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경영권 분쟁 종결 속 펀드 만기 속속 도래…주가 높고 업황 불안정해 지분 받아낼 투자자 확보 관건
#"펀드 끌고 갈 명분 사라져"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CGI는 2018년부터 한진칼 지분 매입을 시작해 현재 8개의 투자목적회사(SPC)를 통해 한진칼 지분 1162만 190주(지분율 17.41%)를 보유 중이다. KCGI가 출자자(LP)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사모펀드를 만들고 SPC를 설립해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각각 △그레이스홀딩스(752만 4857주) △엠마홀딩스(160만 5464주) △헬레나홀딩스(85만 4257주) △디니즈홀딩스(54만 9810주) △베티홀딩스(39만 2333주) △캐트홀딩스(27만 2089주) △캐롤라인홀딩스(21만 6107주) △타코마앤코홀딩스(20만 5273주) 등을 설립했다. 2021년 12월 30일 한진칼 종가 6만 1600원 기준으로 약 712억 원에 달한다.
이번 매각설의 배경으로는 SPC들의 존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엠마홀딩스(2022년 1월 30일 만기)와 디니즈홀딩스(2022년 3월 13일 만기), 캐트홀딩스(2022년 3월 26일 만기), 캐롤라인홀딩스(2022년 3월 26일 만기), 헬레나홀딩스(2023년 1월 10일 만기) 등 5개 SPC에 자금을 댄 펀드들은 설립일로부터 3년이 되는 날까지 운영된다. 1월부터 만기가 줄줄이 다가오는 셈이다.
투자자들 전원의 동의를 얻으면 최대 2년까지 운용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KDB산업은행의 개입으로 한진칼과의 경영권 분쟁이 종결된 만큼 청산을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앞서 산업은행은 2020년 한진칼 지분 10.5%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한진칼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3자연합(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021년 4월 해체됐고, 뒤이어 조현아 전 부사장도 보유했던 한진칼 지분을 처분하며 경영권 갈등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당시 산은은 백기사로 나선 조건으로 조원태 회장에게 △경영진 해임 요구권 △사외이사 3명 추천권 △윤리경영·경영평가위원회 조건 이행 등을 명시했다. 조건이 지켜지지 않으면 조 회장에게 5000억 원의 위약금과 손해배상책임, 경영권 박탈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KCGI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고 주장하며 투자자들을 모았고 이후 실제 개선돼 한진칼 주가가 현 시점보다 뛴 적도 있다”며 “지금은 산은이 있어 오너일가가 마음대로 경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기업가치 상승을 유도할 지배구조 개선 요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지분 경쟁 약화로 주가는 답보상태가 됐다는 점에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판단에 청산을 요구하는 ‘쩐주’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KCGI를 이끄는 강성부 대표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경영권 분쟁 재점화 가능성은 희박한 데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업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현재 한진칼 주가는 6만 원대인데, KCGI가 3년간 사들인 한진칼 주식의 평균 단가는 3만 원대로 추산된다. 이런 이유로 강성부 대표가 지금처럼 확실하게 차익을 거둘 수 있을 때 엑시트를 단행해 리스크를 줄이려고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KCGI가 쌍용자동차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등 새 투자처를 찾고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진칼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지속할 이유도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나중에 아시아나항공과 합병한 이후 엑시트하는 것이 맞는지, 지금이 타이밍인지의 차이인데 사실 펀드를 더 끌고 갈 명분은 사라졌다”며 “펀드의 첫 번째 목표였던 경영권 분쟁은 실패로 끝났기에 계속 불확실성을 안고 가기보다는 청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이어 “연장하겠다는 판단은 순수하게 주식 투자 관점에서 코로나19로 망가진 항공주들이 정상화하면 팔겠다는 얘기인데, 개인 투자자라면 몰라도 사모펀드에서는 대부분 목적 달성이 안 되면 재빨리 빠지고 다른 투자처에 뛰어든다”며 “지분 경쟁과 합병 이슈로 매입 당시 높은 가격으로 사들였을 수 있기에 2년 뒤 주가가 본인들 생각만큼 회복될 수 있을지 판단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CGI는 최근 공식 자료를 내고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KCGI는 △보유 중인 한진칼 지분을 특별히 시장가격에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는 매각하지 않고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및 경영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으로 매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IB업계에서는 KCGI가 매각과 관련해 긍정도 부정도 안 하는 모습을 근거로 지분을 인수하려는 측과 여러 조건을 맞추는 과정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성공이냐 실패냐
한편에서는 엑시트에 나서더라도 당장 한진칼 지분을 사들일 투자자를 확보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엑시트를 시도할 경우 방식은 주가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장내 매도보다는 시간 외 대량 매도(블록딜)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 이슈 이전에는 한진칼 주가가 2만 원대에 그쳤던 만큼, 분쟁이 끝난 현재 6만 원대 주가로 대규모 지분을 사들일 투자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장기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M&A(인수합병) 심사 지연, 최근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발표 등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공정위는 지난 12월 29일 두 항공사의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제한하고 운수권(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을 반납해 타사에 재배분하는 조건으로 M&A를 승인하기로 임시 결정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 기업 결합 심사도 거쳐야 한다. 심사 결과에 따라 기업 가치와 주가 흐름은 바뀔 수 있다.
다른 증권사 항공담당 연구원은 “보유 지분이 너무 많아 일부 엑시트해 리스크를 해소하려는 욕구는 있겠지만, 항공업계 불확실성이 워낙 커 가격 할인을 많이 해줘야 투자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제 가격을 못 받고 서둘러 팔 바에야 차라리 코로나19 이슈가 완화하고 중장기 항공 수요 회복에 대한 밑그림이 갖춰졌을 때 엑시트를 준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성부 대표가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데 따른 득실은 엑시트 여부에 달렸다. 성공하면 사모펀드가 주체적으로 경영 참여 성격으로 지분을 매입해 기업을 변화하게 만든 사례라는 점에서 투자업계 기념비적 사건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실패할 경우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뼈아픈 사례에 그칠 수 있다. 앞서 강성부 대표는 2020년 한진그룹 오너리스크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조현아 전 부사장과 손을 잡으면서 명분과 신뢰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도그룹의 행보는 엑시트 관건으로 꼽힌다. 반도그룹은 대호개발 등 계열사를 통해 한진칼 지분 17.02%를 보유 중으로, 먼저 엑시트에 나서면 주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앞서의 항공담당 연구원은 “성패는 엑시트를 어찌 할 것 인지에 달렸다. 현 상황으로는 투자 대비 성과가 나쁘지 않은데, 아직 엑시트를 하지 못해 평가 수익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KCGI의 지분 매각설이 더 퍼지면 주가 하락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반도건설도 매각을 원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