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달려온 ‘연기돌’ 10년…“‘판소리 복서’ 이어 연기 인생 두 번째 전환점”
“올해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건강하게 살자’였거든요. 그래서 필라테스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직 한 달째이긴 하지만 꼬박꼬박 잘 나가고 있다는 게 뿌듯해요. 뭔가 해낸 것 같다는 기분에 취해서 살고 있습니다(웃음). 나 자신을 좀 더 잘 돌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30대를 앞두고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일단은 설레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종영한 ‘꽃 피면 달 생각하고’는 이혜리의 첫 로맨스 퓨전 사극 도전작이다. 영화 ‘물괴’(2018)에서 조선시대를 한 번 겪어보긴 했지만 로맨스가 주가 되는 사극은 처음이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주령의 시대, 밀주꾼을 단속하는 원칙주의 감찰과 술을 빚어 인생을 바꿔 보려는 밀주꾼 여인의 추격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에서 이혜리는 ‘생계형 밀주꾼’ 강로서 역할을 맡았다. 백 냥 빚을 갚기 위해 술을 빚기 시작한 가난한 양반댁 규수지만 어디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당찬 모습으로 배우와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가 로서를 딱 그렸을 땐 정말 순수하고 깨끗한 인물일 것 같았어요. 이번 작품에서도 제가 역시나,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는데요(웃음). 그것에 대한 탈출구하고 해야 하나? 로서가 변신을 많이 하는 인물이었어요. 어느 땐 남장, 기생, 양반 옷도 입어보고 변신해 보고 했던 점이 외양적인 탈출구가 됐던 것 같아요. 제가 ‘응답하라 1988’ ‘청일전자 미쓰리’ ‘판소리 복서’ ‘물괴’에서 다 메이크업을 안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민낯)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생각보다 별로 없어요. 그래야만 제가 맡은 이 인물들이 가진 게 빛날 것 같아서 오히려 그냥 당연하다는 생각만 들어요.”
로서의 앞길을 막아서는 원칙주의자 감찰 ‘남영’ 역에는 유승호가 분했다. 로맨스로 이혜리와 첫 호흡을 맞춘 유승호는 커플 간의 케미스트리를 이야기할 때가 오면 모든 공을 이혜리의 덕으로 돌렸다. 반대로 이혜리 역시 “오히려 (유)승호 오빠의 덕이 컸다”며 주거니 받거니 칭찬 품앗이를 이어갔다.
“그렇게 말해주는 게 저는 너무 고마워요(웃음). 오빠가 저에 비해서 굉장히 과묵하신 분인데 늘 ‘로서 덕분이야’라고 말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힘이 나서 현장에서 엄청 즐겁게 임하게 됐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캐릭터를 실제로도 궁금해 하고 대화를 많이 하고 싶어 하는데, 그래서 ‘꽃달’ 할 때도 남영이라는 캐릭터와 승호 오빠에게 궁금한 게 많았어요. 제가 ‘케미 요정’이란 말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렇게 케미를 만들 수 있단 것 자체가 캐릭터적으로 표현을 잘했다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다음에도 또 듣고 싶어요(웃음).”
유승호의 남영과 이혜리의 로서가 그린 것이 완벽한 로맨스였다면, 변우석의 이표는 이룰 수 없는 사랑 탓에 다소 어긋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극 중에선 연결되지 못한 아쉬움을 다음 작품에선 달랠 수 있을까. 남성 캐릭터뿐 아니라 함께 주연으로 호흡을 맞춘 ‘조선판 MZ세대’ 한애진 역의 강미나에 대해서도 이혜리는 좀 더 발전된 사이로 재회하길 꿈꿨다.
“이번 작품에서 남영과는 로맨스를 해 봤잖아요. 그러니까 다음에는 뭔가 좀 더 대립하는, 범인과 잡아가는 사람 이런 걸 해 봤으면 좋겠다고 승호 오빠와 얘기했어요(웃음). 반대로 우석 오빠와는 ‘우리 다음에 멜로 한 번 해보자’ 그랬고요. 이표가 가진 로서에 대한 마음이 변우석 배우가 연기해서 더 매력적으로 잘 표현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미나는, 다음 작품에서 진짜 편한 상대로 만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간 떨어지는 동거’ 때도 살짝 대립되는 관계였는데 다음 번엔 자매처럼 더 편한 캐릭터로 만나고 싶어요.”
함께한 출연진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애정도 넘치는 만큼, 이혜리 본인이 ‘꽃달’의 가장 큰 홍보요원은 아니었을까. 이쯤 되면 그가 말한 ‘혜라인’의 사람들이 대장인 이혜리가 연기한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혜라인’은 이혜리가 보증(?)한 예능 라인으로 가수 라비, 래퍼 한해가 속해 있다고.
“아, 혜라인 그거 ‘1박 2일’ 때 제가 언급했던 것 같긴 한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웃음). 한해 오빠랑 라비 오빠는 심지어 서로 안 친한데 그냥 제가 그렇게 (혜라인으로) 생각했다는 거였는데…. 그런데 이번 작품 할 때 그 사람들은 딱히 반응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장님, 우리 언제 보나요?’ 그냥 이런 반응이지 작품에 대해선 아무 말 없었어요. 드라마 끝난 건 아나(웃음)? 우리 얼른 봅시다.”
혜라인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이혜리의 팬들은 그의 2021년 마지막이자 2022년 첫 작품인 ‘꽃 피면 달 생각하고’에 관심이 많았다. 배우 전향 10주년을 맞이하며 끌어안았던 작품이 이혜리에게 있어 연기 인생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라는 것도 새롭게 눈여겨 볼 일이다. 별 탈 없이 마무리 지은 ‘꽃 피면 달 생각하고’를 뒤로하고 이제 터닝포인트를 넘어 새롭게 보여줄 이혜리의 또 다른 모습에도 관심이 모인다.
“10년이 됐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감개무량하네요. 사실 2012년부터 연기하면서 ‘응답하라 1988’(2015~2016)을 시작할 땐 그냥 제가 TV에 나오고 이런 드라마에 나온다는 게 그냥 좋았어요. 그러다가 점점 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영화 ‘판소리 복서’를 하면서였고요. 이렇게 연기에 대한 욕심을 갖는 게 ‘판소리 복서’ 이후로는 ‘꽃달’이 두 번째인 것 같아요. 이렇게 여러 작품들로 좀 더 진득하게 스텝을 잘 쌓아가서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