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에 방 만들고 임금·성과급 등 불공정 성토…“노조가 사측 대변, 종이투표 구시대적” 비판도
지난 2월 16일 네이버 밴드에 같은 달 11일에 있었던 KT노동조합 대의원 선거의 불합리함을 지적한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저희가 원하는 건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과 노조 투표에 전자투표를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시글에는 ‘해당 내용을 국회의원, 언론사, 정부기관, 블라인드에 공유하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이 글이 올라온 다음날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임단협 내용이 논의될 무렵인 2021년 9월 8일에 만들어진 이 비공개 밴드에는 지난 2월 18일 오전 기준으로 약 1300명이 가입해 있다. 현재 900여 명이 들어와 있는 비공개 오픈 카카오톡도 제보를 받거나 상황을 공유하는 방으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KT 내부의 MZ세대 직원들이 익명으로나마 온라인에서 단체로 불만을 드러내는 이유는 2021년에 노사가 맺은 임단협에서 결정된 사안들이 직원들 처우를 오히려 악화시켰다고 보기 때문이다.
2021년까지 KT는 월 24시간의 초과근무시간을 고정 인정해 월급을 산정하는 포괄임금제였다. 그런데 임단협에서 올해를 기점으로 추가근무 고정인정시간을 일부 감축한 탓에 인당 연간 100만~200만 원 이상의 추가근무수당이 삭감되리란 관측이 나왔다. 기본급은 1%(직원 1인 평균 연 75만 원)만 인상된 정도에 그쳤다. 2021년 1조 6718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냈는데도 실질적인 연봉 삭감이 이뤄졌다고 본 내부 직원들 반응은 싸늘하다.
사측에서는 대신 정해진 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할 경우 수당을 더 청구할 수 있게 바뀌었다고 개선점을 안내했다. 문제는 출퇴근 버튼을 눌러 근무시간을 확인하는 절차다. 하루 최대 80분씩, 한 달 최소 22시간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연차나 휴가를 사용할 경우 수당이 삭감되기 때문이다. KT 직원 A 씨는 “똑같이 포괄임금제를 하던 SK텔레콤은 포괄임금을 기본급화하고 초과근무수당도 따로 지급하는데 우리는 출퇴근 버튼 눌러가며 일일이 인증해도 예전만큼 받기 힘들고 연차 쓰기도 힘들어진 희한한 구조”라고 비판했다.
KT 내부 젊은 직원들은 기존 노조에 대한 불만이 높다. KT 직원 B 씨는 “노조가 회사 측의 의견만 수용하고 저희에게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다”며 “노조가 조합원 이익이 아닌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자투표' 판매 회사가 오프라인 투표 강행
이들은 노조가 주관하는 모든 투표가 오프라인 현장 투표로만 이뤄져 노조 결정에 반대하는 소신 투표를 하기 어렵다며 강하게 불만을 표하고 있다. KT 직원 C 씨는 “투표와 관련해 주니어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전자투표’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회사에서 오프라인으로 종이투표를 하고 손으로 개표한다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신 투표했다가 색출돼 불이익을 받을까 봐 다수 직원들이 부담감과 압박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임단협 결정에 반대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네이버 밴드의 운영진은 지난 2월 11일 있었던 대의원 선거를 놓고 ‘선거 부정’이 의심된다며 선거 과정에서 제보받은 내용을 종합해 게시했다. 여기에는 ‘누가 반대를 했는지 알 수 있도록 10명 이하 투표소를 포함해 수십 개소로 투표소를 쪼개고 팀별로 시간대별 투표를 강요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KT 직원 D 씨는 “3년 전에도 마케팅 팀 중 한 곳에서 반대표가 하나 나왔는데 팀장이 누군지 색출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며 “이런 일이 매 선거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선뜻 반대표를 던지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직원 E 씨는 “불투명하다는 의혹을 받기 싫으면 공정하고 신뢰도 높은 전자투표를 사용하면 되는데 노조 스스로 의혹을 자처하고 있다”며 “2022년에 이런 구시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통용이 되리라 생각하는 곳이 작금의 KT다”라고 말했다.
#주니어들은 ‘불투명’과 '불공정'에 분노
MZ세대들이 이처럼 조직적으로 반기를 든 배경에는 처우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장기간 축적됐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의 직원 C 씨는 “일 안하는 50대 이상 직책자들이 절반이 넘어 주니어 직원들만 업무 과다에 시달리는데도 고과나 보상은 고연차들에게 쏠려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석연치 않게 연봉까지 삭감되니까 젊은 직원들이 애사심을 갖고 인내할 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임단협 결과를 놓고 내부에서 각축이 벌어지자 사측이 돌연 지급한 특별 격려금 100만 원도 논란거리가 됐다. KT 직원 F 씨는 “나중에서야 저희 사원들에게만 100만 원씩 준 것이고 팀장이나 부장 등 직책자들한테 150만 원씩은 더 얹어 줬다는 걸 알게 됐다”며 허탈함을 토로했다.
경쟁회사와 비교할 때 회사에서 지급하는 성과급 규모와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사원들의 박탈감을 심화하는 요인이다. 통신계열 경쟁업체인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는 내부적으로 사측이나 노조에서 구체적인 성과급을 따로 공지해주고 직원들의 월급명세서에도 성과급 내역이 포함돼 있다. 반면 KT는 연봉에 성과급이 포함되는 구조라고 알려졌으나 실제 지급 내역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다.
앞서의 KT 직원 B 씨는 “월급명세서 내역에는 정기급여와 별도급여로만 표시되는데 별도급여는 급식비랑 통근보조비 정도”라며 “대다수 직원들은 스스로 성과급을 받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저도 실제로 받고 있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부에서는 이직을 희망하는 MZ세대 직원들도 늘고 있다. KT 새노조 이호계 사무총장은 “뛰어난 인재들이 굳이 KT에 머물 이유를 찾지 못하고 더 합리적인 처우를 제공하는 회사들로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KT의 정규직 사원 수는 2020년 9월부터 2021년 9월까지 1년 사이에 3.5% 감소했다.
KT 직원 F 씨는 “이제는 퇴사하지 않으면 ‘루저(패배자)’라는 사내 분위기가 형성 중”이라고 전했다. 다른 직원 G 씨도 “이직이 가능하면 얼른 떠나고 당장 어려우면 여기서 공부를 하거나 재테크를 해서 빨리 자기 갈 길 찾으려는 것이 다수 신입사원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도 직원들 사이에서 계속 불만이 나오는 건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다음 임단협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가 회사 측 의견만 대변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개개인이 당연히 자유롭게 의혹 제기는 하실 수 있지만 그런 사실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