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마음 감춘 청산, 저라면 직진 고백…학교서 배운 것 잊지 않고자 ‘과잠’ 출근”
“내면적으로 본다면 청산이는 올곧은 신념을 가진 친구예요. 반대로 외면적으로 봤을 땐 소꿉친구를 12년 동안 짝사랑하며 티 내지 않고 조심조심, 귀엽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친구죠(웃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윤찬영은 여주인공인 남온조(박지후 분)를 12년 동안 짝사랑해 온 이웃집 소꿉친구 이청산 역을 맡아 순정남의 진수를 보여줬다. 서로 죽이고 또 죽어야 하는 좀비 사태 속, 학교 안에 고립돼 어떤 어른들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온조를 위해 앞장서고 끝끝내 자신을 희생하는 캐릭터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순하고 그저 착해 빠져 보이기만 하던 아이가 말 그대로 제 몸을 불태우면서까지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모습은, 요즘 성인들의 로맨스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순정이었다. 그래서 더욱 시청자들의 몰입을 끌어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옛날 발라드 노래를 들으면 ‘널 위해 죽을 수도 있어’라는 감정이 있잖아요? 그 감정을 청산이는 정말로 가지고 있었고, 항상 온조를 지켜주고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해줬어요. 저는 그런 마음이 엄청나게 큰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수혁이랑 비교해도 청산이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청산이도 정말 멋진 친구고, 운동도 잘하고, 외모도 준수하고, 성격도 나쁘지 않고, 정말 다정하고 스윗한 친구거든요. 훌륭한 남자친구로 손색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웃음).”
12년 동안 소꿉친구로 지내며 누구보다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청산온조’ 커플은 10대들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 속 주인공 커플의 단골 설정 그 자체다. 여주인공이 학급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다른 남학생을 좋아하는 발단, 그 연애 상담을 눈치 없게도 자길 짝사랑하는 소꿉친구 남자 주인공에게 털어놓는 전개, 그런 상대가 야속했던 남자 주인공이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오래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위기와 절정까지.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해피엔딩이 되는 결말을 한데 모아 놓고 보면 식상할 수밖에 없는 클리셰다. 그럼에도 국내외 시청자들로 하여금 ‘앓는 소리’를 내게 만드는 건 그런 고전적인 클리셰가 주는 풋풋한 첫사랑의 맛 때문이 아닐까.
“청산이는 뭔가 소심한 면도 있고 겁도 많아서 온조에게 12년 동안이나 자기 마음을 꽁꽁 감추며 살았잖아요. 그런데 온조를 살려야 한다는 목적 하나로 마음을 굳게 먹고 단단하게 성장했죠. 작품 안에서 청산이의 성장은 그런 면이었던 것 같아요. 제 경우에 제가 실제로 연애를 한다면, (상대방을) 좋아하면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저희 집 고양이가 ‘야옹’ 하고 한마디 해주면 제가 가서 막 끌어안고 뽀뽀하고 그러거든요. 아마 제 마음이 확실한 상태에서 연애한다면 그렇게 직진할 것 같아요(웃음).”
보통 이런 로맨스 물에서 소꿉친구인 남자 주인공은 액션 연기보다는 감정 연기에 좀 더 중점을 두게 된다. 몸을 쓰는 신은 대부분 여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서브 남주인공에게 주어지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남자 주인공인 청산과 서브 남자 주인공인 수혁이 모두 액션의 선봉에 선다. 특히 극 중 가장 시청자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든 도서관 액션 신은 청산의 독무대였다. 이 신을 감명 깊게 본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 나온 “배우 관상에 액션이 없는데 너무 잘해서 놀랐다”는 평에 윤찬영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이 자리를 빌려 특별히 자신의 '액션 혼'을 강조하기도 했다.
“제가 그렇게 액션 연기를 하는 모습을 반전 매력으로 많이 봐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스포츠 광이라 평소에 운동도 많이 좋아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밖에 나가서 뛰어 놀거나 동네 놀이터 가서 축구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액션에 자신감이 있었어요. 체력 하면 또 저라서(웃음). 액션 연기나 감정 연기는 또 다른 면이 있는데 시청하신 분들이 그런 다른 점까지 캐치해주셨던 것 같아요. 관상과 다르다고, 그렇게 말씀 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웃음).”
그렇다고 감정 연기에서 힘을 뺀 것은 또 아니었다. 생존과 우정,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학생들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끌고 간 청산의 노련함은 배우인 윤찬영의 능력으로부터 그대로 소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그가 보여주는 연기의 힘이 ‘과잠’(대학교의 각 학과마다 상징을 넣어 제작하는 옷, 과 점퍼의 줄임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꺼내 놓기도 했다. 실제로 촬영 현장에 과잠을 마치 교복처럼 자주 입고 나타나는 윤찬영을 보며 같은 대학을 꿈꾸게 된 후배가 있었다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상대역인 박지후였다.
“제가 입시 준비를 할 때 정말 열심히 했었거든요. 또 입시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제가 준비했던 과정들을 지후에게 많이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촬영하면서 과잠을 계속 입고 다녔던 건, 과잠을 입음으로써 학교에서 배운 중요한 것들을 잊지 않고 현장에서 보여드리고자 해서 그랬던 거였어요. 지후는 제가 그렇게 과잠을 자주 입고 다니는 걸 보고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대요(웃음). 그런데 제가 이유를 말해준 뒤에 멋있다고 해줘서 고마웠어요.”
갓 스무 살을 넘은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윤찬영의 말에는 왠지 모를 연륜이 느껴졌다. 답변을 할 때마다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이 보다 더 깊이 철이 들어야 했던 그의 배우 인생 10년이 그대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갓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촬영한 ‘지금 우리 학교는’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주요 메시지 중 하나가 어른과 사회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인 만큼, 이제 성인이 된 그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어른 상이 궁금했다.
“‘나도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될 건데, 어떻게 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어른이 돼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이미 스무 살을 거쳐 간, 함께 촬영하는 배우 형·누나들이 현장에서 작품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저도 따라가게 됐던 것 같아요. 제 성인으로서의 시작을 그분들이 잘 잡아준 느낌이에요. 제가 생각할 때 좋은 어른은 자기보다 경험이 없고 어린 나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어리다는 이유로 ‘이렇게 해, 그게 맞는 거야’라고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진 않아요.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