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전무 퇴임 후 대동공업 대표로…이례적 ‘대기업 유턴’ 두산그룹 핵심 임원 우뚝
일요신문이 창간한 1992년 당시 번듯한 대기업이었지만 현재 이름은 물론 존재조차 희미해진 기업이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큰 파고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공중에서 해체돼도 특별한 일이 아니던 시절, 그곳에 묵묵하게 생업을 이어가던 임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오너를 맞아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거나 구조조정 등으로 직장을 떠나야만 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 임직원에서 하루 아침에 절벽 위에 선 셈이다. 불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가 꺾이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서도 능력을 인정 받아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른 이들이 있다.[일요신문] 2021년 3월 (주)두산은 곽상철 사업본부장을 새로운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했다. 2017년 두산 산업차량BG장으로 영입된 지 불과 4년 만의 일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딘 이후 탄탄대로만을 달린 것은 아니다. 그가 재직 중이었던 회사가 해외 자본에 넘어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였지만 곽 사장은 (주)두산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를 잡았고, 이를 성공시켰다. 30년 이상 기계산업 외길을 걸으며 쌓은 그의 전문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이제 두산그룹을 이끄는 핵심 임원으로 꼽힌다.
곽상철 사장은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에서 생산공학 석사, 미국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각각 취득했다. 그는 1988년 쌍용자동차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쌍용차는 ‘코란도 훼미리’가 큰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쌍용차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쌍용그룹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쌍용차를 대우그룹에 매각했다. 그러나 대우그룹마저 유동성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쌍용차도 채권단 관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쌍용그룹과 대우그룹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체됐으며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이었던 조흥은행은 제3자 매각을 추진했다.
조흥은행은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쌍용차를 매각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상하이자동차가 이렇다 할 투자는커녕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경쟁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쌍용차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외교적 논란 중심에 서기도 했다. 쌍용차는 2000년대 후반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하이자동차의 행보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지만 2010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쌍용차를 매각하면서 논란은 잊혀갔다.
곽상철 사장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곽 사장은 2005년 쌍용차 생산기술연구소장 상무로 승진했고, 2008년에는 전무로 승진해 품질본부장과 생산부문장 등을 역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곽 사장은 쌍용차 위기 시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쌍용차가 2009년 정리해고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극심해졌고, 곽 사장은 당시 사측 대표로 노조와 협상에 나섰다.
곽상철 사장은 쌍용차 노조와 원만한 합의를 이끌지 못했다. 곽 사장은 오히려 “노조의 불법 공장점거 파업으로 쌍용차를 포함한 협력사, 대리점협의체 직원들 모두의 생계가 한계 상황에 내몰려 있다”며 “정부의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해 노조의 비판을 받았다. 사측도 곽 사장을 끝까지 지켜주지는 않았다. 곽 사장은 전무에서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하고, 2010년 1월 퇴임하고 만다. 한편, 쌍용차는 2013년 단계적으로 휴직자·해고자의 복직을 시작했고, 2020년에야 모든 직원의 복직이 마무리됐다.
곽상철 사장은 2010년 3월 대동공업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대동공업은 1947년 설립된 농업용 기계 생산 업체로 국내 경운기·트랙터 시장점유율 1위다. 대동공업의 2009년 매출은 4181억 원으로 매년 수조 원대의 매출을 거두는 쌍용차에 비할 규모는 아니었다. 국내 농업용 기계 시장 규모가 갈수록 줄고 있어 미래는 밝지 않았다. 이에 곽 사장은 2014년 글로벌 농기계 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결과 대동공업의 국내 매출은 2013년 3252억 원에서 2020년 3885억 원으로 19.47%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해외 매출은 2894억 원에서 5073억 원으로 75.29% 상승했다.
수출에 무게를 싣는 전략은 장기적으로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다만 곽 사장 재직 기간에는 효과가 바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대동공업의 매출은 2010년 4410억 원에서 2011년 6191억 원으로 늘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2015년 매출은 5835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이 때문인지 곽 사장은 2016년 3월 임기를 채우자마자 대동공업 대표에서 사임했다. 대동공업은 사업보고서에서 “개인 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고 밝혔다.
곽상철 사장은 대동공업 대표 사임 후 야인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는 흔하지만 한번 중견기업 이직한 인사가 대기업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곽 사장에게는 곧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두산그룹이 2017년 곽 사장을 (주)두산 산업차량BG장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현 현대두산인프라코어)가 2016년 대동공업과 트랙터용 엔진 양산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곽 사장은 이전부터 두산그룹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두산그룹은 2021년 3월 곽상철 사장을 (주)두산 각자대표로 선임했다. 곽 사장은 현재 (주)두산 사업부문장을 맡으면서 두산그룹의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곽 사장을 대표로 선임할 당시 “풍부한 경륜과 네트워크, 업무 전문성을 바탕으로 두산 자체사업의 성장과 혁신을 이끌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산그룹의 설명대로 곽상철 사장의 강점으로는 기계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네트워크가 꼽힌다. 그는 안정적인 경영보다는 도전적인 경영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동공업 대표로 재직할 때도 국내 1위에 만족하지 않고, 신제품과 신시장 개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대동공업은 2013년 티어4에 적합한 저연비·고출력 엔진을 자체 개발했다. 티어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에서 사용하는 배출가스 규제 제도로 1~4단계로 나뉜다. 한국의 경우 2015년 이후 출시된 트랙터와 콤바인에는 티어4에 적합한 엔진을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곽상철 사장은 두산그룹에서도 신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주)두산이 2021년 6월 지게차 사업부를 분할할 당시 곽 사장은 “이번 분할 결정은 산업차량 사업부문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주)두산은 전자소재, 수소연료전지, 유통 등 기존 사업포트폴리오와 신사업을 중심으로 사업 성장의 기회를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곽상철 사장은 (주)두산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곽 사장은 (주)두산이 2021년 7월 발간한 ‘ESG 보고서’를 통해 “(주)두산은 사업에 기반한 이해관계자인 인재, 지구환경, 파트너를 중심으로 ESG 측면의 영향을 투명하게 보고하고자 한다”며 “앞으로 ESG 위원회를 중심으로 ESG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성과지표를 관리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쌍용차에서 겪은 시련을 뒤로하고 다시 '메이저 기업'으로 권토중래에 성공한 곽상철 사장이 두산그룹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