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보다 발견 위폐 적지만 개인 피해 사례 꾸준…“간단 위폐 식별방법 필요”
국정원의 발표로 위폐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위폐는 제작 수준에 따라 저급위폐, 중급위폐, 슈퍼노트 3단계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저급위폐, 중급위폐는 초보적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비교적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슈퍼노트는 요판인쇄, 색 변화 잉크 등 정밀기술이 필요해 ‘조폐공사’급 시설이 아니면 제조하기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위폐 청정국’이라 할 만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유통 은행권 100만 장당 위폐 발견 장수는 0.05장이다. 2019년 기준 영국 112.4장, 멕시코 0.58장, 유로존 23.2장, 호주 12.5장, 일본 0.19장에 비해 현저히 적다.
우리나라 원화 위폐는 대부분 조잡한 수준이라 식별이 쉬워 일반인 피해가 적은 편이다. 기축통화가 아니어서 세계적 수요가 적고, 시중은행 등이 첨단 장비를 동원해 위폐를 걸러내려고 노력하는 점도 원화 위폐가 적은 이유로 꼽힌다. 유현철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차장은 “달러 같은 기축통화가 아니라 원화는 위폐가 적을 수밖에 없다”며 “(원화든 외화든) 은행의 각 지점에 있는 위폐 감별기로 위조 여부를 식별하고, 식별이 잘 안 되는 경우 본점에 있는 전문 인력들이 2차 감수를 진행해 대부분 위폐를 잡아낸다”고 말했다.
#당국이 위폐에 민감한 까닭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해서 절대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실제 위폐 유통 건수는 보통 적발 건수의 20배가량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위폐는 국가를 뒤흔들 수 있는 요소다. 위폐가 많이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화폐 거래에 불신이 생겨 상거래가 위축된다. 비록 우리나라가 위폐 청정국으로 불리지만 한국은행, 은행연합회, 국가정보원 등 유관기관에서 위폐 문제를 늘 주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폐 문제는 다른 국가와 금융거래를 할 때도 걸림돌이 된다. 국제 금융·상거래를 할 때 위폐가 많은 나라는 높은 신용을 유지하기 어렵다. 유현철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차장은 “기축통화국이 아닌데 위변조 화폐가 많은 나라라고 알려지면 아무래도 거래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위폐를 적대국을 교란할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영국 경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파운드화 위폐 900만 장을 조직적으로 생산해 유통했다. 종전 후 유럽에 있는 파운드화 중 절반이 가짜임이 드러나자 영국은 신권 파운드화를 발행했다.
2005년엔 위폐 때문에 우리나라가 난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힐 당시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는 “북한이 위조한 100달러 슈퍼노트를 봤다”며 북한을 슈퍼노트 제작국으로 지목했다. 북한은 이에 ‘날조’라며 강하게 반발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공회전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위폐 문제와 북핵 문제를 분리해 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위폐에 관한 한 개개인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위폐를 소지했다가 큰 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지난 8월 한 60대 남성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진폐인 줄 알고 저렴하게 구입한 100달러 위폐 797장을 은행에 맡겼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해외여행 시 택시, 마사지숍, 사설 환전소, 카지노, 유흥시설 등에서 외화 진폐를 위폐와 ‘바꿔치기’ 당하는 사례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2019년 동남아에 있는 카지노에서 한국인이 바꿔치기 당한 위폐를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돼 국정원 도움으로 풀려난 사례도 있다.
#“간단 위폐 식별 요령 알고 있으면 좋아”
전문가들은 위폐 피해 방지를 위해 기본적인 위폐 식별법을 익히고 있으면 좋다고 조언한다. △비춰보기(숨은 그림 확인) △만져보기(오돌토돌한 촉감 체크) △기울여보기(색 변환 확인) 등이다. 또 여행 등 목적으로 환전할 땐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설 환전소보다 시중 은행을 이용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국에 위폐가 많지 않아 국민적 관심이 적으나 위폐는 언제든 대규모로 유입될 수 있다”며 “유튜브 채널 ‘위폐전문가그룹:위벤저스’ 등 여러 방면으로 일반인이 따라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위폐 식별 방법을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박억선 KB국민은행 외환업무지원부 팀장은 “금융기관에서 환전하면 지폐 일련번호 등이 투명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는 등 여러 안전장치가 있다”며 “일차적으로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게 위폐와 얽히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이어 “(금융기관이든 사설 환전소든) 환전한 뒤 영수증과 지폐 일련번호를 휴대폰 사진으로 남겨두면 분쟁이 생겼을 때 위폐범이 아니라는 증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용헌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