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의 베트남 지난 스즈키컵 우승 이어 이번엔 4강…신태용의 인도네시아 ‘벼랑 끝’ 승리 후 결승행
#동남아가 스즈키컵에 열광하는 이유
후원사의 이름을 따 '스즈키컵'으로 불리는 AFF 챔피언십은 동남아시아 지역 내 축구 국가대항전이다. 대한민국이 속한 동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 대회도 있다. 일부 예선 과정을 거쳐 4개국만 참가하는 동아시아대회와 달리 스즈키컵은 본선을 10개국 체제로 치르는 대규모 대회다.
동아시아대회와 다른 점은 규모만이 아니다. 스즈키컵은 대회를 향한 참가국들의 열의, 팬들의 관심이 큰 대회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과 달리 이들 대회는 대륙에서도 하위 지역 연맹 주관 대회기에 위상은 낮다. 이에 동아시아대회의 경우 각 선수들의 소속팀에 선수 차출 협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많은 한국과 일본은 특히 유럽파가 대부분 빠진 채 대회에 임한다.
반면 스즈키컵 분위기는 다르다. 참가국들은 대규모 대회 못지않은 열의를 보인다. 스즈키컵은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릴 정도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본격적인 '영웅 대접'을 받은 것도 지난 스즈키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이후다.
동남아가 스즈키컵에 열광하는 이유는 동남아 축구 전체의 전력 때문이다. 세계 축구에서 약체로 평가받는 아시아에서도 동남아는 객관적 전력이 떨어지는 지역이다. 아시아 축구는 한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이란·이라크·사우디 등의 서아시아(중동)가 강세를 보인다. 이들에게 밀리는 동남아는 월드컵은 고사하고 아시안컵 본선조차 나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FIFA 랭킹을 살펴보더라도 이란, 일본,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중동 국가들이 잇고 있다. 현재 동남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팀은 베트남(98위)으로,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100위 이내의 순위에 위치했다.
2022 카타르월드컵 예선에서도 동남아 국가들은 약세를 보인다. 3차 예선이 진행 중인 현재 동남아 축구 강국으로 불리는 태국은 이미 2차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베트남은 사상 최초로 3차 예선에 올라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6전 전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남아 지역 축구팬들이 즐길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국가대항전이 스즈키컵인 셈이다.
#박항서·신태용의 동반 선전
지난 대회 베트남의 우승이 있었기에 이번 대회는 국내에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베트남에 이어 인도네시아에 한국인 지도자가 진출한 것이 관심을 고조시킨 이유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공교롭게도 조별리그에서 한 조에 배정돼 순위 싸움을 했다. 실제 절친 관계로 알려진 박항서 감독과 신태용 감독은 약속이나 한 듯 조별리그 3승 1무로 좋은 흐름을 보였다. 이들의 1무는 서로 간 맞대결의 결과였다. 이들은 승점(10점), 득실차(+9)에서도 동률을 이뤘다. 다득점을 따져 인도네시아가 조 1위, 베트남이 조 2위로 4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베트남의 4강 상대는 숙적 태국, 인도네시아는 싱가포르를 만났다. 이 팀들 모두 동남아 무대에서는 강팀으로 통한다. 스즈키컵 역대 최다 우승팀이 태국(5회), 2위가 싱가포르(4회)다. 베트남은 그간 2회 우승 기록이 있고 인도네시아는 준우승만 5회를 기록했다.
이번에 베트남은 태국에 2차전 무승부를 거뒀지만 1차전 0-2 패배를 극복하지 못했다. 박항서 감독은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번 대회는 VAR이 도입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인도네시아는 싱가포르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과정도 극적이었기에 더 주목을 받았다. 1차전을 무승부(1-1)로 마친 후 2차전, 골을 주고받는 난타전이 펼쳐졌다. 인도네시아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전 싱가포르가 승부를 뒤집었다. 후반 막판 인도네시아의 동점골이 터진 상황에서 싱가포르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싱가포르의 결승 진출이 유력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골키퍼 나데오 아르가위나타가 선방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어진 연장에서 2골이 터지며 인도네시아가 4-2 승리를 했다. 이들의 승리에는 한 경기에서 상대 선수 3명이 퇴장을 당하는 행운도 따랐다.
인도네시아는 이처럼 극적인 승부 끝에 결승에 진출했지만 우승 전망은 어둡다. 12월 29일 열린 결승 1차전에서 태국에 0-4로 대패했기 때문. 2차전은 1월 1일 저녁 9시 30분(한국시간)으로 예정돼 있으나 우승의 기운이 태국 쪽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 팬들을 위해서라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이번 대회 결승 진출만으로도 신 감독에게 '신오빠'라는 애칭을 붙여주는 등 열광적인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이번 스즈키컵을 지켜보며 "다시 한 번 한국인 지도자들의 위상을 높인 대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대회에 이어 베트남의 연속 우승을 기대한 분들에게는 아쉬운 결과지만 그래도 충분히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베트남에 승리한 태국은 오랜 기간 동남아 강팀으로 군림한 국가다"며 "인도네시아도 좋은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이 해설위원은 "앞으로도 한국인 지도자들의 동남아 진출이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박항서 감독에 이어 신태용 감독도 능력을 증명했다. 지도자로서 좋은 기회다. 두 감독 모두 A대표팀과 U-20, U-23 대표팀 감독을 겸직한다. 한 국가의 축구를 큰 그림을 그리며 다룰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제안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박항서 감독의 선전 이후 정해성, 김도훈 감독 등이 동남아 국가 프로팀 사령탑으로 진출했고 일부 국가에 공석이 생길 때마다 한국인 지도자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