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부호들 ‘큰손’, 위조품·암거래 횡행 부작용도…육식 공룡 더 인기, 티라노사우루스 380억 낙찰
몇 년 전부터 세계 미술품 시장에서 공룡 화석 수집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공룡 화석을 수집하는 부호들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경매 시장에서의 낙찰가도 매년 경신되고 있다. 억만장자들이 이렇게 공룡 화석 수집에 열성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단순히 어려서부터 공룡 마니아였던 경우가 있는가 하면, 희귀템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혹은 투자처로 바라보기 때문에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공룡 화석이 개인 소장품으로 팔리기 시작하자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반감도 나타나고 있다. 가령 불법으로 화석을 발굴해서 거래하는 암시장이 횡행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공룡뼈들이 국외로 밀반출되는 경우도 흔하게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 니콜라스 케이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베벌리힐스 경매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이 입찰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물품은 6700만 년 된 티라노사우루스 바타르의 두개골이었다.
당시 오싹하게 생긴 거대한 이 공룡 두개골은 결국 27만 6000달러(약 3억 3000만 원)를 써낸 케이지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 두개골이 몽골에서 도난된 후 불법 반출된 사실이 밝혀지자 2015년 케이지는 이 두개골을 몽골 정부에 반환해야 했다.
이처럼 공룡뼈를 수집하는 열풍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각계각층에서 불고 있었다. 공룡뼈로 집안이나 사무실을 장식하는 유명 개인 수집가들로는 브래드 피트, 러셀 크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 론 하워드 감독 등 할리우드 유명인사들 외에도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등을 비롯해 석유 재벌들과 소프트웨어 거물들이 있다. 열성적인 공룡 화석 수집가인 디카프리오의 경우에는 현재 8.5m 길이의 알로사우루스의 뼈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대해 파리 경매업체인 ‘비노슈 에 지켈로’의 이아코포 브리아노는 “공룡 화석 시장은 더 이상 과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공룡 화석은 부호들 사이에서 오브제 다트(미술품)로 간주되고 있다”고 평했다.
이런 공룡 화석 수집가들은 슈퍼 리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룡 화석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거대한 공룡뼈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저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매사추세츠 부호의 한 여름 별장 거실 천장에는 거대한 도마뱀인 약 5m 길이의 모사사우루스 뼈대가 매달려 있으며, 현관 입구에는 트리케라톱스 두개골과 뿔이 걸려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 수집가 저택에는 크티오사우루스가 안방 화장실을 장식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있는 한 소프트웨어 회사 로비에는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 두개골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공룡 화석 경매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고객들은 중국을 비롯해 홍콩, 대만,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계 부호들이다. 이와 관련해서 브리아노는 “지난 2~3년 동안 고생물학에 관심을 갖는 중국인들이 부쩍 늘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본토에서도 직접 발굴 작업을 하기 시작했으며, 보통 이렇게 발굴된 거대한 표본들은 전세계 박물관이나 개인들에게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뤼셀의 미술·화석 갤러리 ‘아트 사블롱’의 공동 창업자인 이아코포 브리아노 역시 “우리가 2017년에 판매한 트리케라톱스 두개골은 거대한 호텔 체인을 소유한 중국인 사업가가 구입했다”라고 말하면서 “현재 이 두개골은 중국의 한 스파 호텔 홀에 장식돼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가 하면 2018년 필리핀의 한 수집가는 디플로도쿠스와 알로사우루스가 싸우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 쌍의 화석에 약 300만 유로(약 40억 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싱가포르의 한 수집가는 집안 거실에 매머드 상아를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홍콩의 한 수집가는 익룡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한 열성적인 대만 부호의 경우에는 약 11m 길이의 프로사우롤로푸스 뼈대를 보유하고 있다.
