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권 외항사에 넘겨주는 계기” 불만 반면 생존 위협 LCC “공정위 결정 당연” 운수권 재분배 기대
#왜 조건이 붙었나
공정거래위원회는 1월 말에서 2월 사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M&A 관련한 전원회의를 열고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 12월 29일 M&A 승인 조건으로 통합 항공사의 슬롯(공항 이착륙 횟수)과 운수권 일부를 반납하고 LCC들에 재분배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상정한 데 이은 행보다. 대한항공은 2020년 말 아시아나항공 지분 63.88%를 취득하는 계약을 맺고 2021년 1월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한 바 있다.
조건부 승인은 독과점 방지를 위한 결정이다. 공정위는 두 기업 계열사를 포함한 5개사(대한항공·아시아나·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의 운항 노선 약 250개 가운데 47%인 119개에서 경쟁 제한성 여부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항공여객 시장 중 △인천-LA △인천-뉴욕 △인천-장자제 △부산-나고야 등 점유율이 100%인 독점 노선 10개를 포함한 다수 노선에서 독과점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독점 방지를 위한 시정조치 조건으로 두 기업이 보유한 우리나라 공항의 슬롯 중 일부를 반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잔여 운수권이 없는 항공 비자유화 노선에 대해서는 두 기업의 운수권(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을 반납해 재배분하는 방안을 내놨다. 항공 비자유화 노선은 우리나라와 항공자유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노선으로 유럽, 중국, 동남아·일본 일부 노선이 운수권 반납 대상이 된다. 다만 운수권은 국가 간 항공 협정을 통해 각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에 배분하는 권한인 만큼, 우리나라 운수권은 법령상 무조건 국내 항공사에만 재분배할 수 있다
#불만과 환영 엇갈리는 업계
업계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합병은 시너지 효과가 목적인데 조건부 승인은 운수권을 외항사들에 넘겨주는 계기가 될 수 있어 국내 유일 대형항공사의 경쟁력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반발한다. 통합 항공사가 반납할 중장기 운수권의 경우 LCC들이 가져가더라도 노선을 띄울 수 있는 대형 항공기가 없어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외항사들의 노선은 그대로인데 우리나라 항공사가 운행하는 노선의 총량은 줄어든다. 결국 외항사들은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항공사가 노선을 운영하려면 운수권과 슬롯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 운수권을 보유한 항공사에 슬롯 우선 점유 권한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운수권을 LCC들이 가져갈 수 없다면 해당 슬롯은 주인을 잃는다. 해당 슬롯이 없어 운항하지 못했던 외항사가 슬롯 확보를 통해 신규 운항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운수권을 주진 않더라도 외항사들이 진입할 틈은 열어주는 것”이라며 “통합 항공사가 반납한 운수권을 LCC들이 쓰지 못한다면, 해당 노선에 대한 수요는 그대로인데 양국 편수로 봤을 때 우리나라 항공사의 파이는 줄어든다”고 말했다.
조건부 승인은 해외 주요국들 합병 심사 시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성사되려면 우리나라 공정위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호주 등 7개 해외 경쟁당국 심사에서도 승인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소 조치 방안을 정부가 정하지만, 해외 경쟁당국은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방안을 제시하면 당국이 승인 여부만 판단하는 구조다. 어차피 자구책을 내놔야 하는데 굳이 공정위가 선제적으로 제한 조건을 내놓으면서 통합 항공사의 운신의 폭을 좁힐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추후 조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고개를 든다. 우리나라 당국이 스스로 자국 항공사를 보호하려는 모습만 보이면 해외 경쟁당국이 심사 시 독과점 문제를 더 심각하게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화두를 던져놓았을 뿐 결국에는 대한항공에 유리한 결과를 내놓지 않겠느냐는 해석이다. 제약이 너무 커 M&A가 틀어지면 책임 소재는 KDB산업은행에 돌아가고, 결국 그 화살은 공정위를 겨눌 수 있다는 점도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문제는 운수권과 슬롯을 배분하더라도 LCC가 이를 흡수할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외국 항공사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다”며 “우리나라 정부가 먼저 나서서 깐깐하게 심사하며 해외심사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항공은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대로 결합이 이뤄지면 감축은 불가피하다”며 “공정위도 이런 문제들이 불거질 것을 알고 있지 않겠느냐. 전원회의에서 대한항공과 물밑 협상을 통해 조율할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중장거리? 소화 가능하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입장은 백팔십도 다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국제선 운항은 대폭 줄었는데, 국내선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대형 항공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지만 기존 선점한 항공화물운송 시장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반면 LCC들은 큰 규모의 항공기도 없고 대형 항공사들 틈 사이에서 파트너사를 찾기도 쉽지 않아 고사 위기에 놓였다. 따라서 운수권 재배분은 한 줄기 희망이자, 공정위가 당연히 제시해야 하는 조건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운수권을 재분배해도 LCC들이 소화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반박하는 분위기다. 이미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은 이미 중대형 항공기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아울러 공정위와 해외 당국들이 심사를 거쳐 결합이 이뤄지고, 실제 운수권을 재배분하기까지 일정이 마무리되려면 2~3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는 충분히 중장거리 운행 준비를 마칠 수 있다는 것이 LCC들의 입장이다.
LCC업계 한 관계자는 “LCC들은 주요 수익원이 근거리 여객이었기 때문에 항공화물운송업을 굳이 하려고 들지 않았고, 이미 대형 항공사들이 선점하고 있어 거래처를 구하기도 어려웠다”며 “국제선 운항은 크게 줄었는데 대형 항공사처럼 부가 수익은 없어 다들 생존 위기인 상황에서 운수권을 재배분 받으면 수익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공정위의 결정을 반대하는 측 주장들은 거짓말에 불과하다. 오히려 독과점의 문제를 간과한 것”이라며 많은 “LCC들이 경쟁력 제고를 위해 중장거리 노선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가진 만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운수권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독과점 문제로 인해 고객 편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장거리뿐 아니라 단거리와 중거리 노선의 경우에도 중국과 몽골 등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이 독점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이 통합해 독점이 더 커진다면 당연히 항공권 가격은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거 인천-몽골 노선의 경우 대한항공이 몇 십년 간 독점하면서 가격이 동일 거리 대비 2~3배 이상 비쌌다. 이런 문제로 양국 정부가 다시 협약해 운수권을 늘렸고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이 운수권을 더 가져가면서 가격이 낮아졌는데, 이들 항공사가 통합되면 다시 독점체제가 되지 않느냐는 것.
LCC업계 다른 관계자는 “산은이 이번 빅딜로 한진그룹 경영권까지 방어해줬는데, 공정위가 소비자 편익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니겠느냐”며 “배민과 요기요 합병 사례에서도 한 쪽 매각을 조건으로 승인했던 것처럼, 이번 사례도 대한항공의 이해관계만 따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공정위가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만큼, 3주 안에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의견을 정리해서 공정위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