스코(0.7%), 한진(13.9%), 에쓰오일(16.4%), LS(22.6%) 등은 비교적 낮았다.
상위 4대 그룹도 X세대 이하 임원이 절반에 가까운 48.6%였다. 삼성그룹은 16개 상장사 임원 1861명 중 55.5%가 X세대 이하 임원으로 2019년보다 20.4%포인트 늘었다. SK그룹의 경우 19개 상장사 임원 623명 중 53.6%가 X세대 이하 임원으로 21.7%포인트 늘었고, LG그룹은 13개 상장사 임원 745명 중 50.7%로 21.4%포인트 증가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2개 상장사 임원 1051명 중 32%로 4대 그룹 중 가장 낮았으나 2019년보다 9.7%포인트 늘었다.
2021년 말 임원 인사에서 MZ세대가 대거 승진한 만큼 젊은 임원의 비중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삼성은 최근 정기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세트부문(소비자가전과 IT모바일 통합)의 고봉준 VD(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 서비스 소프트웨어 랩장(49), 김찬우 삼성리서치 스피치 프로세싱 랩장 부사장(45) 등을 선임했다. 소재민 VD사업부 선행개발그룹 상무(38)와 박성범 S.LSI사업부 SOC설계팀 상무(37) 등도 발탁했다.
현대차는 대규모 신규 임원(상무 203명)을 뽑았는데, 3명 중 1명은 40대다. SK그룹은 신규 선임 임원의 평균 연령이 만 48.5세로, 특히 SK하이닉스의 1982년생 이재서 담당 부사장이 최연소 임원으로 뽑혀 30대 부사장이 탄생했다. LG그룹도 신정은 책임연구원 등 40대 직원들을 상무로 영입했다.
#신사업 이끄는 젊은 리더
변화의 배경으로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세대교체와 글로벌 산업 재편이 꼽힌다. 주요 총수가 부친의 경영권을 이어받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부친이 아닌 자신의 측근으로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이뤘다는 분석이다. 또 바이오 등 신산업과 4차 산업이 성장하면서 기존 대기업들은 제조업 본업에 신기술을 접목시켜야 하는 만큼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기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도 많아졌다. 새 환경과 기술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기업마다 조직 체계 유연화에 힘쓰는 분위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상위그룹들의 총수가 바뀌었고, 이들이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하는 시기가 3~4년 이후부터”라며 “구광모 LG 회장은 총수가 된 지 올해가 4년째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년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년째인 만큼 본격적으로 자기 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세대교체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했고, 제조업은 기술 축적과 차별화를 통해 좋은 제품을 생산 및 수출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명확한 상하관계와 직급체계로 조직을 수직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면서 “그러나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글로벌화하면서 신기술을 빠르게 접목해야 하는 만큼 해당 역량을 보유한 3040세대가 임원에 오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외부 수혈도 빈번하다. 인사나 사업 방식도 기업 내에서 교육한 인재를 활용하는 ‘순혈주의’보다는 인수합병(M&A)과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해 사업과 기술을 가져오는 방식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2년 새 현대차를 시작으로 LG와 롯데가 잇따라 공채를 폐지했고 SK도 2021년 하반기를 마지막으로 2022년부터 수시 채용에 들어가는 등 공채 문화도 사라지는 중이다. 세대교체와 함께 능력 순으로 승진하는 ‘실적주의’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젊은 총수 시대 핵심은 'M&A'
총수와 차기 총수의 역할론에도 과거와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창업주와 오너일가 2세 등 기존 세대는 내부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과 제품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M&A를 통한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오너 일가가 사모펀드(PEF) 운용사나 벤처캐피털 등 투자회사를 소유하거나 운영에 참여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모습도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한 재계 움직임을 반영한다. 대상그룹 오너 3세 임상민 전무는 벤처캐피털 겸 PEF 운용사 UTC인베스트먼트를 소유 중이다. 한화그룹 3세 김동선 한화호텔앤리조트 상무는 그룹 편입 전 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에서 경력을 쌓았다.
CJ그룹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활용 중이다.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2022년 1월 1일 임원 승진)이 최대주주로 있는 씨앤아이레저산업의 자회사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타임와이즈)는 콘텐츠, 푸드테크, 커머스, 뉴미디어 등 사업에 투자 중으로, 타임와이즈의 수익성 증대는 씨앤아이레저의 몸값과 오너 일가의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에 기여할 전망이다. 이처럼 앞으로는 오너 일가 소유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며 자금을 확보하는 기존 방법보단 투자를 통한 승계 방식이 더 잦아질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이와는 별개로 연봉과 임원 승진 등에 있어 남녀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은 한계이자 개선 과제로 꼽힌다.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3월 기준 국내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전년 대비 1%포인트 증가한 5.6%를 기록했지만 세계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연봉 격차도 2020년 기준 전년 대비 118만 원가량 감소했지만, 남성 직원의 평균 연봉은 8681만 원, 여성이 평균 연봉은 5624만 원으로 여전히 3000만 원 이상 벌어졌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 기업들의 여성 차별 정도를 지표로 만든 '유리천장지수'를 인용해 회원국 기업의 2021년 평균 여성 임원 비율이 25.6%라고 밝혔다.
2022년에는 이 같은 격차를 해소하고 조직과 사업 내 다양성, 포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재계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추지 못하면 조직 간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삼성전자의 인사와 관련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만 회사가 동의를 강요한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등장하는 등 내부 반발이 감지되고 있다.
박주근 대표는 “산업 변화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며 “성별 차원의 다양성 확보가 가장 시급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대와 인종 간 차별도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