브리아노는 “나는 엄청난 공룡 수집품을 보유한 태국인 가족을 알고 있으며, 중국과 대만에 있는 수집가들에게도 멋진 공룡 화석들을 판매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경매업체 ‘크리스티’의 자연사 관장인 제임스 하이슬롭은 “다만 아시아의 수집가들은 미국이나 유럽 수집가들보다 더 젊은 경향이 있다. 일본과 한국에도 활발한 수집가들이 있는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공룡 화석을 수집하는 방법은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스, 아구테 등 주로 경매업체를 통해서다. 하지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매년 전 세계에서 경매에 나오고 있는 공룡 화석은 다섯 개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육식 공룡은 초식 공룡보다 더 인기가 높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대해 자연사 전문가인 에릭 미켈러는 “수집가들이 포악하게 생긴 공룡의 치아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육식 동물인 알로사우루스는 길이 3.8m로 비교적 몸집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코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12m로 더 큰 초식 동물인 디플로도쿠스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두개골에 싸움으로 인한 부상이나 난치병 흔적이 있는 경우, 골밀도가 높거나 특이하게 생긴 두개골의 경우에도 높은 가격에 팔린다.
공룡 화석의 인기는 경매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12~2013년 크리스티가 처음 공룡 화석을 판매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1년 동안 총 판매액은 약 13만 달러(약 1억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2019년 총 338만 달러(약 40억 원)를 넘어섰다.
소더비의 경우에는 2010년 알로사우루스의 완전한 골격을 130만 유로(약 17억 원)에 판매한 바 있다. 지금까지 소더비 경매에서 판매된 가장 유명한 공룡뼈는 현재 시카고 필드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길이 12m의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다. 이 공룡뼈를 발굴한 고생물학자 수 헨드릭슨의 이름을 따서 ‘수’라고 불리고 있으며, 매년 이 공룡뼈를 보기 위해서 수백만 명이 시카고를 방문하고 있을 정도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룡뼈다. 당시 경매가는 역대 최고였던 830만 달러(약 99억 원)였다.
하지만 이 기록은 2020년 깨졌다. 2020년 10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6700만 년 된 티라노사우루스 뼈대가 3200만 달러(약 380억 원)에 낙찰됐기 때문이다. 현재 ‘스탠’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공룡뼈는 키가 거의 4m에 달하고, 코에서 꼬리까지 길이는 12m가 넘는다. ‘스탠’은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뼈대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것으로, 지금까지 워싱턴 D.C. 국립 자연사 박물관, 일본 도쿄 국립 자연과학 박물관 등에서 여러 차례 전시되기도 했다.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몇 년간 파리에서 수많은 공룡 화석 경매를 주최했던 비노슈 에 지켈로는 알로사우루스와 디플로도쿠스의 두개골을 각각 140만 유로(약 19억 원)에 판매했는가 하면, 또 다른 경매업체인 프랑스의 아구테는 2016년 알로사우루스를 110만 유로(약 15억 원)에, 그리고 2017년 시베리아 매머드를 54만 8000유로(약 7억 원)에 판매했다.
그러나 이런 개인 수집 열풍은 대부분의 박물관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박물관은 예산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들보다 발굴 작업이나 경매에 참여하는 횟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고학자들은 공룡 화석을 자연 유산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이를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폴 바렛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공룡 화석을 수집하는 데 관심이 있는 개인 회사들과 부호들이 더 많아진 듯하다”고 분석했다.
개인 수집가들이 증가하는 데 따른 문제는 또 있다. 대부분의 개인 수집가들은 공룡 수집을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공룡 화석이 경매에 부쳐질 때 구매자가 학술 연구를 위해서 대여해주거나 공개적으로 전시해야 한다는 조건이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탠’의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비밀에 싸여 있는 상태다.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스탠’이 역사 무대에서 영영 사라질까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치솟고 있는 가격에 대한 학계의 반감도 있다. 고고학자들은 그 막대한 돈을 차라리 학계와 일반 대중들을 위해 사용하는 쪽이 낫다고 입을 모은다.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이자 토론토대학의 부교수인 데이비드 에반스는 “3200만 달러를 연 4%의 수익률로 투자한다면 연간 80회, 6주 이상의 발굴 작업에 자금을 댈 수 있다. 이를 통해 발견될 수 있는 놀라운 화석 표본들을 생각해 보라”고 일침을 가했다.
