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상승’ 안철수 끌어안기 ‘집안싸움’ 이준석과 동행 ‘수사 악연’ 박근혜 지지 얻기 과제 풀어내야
눈보라가 휘날리는 차디찬 벌판 위에 윤석열 후보 혼자 서 있는 형국이다. 이준석 당대표는 “나는 빠진다”며 선대위를 박차고 나갔고,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연대하며 국민의힘 후보 당선을 도왔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대선 완주를 호언했다.
한때 콘크리트 보수 지지층까지 형성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향후 행보도 윤 후보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새해를 맞는 윤 후보 앞에 반드시 넘어야 할 높은 3개의 산맥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준석 없이 간다?
선대위를 뛰쳐나간 이준석 대표에 대한 윤석열 후보 신뢰는 상당 부분 금이 간 상태라는 게 윤 후보와 가까운 사람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의 이른바 공개 항명 사건이 이 대표에게는 굉장히 노여운 사안임은 분명한 것이라고 윤 후보 측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 후보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선대위를 뛰쳐나가고, 자고 나면 방송에 나가 윤 후보를 겨냥하는 비난성 발언을 연이어 쏟아내는 것에 대해 윤 후보 측은 격앙된 모습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역전당했다는 결과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 이력 논란도 컸지만 가장 큰 타격은 국민의힘이 보여주고 있는 내부 분열 양상 탓이라고 윤 후보 측은 물론, 당내 상당수 현역 의원들까지 입을 모으고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를 집안싸움의 주범으로 질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여러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 진영을 향한 네거티브 공격은 SNS를 통해 굉장히 빨리 퍼지면서 맹렬한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수그러드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왜냐하면 네거티브 이슈 소재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김건희 씨 이슈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사과와 동시에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화되는 느낌이다. 결국 지금 윤 후보 지지율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은 집안싸움이다. 그 한가운데 이준석 대표가 있다.”
실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아들 논란과 윤석열 후보의 아내 논란 등 가족 문제에 따라 지지 후보를 바꿀 생각이 있는지 물어본 여론조사(MBN·매일경제 의뢰로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대상 12월28일부터 이틀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이 넘는 53.6%는 가족 논란으로 지지 후보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바꿀 생각이 있다는 응답은 41.4%였다. 국민들이 가족 논란보다 오히려 집안싸움 하는 정당을 더 혐오하면서 지지를 거둬들인다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설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준석 대표와 관련된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 57명 중 20여 명이 12월 27일 초선 의원총회를 열고 이 대표의 선대위 사퇴와 잇따른 쓴소리가 몰고 온 파장에 대해 논의했다. 당 안팎에선 ‘대표 사퇴까지 거론할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였다’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를 두둔한 초선 의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가 선거 승리에는 관심 없고 자기 존재감 과시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고 “대표 잘못 뽑았다”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터져 나왔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로 인해 큰일 나겠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이참에 대표를 밀어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초선인 김승수 정경희 최승재 의원은 초선 의원총회 다음 날인 12월 28일 국회 본관 당 대표실을 찾아 이 대표에게 이런 ‘심각한 기류’를 전달했다. “돌아온다”는 말도 나돌았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안간다”는 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방송국을 다니면서 윤 후보를 향한 장외에서의 비판 화살도 계속해서 쏘아대는 중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이 대표를 12월 31일 만나 선대위 복귀 등 당 대표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고, 김 위원장 중재로 윤 후보도 결국 이 대표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후보 측은 물론,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대표가 돌아온다 해도 12월 초 ‘울산회동’처럼 일시 봉합에 그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 한 TK(대구·경북) 출신 의원은 “지금 윤 후보 지지율이 자꾸 떨어지는데 ‘이 대표 없이 그냥 가자’는 격리 의견도 있지만 이 제안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제2의 울산회동을 성사시켜 같이 가되 거리두기를 하며 가는 느슨한 통합 전술을 해야 선거 막판까지 지속될 이준석의 후방 공격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안철수, 품어야 산다
윤 후보 지지율이 떨어지는 사이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다. 존재감이 없던 수준에서 최근 두 자릿수 지지율선 바로 턱밑까지 치고 올라간 것이다.
