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PK 50% TK 40%’ 윤석열 ‘호남 25%’ 목표…영·호남 지지 선점 후보에 부동표 쏠릴 가능성
여당발 동남풍과 야당발 호남 서풍이 마지막 대혈투에 돌입했다. 남은 기간 두 바람은 정치적 변곡점마다 정면 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부는 쪽이 ‘수도권·40대·중도층’ 표심을 흔들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 북상의 선점 여부에 따라 양강 구도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뜻이다. 밀리는 쪽은 치명타다. 최악의 경우 정계은퇴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이 국면은 3·9 대선판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동남풍,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호남 서풍이 이전 기류와는 적잖은 차이를 보이면서 판세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여당발 동남풍이 부산·울산·경남(PK)에 국한된 것과는 달리, 현재는 대구·경북(TK)으로 확장했다. 야당발 호남 서풍은 ‘선거의 여왕’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벽도 뚫을 기세다. 상대 안방을 치는 양 진영의 무기가 어느 때보다 강한 셈이다. 배철호 리얼미터 전문위원은 “상대 텃밭이 흔들린다는 것은 변화, 특히 지역주의 극복과 관련이 있다”며 “(이런 변화들이) 수도권·중도층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영남권 득표율 목표치는 ‘PK 50%, TK 40%’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와 관련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권의 동남풍 전략은 과거 총·대선 때마다 꺼낸 필승 카드다. 민주정부 2∼3기를 연이어 창출한 노무현 전 대통령(경남 김해)과 문재인 대통령(경남 거제)도 PK 출신이다. 이들은 2002년과 2017년 대선 당시 PK에서 30% 안팎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TK에서도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 18.7%·경북 21.7%, 문 대통령은 대구 21.8%·경북 21.7%를 얻었다.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단행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TK의 콘크리트 벽’을 깼다. 공고하던 TK에서 두 자릿수(대구 12.5%, 경북 11.0%) 득표율을 처음 기록한 것도 이때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에 합류했던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의 역할이 컸다. 앞서 두 차례(1987년과 1992년) 대선에 도전했던 DJ는 TK에서 매번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쳤다. 1987년 제13대 대선 땐 고작 2%대(대구 2.6%, 경북 2.4%)였다. 5년 뒤인 1992년 대선(대구 7.8%, 경북 9.6%)에서도 두 자릿수 돌파에 실패했다. 준비된 대통령 DJ도 TK 벽을 깬 뒤에야 대권 4수생을 청산할 수 있었다. DJ의 마지막 도전 때 얻은 PK 득표율은 10%대 중반(부산 15.3%, 울산 15.3%, 경남 11.0%)이었다.
결론적으로 DJ는 진보진영 후보 중 첫 TK 10%대일 때,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PK 30%·TK 20%’ 선에 도달했을 때 각각 당선됐다. 이재명 후보의 PK와 TK 지지도는 각각 30%대와 20%대 수준이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영남권 득표율과 엇비슷한 이 후보가 현재 박스권 지지도에 갇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남권에서 ‘노무현·문재인’의 득표율을 넘어야만 승리 마지노선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셈법이 나온다. 송영길 대표가 직접 PK와 TK 득표율을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훨씬 높게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낼 수 있는 최상의 주자는 첫째도 둘째도 ‘영남 후보’”라며 “저쪽(국민의힘)이 비영남 후보인 이번 대선이 우리에겐 승리할 수 있는 적기”라고 했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보다 색채는 옅지만, 영남 후보(경북 안동)다. 부친(윤기중 전 연세대 명예교수) 고향인 충청에서 대망론에 연일 군불을 지피는 윤 후보의 고향은 서울이다. 여의도 한 관계자는 “PK 800만 명과 TK 300만 명의 인구는 최대 유권자인 경기도와 맞먹는 수준”이라며 “여야 모두 이곳(PK)이 대선의 전략적 요충지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호남 인구는 PK의 3 분의 2 수준인 500만 명 안팎이다. 그간 진보진영 인사들은 “호남 몰표를 받아도 영남 공략을 못 하면 말짱 도루묵”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폈다. 이 때문에 영남이 호남보다 선거 변수의 영향력은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윤 후보에겐 진보 텃밭인 ‘호남 공략’이 핵심 승부처다. 특히 이 후보 호남 지지도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에서 윤 후보의 호남 공략은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로 통한다. 2017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던 홍준표 의원이 호남에서 얻은 득표율은 1∼3%(광주 1.6%, 전북 3.3%, 전남 2.5%) 수준이었다.
