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기록머신’ 중국 양딩신 9단과 격돌…통산 전적 5승 5패 팽팽, 둘 다 한차례씩 우승 경험
지난해 5월 30일 본선 24강전으로 막을 올린 제26회 LG배에서 신진서는 중국 타오신란 9단, 일본 이치리키 료 9단, 중국 커제 9단을 잇달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신진서의 상대 양딩신은 16강전에서 김지석 9단을 제압한 것을 시작으로 신민준 9단을 8강에서, 미위팅 9단을 4강에서 제압하고 대망의 결승에 올랐다.
이번 결승전은 이미 한 차례씩 LG배 우승을 경험했던 기사들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양딩신은 23회 대회 우승자이고, 신진서는 24회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대결에서 승리한 기사는 이창호 9단(4차례 우승), 이세돌 9단·구리 9단(각각 2차례 우승)에 이어 두 번 이상 LG배 정상을 밟는 네 번째 기사가 된다.
양딩신은 현재 커제 9단, 구쯔하오 9단에 이어 중국랭킹 3위다. 신진서보다 두 살 많은 1998년생 양딩신. 그의 세계대회 우승은 2019년 LG배 한 차례뿐이지만 중국 내 최연소 입단(2008년·9세 입단)과 최연소 타이틀 획득(13세 6개월에 이광배 우승) 등 최연소 부문 중국 최고기록을 모두 보유한 천재 기사다.
특히 AI(인공지능)의 활용도와 다음 착점 일치율이 중국 기사들 중 최고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인공지능의 초반을 모조리 외워서 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AI 포석을 완벽하게 흡수했다는 평을 듣는다. 뛰어난 수읽기는 덤이다.
1월 현재 비공식 세계바둑랭킹 집계 사이트 ‘고레이팅’에서는 세계 8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랭킹 1~3위인 신진서, 커제, 박정환과 거의 동급이며 실제 4~7위에 랭크돼 있는 구쯔하오, 딩하오, 변상일, 미위팅에 뒤질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딩신은 몇 년 전 신진서를 비하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내 팬들의 공분을 샀던 적이 있다. 그 전말은 이렇다.
신진서가 한참 두각을 나타내던 3~4년 전, 신진서는 중국 주최 세계대회인 천부배와 백령배에서 중국기사들을 파죽지세로 꺾고 결승까지 진출했었다. 하지만 신진서는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천부배에서는 천야오예 9단에게, 백령배에서는 커제 9단에게 패하며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때 신진서에게 상대 전적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던 양딩신은 신진서를 두고 “나를 비롯한 다수의 중국 기사들이 신진서의 기량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최후의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신진서는 큰 무대 울렁증이 있는 것 같다. 또 나를 상대로도 자신이 가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도발했다는 중국발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후에 과장된 보도였다고 전해지긴 했지만 신진서로서는 기분 좋을 리 없는 발언이다.
신진서와 양딩신의 통산 전적은 5승 5패로 팽팽하다. 2014년 첫 대국 이후 양딩신이 3연승으로 앞서갔으나, 최근엔 신진서가 3연승을 하며 균형을 맞췄다. 가장 최근 대결은 2021년 10월 28일 열렸던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이다. 그 대국에선 신진서가 고전 끝에 끝내기에서 역전승을 거둔 바 있다. 신진서는 양딩신을 높이 평가한다. 평소에도 “전투 바둑과 집 바둑, 속기와 장고 구분 없이 모두 잘 소화해내는 기사가 양딩신이다”고 말한다.
2021년 11월 열린 LG배 준결승에 중국 3명, 한국 1명이 올랐음에도 결승은 결국 신진서와 양딩신의 한·중전이 되고, 직전 열린 삼성화재배 결승도 박정환과 신진서의 한·한 대결이 되면서 중국의 팬들과 언론은 실망한다. 이번에도 우승은 결국 신진서 차지가 아니겠느냐고.
그런데 최근 중국의 태도가 바뀌어 눈길을 끈다. 중국 언론 ‘체단주보’는 최근 기사에서 신진서를 상대하는 양딩신에게도 기회가 생겼다고 보도했다. ‘체단주보’는 “한국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LG배 결승전을 앞두고 심한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다. 최근 국수산맥배 결승에서는 변상일에게 패했고, 우슬봉조 대회에서도 이동훈 9단에게 패했다. 무엇보다 TWT배 세계대회 결승에서 네 살이나 어린 중국 신예 왕싱하오 6단에게 1-2로 패한 것은 충격적”이라면서 “지금처럼 신진서가 흔들린다면 양딩신 9단도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TWT배는 중국 텐센트가 주최하는 인터넷 세계기전으로 비공식 기전이긴 하지만 우승상금 1억 2000만 원의 적지 않은 대회다.
실제 신진서의 컨디션은 최근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 기전팀에서 근무하는 박승철 8단은 “신진서 9단의 경우 평소 한국기원 내 국가대표 연구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최근 방역수칙이 강화되면서 연구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워낙 실력 있는 기사라서 컨디션 회복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신진서도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있었던 바둑리그 대국을 마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칼이 무뎌진 것 같아서 많이 갈고 나왔는데 오늘 대국 내용이 괜찮아 다행”이라며 LG배 결승을 앞두고 컨디션 조절에 힘쓰고 있음을 내비쳤다.
신진서와 양딩신이 맞붙는 결승3번기는 2월 7일부터 10일까지 열린다. LG배 상금은 우승 3억 원, 준우승은 1억 원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