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함·선별장 내 시설 부족…“다 섞어서 가져가며 왜 분리하라고 하나” 볼멘소리도
#투명 페트병 라벨 제거 없이 여러 쓰레기와 섞어 버린 곳 많아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제도는 모든 공공·단독주택에서 투명 페트병을 일반 플라스틱류와 구분해 배출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25일부터 단독주택이 포함돼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원룸 건물 앞에는 라벨도 제거하지 않은 투명 페트병이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또 다른 종류의 플라스틱, 각종 쓰레기 등과 함께 모아 버린 곳도 있었다.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제도 시행에 따라 라벨을 제거하고 분리 배출을 해야 하지만 이를 올바로 지킨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대문구의 원룸에 살고 있는 한 직장인은 “투명 페트병이랑 다른 플라스틱이랑 같이 버린다”며 “어차피 환경미화원 분들이 수거해 가실 때 한꺼번에 모아서 가져가는 것 같아 별 의미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투명 페트병을 버리는 곳이 따로 있었지만 대부분 라벨이 제거되지 않거나 다른 종류의 플라스틱들과 뒤섞여 있었다.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은 “페트병 라벨을 제거해야 하는지 몰랐다”며 “그냥 투명 페트병을 따로 버리라고 하길래 종류 상관없이 투명한 건 다 한꺼번에 같이 버린다”고 말했다.
#종이팩 버리고 싶어도 수거함 없어
종이팩을 분리해서 버리는 곳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종이팩은 내부가 흰색인 일반팩과 내부가 알루미늄으로 코팅된 멸균팩으로 나뉜다. 이 종이팩에는 코팅이나 알루미늄이 붙어 있어 일반 종이와 섞이면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환경부에서는 이러한 종이팩을 다른 종이류와 구분해서 따로 버릴 것을 권하고 있지만 수거함이 없는 곳이 많아 분리배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의 2020년 종이팩 재활용률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15.8%에 불과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한 시민은 집 앞에 종이팩 수거함이 따로 없어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는 “종이팩을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집 주변에 수거함이 따로 없다”며 “종이팩이 생기면 일단 모아놓고 제로웨이스트 숍에 주고 온다. 집 앞 쓰레기장에 버리지 못하고 다른 곳까지 가야 하는 게 귀찮지만 이렇게라도 분리해서 버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광진구의 다세대·단독주택이 몰려 있는 주거지역을 살펴본 결과, 구에서 마련한 각종 재활용품 수거함 중 종이팩을 버릴 수 있는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종이팩을 따로 분리해 버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주민도 많았다. 가족과 함께 서울 동대문구의 한 단독주택에 사는 주민은 “종이팩을 따로 버려야 하는지 몰랐다”며 “재활용품 수거함에 종이팩 수거함이 따로 있으면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환경연합이 지난해 9월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종이팩 분리배출 시민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여자 중 50.5%는 종이팩류를 종이와 따로 분리 배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했다. 또 거주하는 곳(배출처)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62.5%가 없다고 답변했다. 환경부 생활폐기물과 관계자는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제도나 종이팩 분리 배출에 대해 TV나 라디오 광고, 아파트 단지에 관련 팸플릿을 부착하는 등 홍보를 많이 하고 있다”며 “많은 분들이 분리배출 관련 정보를 잘 아시도록 올해도 많은 홍보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별장 내 분리배출 시스템 갖춰야…정부 지원도 필요
투명 페트병이나 종이팩을 분리 배출하더라도 선별 시설 문제로 재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투명 페트병은 수거 과정에서 분리된 채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플라스틱과 함께 한 곳에 모아서 가져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선별장에서 다시 분리 작업을 해야 하는데 선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재활용이 되지 않고 폐기될 수 있다. 종이팩도 일반팩과 멸균팩을 분리해야 하지만 재활용 선별장에서 별도로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재활용이 되지 못한 종이팩은 폐기된다.
동작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은 “투명 페트병 분리를 하고 있지만 수거과정에서 다 섞어서 가져간다. 이럴 거면 왜 분리해서 버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공공재활용 선별장 관계자는 “가정에서 분리 배출을 잘 하더라도 페트병이 혼합돼서 선별장에 들어와 다시 분리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일반팩과 멸균팩을 선별장에서 별도로 분리하지는 않는다”며 “하루 처리량이 있고 인원이 제한적이라 모든 재활용품을 하나하나 분리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분리배출시스템이 갖춰진 선별장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환경연합이 발표한 ‘지자체별 종이팩 분리수거 현황 시민조사’에 따르면 종이팩 재활용 체계를 제대로 갖춘 지자체는 32%(7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68%(156곳)는 종이팩 재활용 체계를 갖추지 않았다. 또 국내 155개 민간 재활용 선별장 중 투명 페트병을 별도 선별하는 시설을 구축한 곳은 29곳에 불과하다.
제로웨이스트 가게 ‘알맹상점’의 고금숙 대표는 “분리배출을 해도 선별장에서 섞이면 의미가 없다. 시민들의 노력과 더불어 선별장에서 페트병이나 종이팩이 별도 분리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또 의무적으로 종이팩을 종이와 따로 수거해서 재활용하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의 박정음 활동가도 투명 페트병만 따로 선별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재활용 선별장 내 종이팩 선별지침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주택 종이팩 수거함 의무화와 함께 지자체 재활용 선별장 내 종이팩 의무 선별 지침을 마련하고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며 “또 투명 페트병만 따로 선별할 수 있는 시설이 선별장에 없기 때문에 정부의 독려 및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투명 페트병을 혼합 수거하는 업체가 확인되면 즉시 시정을 권고하고, 이후에도 지속될 경우 해당 지자체와 협조해 업체와 재계약하지 않고 별도수거를 수행하는 업체와 계약하도록 행정지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관계자는 “선별 시설을 설치하라고 권고하진 않았지만 종이팩을 수거해 선별하는 업체에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며 “선별을 한 만큼 지원을 별도로 해드리는 방향으로 종이팩 선별업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