보수 정권 시대를 다시 열었던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은 보수 후보 사상 처음으로 호남에서 ‘마의 10%’를 돌파했다. 광주(7.8%)를 제외한 전남(10.0%), 전북(13.2%)에선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MB는 10%대 돌파엔 실패했지만, 광주 8.6%, 전남 9.2%, 전북 9.0% 등 비교적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MB(48.7%)는 역대 대선 사상 가장 많은 격차인 530만 표 차이로 이겼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과반(51.6%)·여성·부녀’ 대통령이 됐다.
윤석열 후보의 현재 호남 지지도는 20% 중후반대를 오간다. 2월 6일 공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 결과를 보면, 윤 후보 호남 지지도는 28.5%에 달했다. 이 후보는 텃밭인 호남에서 54.7%에 그쳤다.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는 윤 후보 44.6%, 이 후보 38.4%였다. 이 조사는 TBS 의뢰로 2월 4∼5일 양일간 했다.
일요신문이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2월 10일 발표(2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실시,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한 조사에서도 윤 후보 호남 지지도는 18.2%로 나타났다. 이 후보는 62.8%였다.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는 윤 후보 46.0%, 이 후보 38.1%로 각각 집계됐다(이상 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윤 후보의 호남 지지도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자, 당 내부에선 목표치를 5%포인트 더 올려 잡았다. 설 연휴 기간인 2월 1일 광주 무등산에 오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호남 일정을 마친 지 일주일 만에 “(윤 후보) 호남 지역 득표율 목표치를 25%로 수정한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호남 바닥 민심을 확인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라며 “20%대 중반이 허황된 주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전 포인트는 타이밍이다. 여야 중 ‘영호남 바람’을 선점하는 쪽이 대선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 특히 서울 표심을 흔드는 분기점을 만들 수 있다. 서울 표심의 변화는 캐스팅보터인 ‘중도·40대·화이트칼라’ 지지도를 끌어올릴 동력으로 작용한다. 동남풍이든 서풍이든 수도권 북상의 분기점으로 작용하면, ‘3∼5%’ 반집 싸움인 대선판을 뒤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기관들이 분석한 부동층은 현재 20∼30% 안팎이다. 전체 지지도로 환산하면 최소 4%∼최대 6%가량이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지지도 격차가 오차범위 내 접전 구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동층의 막판 표심 이동이 당락을 가를 수도 있는 셈이다.
두 후보는 설 전후 PK와 호남에 진을 치고 바닥 표심을 훑었다. 설 연휴 직후 PK를 찾은 이 후보는 2월 6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노무현의 꿈을 반드시 실현하고 완수할 것”이라고 했다. 윤 후보도 2월 5∼6일 제주·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노무현을 소환했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찾은 윤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을 언급, “고뇌와 결단을 가슴에 새긴다”고 했다. 2월 6일 광주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자리에선 “5월 정신이 자유민주주의와 국민통합 정신”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통상 ‘경부선 대첩’으로 진행됐던 대선 후보들의 마지막 선거유세가 이번엔 ‘동서남북 대통합 유세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12년 대선 때 박 전 대통령은 ‘경부선 상행선(PK→충청→서울)’을, 문 대통령은 ‘경부선 하행선(서울→충청→PK)’을 각각 택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호남에서 열세인 이 후보와 호남 25%를 뚫으려는 윤 후보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면서 “마지막 유세 때 동서남북을 오가는 유세전을 하지 않겠나”라고 예상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