위조품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과 불법으로 발굴한 후 암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이런 점 때문에 고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개인 수집가들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귀중한 화석을 단지 미학적 물품으로 취급하거나, 혹은 그릇된 방법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대해 한 고생물학자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과학의 눈을 찔러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냥 비난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최근 박물관 측은 개인 수집가들, 상업적인 화석 사냥꾼들과 손을 잡고 타협점을 찾아 나서고 있다. 수집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공룡 화석을 세금 공제 혜택을 받는 대가로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박물관에 영구 대여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서로를 위한 일종의 윈-윈 전략인 셈이다. 가령 몇 년 전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마크 노렐은 독일의 한 수집가가 자신의 거실 벽난로 위에 걸어둔 ‘다크 윙’을 빌려와 전시 목록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돈벌이를 위해서 무분별하게 불법으로 화석을 발굴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인 규제도 필요한 실정이다. 다만 사유지에서 발견되는 공룡 화석에 대한 규제는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립공원국의 고생물학자인 빈센트 산투치 박사는 “사유지에서 발견되는 화석의 판매와 이동에 대한 규제가 조만간 시행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사유재산 개념은 매우 확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립공원과 같은 공유지에서 불법적으로 표본을 수집하는 행태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투치 박사는 “과학 연구나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빨리 돈을 벌기 위해서 화석들을 수집하는 개인들이 늘고 있다”라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고생물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케빈 패디언 교수 역시 “이는 우리의 유산을 강탈하는 행위다”라고 비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런 활발한 발굴 작업이 고고학적으로도 이득이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포츠머스대학의 고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마르틸 박사는 “과학자들이라고 해서 화석에 대해 '신이 주신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만약 상업적인 시장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화석들은 땅에서 아예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게 다 영화 ‘쥬라기 공원’ 때문? 공룡뼈 인기의 이유
부자들 사이에서 이렇게 공룡 화석이 인기인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첫째, 어릴 적 로망이나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에 대한 환상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실제 ‘쥬라기 공원’은 공룡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에게 공룡을 친숙하게 만들었다.
매사추세츠의 안과의사인 헨리 크리그스타인의 경우에는 어릴 적 공룡에 대한 열정이 개인 수집으로 이어진 경우다. 현재 그의 집 거실 천장에는 길이 5m의 해양 파충류인 모사사우루스 뼈대가 매달려 있다. 이 뼈대는 크리그스타인이 지난 30년 동안 수집한 화석 가운데 하나다.
크리그스타인은 “나는 맨해튼에서 자랐고, 미국 자연사 박물관은 내가 가장 즐겨 찾는 장소였다”고 말하면서 “지금은 큰딸과 함께 와이오밍주, 다코타주, 몬태나주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집에 전시한 모사사우루스 화석을 발견한 것도 큰딸이었다.
이탈리아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프란체스코 인베르니치 역시 어릴 적 향수 때문에 공룡 화석을 수집하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공룡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공룡 화석을 사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거대한 모사사우루스의 두개골을 보유하고 있다. 이 표본은 현재 밀라노 근처에 있는 그의 집 거실에 전시돼 있다.
둘째, 미술품 수집에 대한 권태감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공룡 화석 수집가인 캘빈 추는 “와인, 시계, 슈퍼카를 사는 데 싫증을 느낀 수집가들이 공룡 화석을 흥미로운 대안으로 삼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부유한 사람들이 "이제 뭘 사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명작’을 소유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공룡 화석을 재건하고 복원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생물학자, 예술가, 디자이너의 손길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명성에 민감한 안목 있는 엘리트들에게는 공룡 화석이 학문과 예술적 성취의 정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넷째,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세계적인 경제 침체기에도 공룡 화석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일례로 2000년대 초반 2만 5000달러(약 3000만 원)였던 트리케라톱스의 두개골은 10년 후 10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하지만 공룡뼈가 과연 안전한 투자처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고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대런 나이쉬는 “공룡 화석은 희귀한 예술품과 같지 않다. 왜냐하면 처음 공룡 화석을 발견했을 때는 독특할 수 있지만, 추후에 화석들이 더 많이 발견될 경우에는 평가절하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