한국갤럽이 서울신문 의뢰로 12월 27∼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이 후보는 36.8%, 윤 후보는 30.8%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 두 후보의 격차는 6%포인트로 오차범위(6.2%) 이내였다.
윤 후보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이에 안 후보는 지지율 9.3%를 쏘아올리며 심상정 정의당 후보(6.6%)와의 격차를 벌렸다. 안 후보는 한때 각종 여론조사에서 5%에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날 조사에서는 10%에 육박, 정치권에서 큰 주목을 이끌어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내분이 지속될 경우, 안 후보 지지세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본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안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지난 10여 년 동안의 정치생활 과정에서 큰 도덕적 흠결이 없었고, 기업 경영을 해본 CEO(최고경영자) 출신이어서 안정감도 있으며, 보수 정당 지지세가 큰 영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배경 등이 그가 윤 후보의 대체재로 꼽히며 지지율을 올리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안 후보 스스로도 저조한 지지율을 벗어나자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그는 2021년 12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그의 고향인 부산·경남 지역은 물론, 국민의힘 지지층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대구·경북까지 집중 공략하며 윤 후보를 넘어서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안 후보 측은 신이 난 반면, 윤 후보 측에서는 비상등이 켜졌다. 안 후보를 흡수통합할 수 있다고 봤는데 갈수록 만만찮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안 후보를 향해 적극적으로 몸을 낮추고 있다. 윤 후보는 12월 30일 대구를 찾아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해 가능성을 크게 열어뒀다.
윤 후보는 이날 안 후보를 두고 “한국 정치 발전에 역할을 많이 해오셨고 상당히 비중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하며 “저와 안 후보는 이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열망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큰 차원에서 (안 후보와) 한번 소통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제 국민의힘이 제시한 카드만으로 안 후보와의 통합을 이뤄내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민주, 국민의힘 모두 비호감 대선 후보라는 총평 속에 부동층이 늘어나고 있고 그 바람 속에서 안 후보의 몸집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한 뒤 서울 종로 공천권을 준다면 단일화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후보 단일화를 위해 더 큰 보상책이 필요해졌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국민의힘 출신 한 전직 의원은 “이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상황이 됐다. 안 대표가 윤 후보를 넘어선 뒤 대선에서 승리하는 그림은 어렵지만 윤 후보를 떨어뜨리는 능력은 이제 충분히 갖췄다. 양당 통합 등 정계개편 수준의 빅카드를 동원, 빅딜 보상책을 제공해야 안 후보와의 통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돌아온 박근혜 어쩌나
특별사면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생활에서 벗어났다. 그는 일단 건강이 좋지 않아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한 채 당분간 병원 입원 치료를 계속한다. 때문에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은 물론, 언론과 만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건강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대선 전에 박 전 대통령이 공개적 정치 행보를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시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적폐 수사를 지휘했던 윤 후보로서는 자유의 몸이 된 박 전 대통령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부당하며 그에 대한 수사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가 묘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12월 30일 공개된 옥중 서신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 서문에서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국민 여러분을 다시 뵐 날이 올 것”이라며 활동 재개를 암시하기도 했다. 서신을 통해 탄핵 절차에 대한 부당성과 억울함을 거듭 드러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명예 회복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후보는 12월 30일 박 전 대통령 고향이자, 그의 정치적 근거지였던 대구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건강이 회복되시면 찾아뵙고 싶다”고 언급, 박 전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낼 것이라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윤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크게 환영하고 조금 더 일찍 나오셨어야죠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 입원해 계시고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빠른 쾌유를 바란다. 박 전 대통령을 아끼고 사랑하는 단체들도 조금 전에 저의 당선을 바라는 지지 선언을 해주셨다”고 발언, ‘친박은 내 편’이란 구도까지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정당 후보를 적대시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 침묵 정치를 할 것으로 보는 쪽이 우세하다. 또다시 보수 정당이 대선에서 실패하는 사례를 만든다면 박 전 대통령에게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윤 후보의 태도가 핵심 관건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