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후보 몰래 ‘이중플레이’ 비판 봇물…비인가 협상 난무 속 ‘소극적’ 윤석열 향한 책임론도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했던 두 당의 단일화 협상은 2월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협상 종료를 선언한 뒤 진흙탕으로 변해버렸다. 단일화 무산 책임을 두고 양당 간 막장 폭로전이 벌어졌다. ‘정권교체’를 호기롭게 외치던 야권에 비상등이 켜졌다.
#협상에서 막장 폭로전으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2월 13일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 방식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했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였다.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결국 안 후보는 2월 20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모두 떠넘기면서 대선 완주를 선언했다.
단일화 결렬 선언이 나오자 두 당은 기다렸다는 듯 거칠게 충돌했다. 개전은 예상됐던 대로 안 후보에 대한 공격선봉을 자처해왔던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했다.
이준석 대표는 2월 2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양당의 물밑 대화 과정 중 국민의당 내부에서 ‘안철수 사퇴 움직임’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 후보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측 관계자에게 ‘안철수 후보를 접게 만들겠다’는 등 제안을 해온 것도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내부 분열에 배신자까지 있었다’는 얘기에 국민의당은 즉각 반발했다. 홍경희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등장하는 성격발달 단계 중 ‘항문기’를 거론하며 “배설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단계인데 이 대표가 여전히 그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이 대표를 맹비난했다.
이어 홍 대변인은 “‘박근혜 키즈’로 출발해 정치권에 입문한 지 1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배설로 쾌감을 느끼고 있으니 언제쯤 ‘키즈’라는 꼬리표를 뗄지 참으로 딱하다”며 “쓸데없는 안개 화법과 가당치 않은 협박 대신 즉각 해당 인사가 누군지 밝히기를 바란다”고 쏘아붙였다. 이준석 대표도 즉각 반응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홍 대변인의 논평 전문을 올리면서 “국민의당 논평인데 막말 쩌네요”라고 지적했다.
총알이 서로 날아들면서 감정이 격화됐고, 같은 날 오후 마침내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이 대형폭탄을 터뜨렸다. 그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2월 초 이준석 대표를 비공개로 만난 사실을 공개하면서 그 자리에서 합당 제안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본부장은 안 후보가 사퇴하고 합당하면 이후 당 최고위원회와 조직강화특위, 공천심사위원회 등 핵심기구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제안이 왔고, 두 후보가 2월 11일 국민의힘 열정열차의 도착지인 여수에서 함께 내리며 단일화를 선언하는 이벤트까지 이 대표가 준비했다고 폭로했다.
이 본부장은 “윤 후보가 아닌 당대표인 자신과 단일화 논의를 하자는 제안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간 공개적으로 당내 단일화 요구를 ‘거간꾼’으로 폄훼해온 이 대표가 실제 뒤에서는 후보 몰래 자기 정치를 위해 ‘단독 플레이’를 했다고 몰아붙인 셈이다.
이준석 대표도 같은 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태규 본부장에게 해당 제안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합당은 지난해 9월 양당 간 논의 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했던 입장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에 일관되게 부정적 반응을 보여 온 이 대표가 직접 나서서 협상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당 안팎은 술렁거렸다. 더욱이 국민의힘 관계자들에 따르면 안 후보 측이 윤 후보 측에 이 대표의 제안을 알려준 뒤에야 윤 후보가 관련 사실을 인지했다고 한다. 이번 대선 최대 분수령이 될 단일화 협상을 대선 후보와 당대표가 ‘따로국밥’으로 진행한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이 또다시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단일화를 절대 안 할 것처럼 협상 파트너인 국민의당을 향해 수차례 조롱하거나 험담 폭격을 가하며 협상 분위기를 깨더니, 뒤로는 자신의 공을 만들기 위해 공천 등 보상책을 제시하며 일찌감치 합당 제안을 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의 비판이다.
“지난 2월 9일 이준석 대표와 이태규 본부장이 만났다면 안 후보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제안일인 2월 13일보다 앞선 것이다. 그렇다면 한참 앞서서 당 수뇌급에서 최고위 협상이 벌어진 것이고 이 대표도 협상 의지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 대표는 계속해서 국민의당을 조롱하며 거칠게 몰아세웠다. 열차에서 내리는 이벤트 준비도 자신이 맨 앞에 서야 성미가 풀리는 이 대표의 평소 행동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신중치 못한 언행이 일을 너무 꼬이게 만들었다.”
결국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까지 나서 이준석 대표에게 공개 경고했다. 권 본부장은 2월 24일 선대본 회의 발언에서 “당대표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사감이나 사익은 뒤로 하고,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앞세워야 할 때”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당 내부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단일화 논의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2월 25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안철수 대표가 출마를 포기한다든지 한다면 그에 대해 적절한 예우를 하겠다가 공식적인 저희 입장”이라며 안 후보의 사퇴만이 유일한 방식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안 후보에게 등을 돌려버렸다.
#권한 없는 협상, 예고된 결과
단일화 협상이 쉽게 마무리될 수도 있었지만 질질 끌게 되고, 완전 결렬이 코앞까지 온 데에는 양당의 협상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보 간 담판을 통한 ‘원샷’ 회담이 필요했지만 바텀업 방식, 즉 권한이 부족한 실무자들이 나서 오랫동안 ‘비인가 회담’만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실제 양측은 바텀업 방식의 여러 라인을 통해 성과물이 도출되기도 했다. 합의문 초안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안 대표의 단일화 결렬 선언 바로 다음날인 2월 21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와 “초안까지 서로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여러 채널을 통해 물밑 논의가 이뤄진 가운데 한 채널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한 ‘가치동맹’과 대선 승리 이후 양당의 당대당 통합도 잠정 합의를 이뤘다는 것이다. 성 의원에 따르면 5~6개 정도 채널을 통해 다차원 협상이 진행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안 후보 측은 협상 성과물이 나왔다는 것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공식라인이 아니라 비인가 라인에서 이뤄진 협의였을 뿐 후보에게서 ‘오케이’ 사인이 나온 것은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안철수 후보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안 대표는 기업을 직접 경영하면서 돈을 떼여본 사람이라 명확한 결과물, 그것도 이중삼중의 확인을 거친 실체를 요구하는데, 비인가 협상이 난무하면서 덜 익은 성과물만 올라갔다는 것이다.
“지금은 다를지 모르겠는데 같이 일했을 때 경험을 되살려보면 안 후보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율을 주긴 하지만 권한을 폭넓게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특정 사안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얘기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안 대표가 빠진 상태에서 이뤄진 협상 결과는 잘 인용되지 못한다.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에 ‘안잘알(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이 많을 텐데 왜 협상을 이렇게 했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 안철수 후보와 정치를 함께 해봤고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에 가 있는 한 정치권 인사의 지적이다.
#톱다운 방식 썼더라면
‘안잘알’이 적잖은 국민의힘이 ‘톱다운’ 방식을 못 쓴 것일까, 안 쓴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안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초 국민의힘 집안싸움이 끝나면서 윤석열 후보 지지율이 급등하기 시작했고, 결국 단일화 없는 당선도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의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윤 후보에 대한 비판 수위를 다시 올리고 있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2월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단일화 문제라고 하는 것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개인적인 문제인데, 윤 후보가 안 후보의 오퍼(여론조사 국민경선 단일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는, 내가 이대로 가도 된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제대로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사실 단일화할 의지가 있었으면, 윤 후보가 여론조사상 굉장히 지지도가 앞서가고 있는데 뭐가 두려워서 그걸 못 받겠느냐. 그걸 받았어야지”라며 “본인이 아마 자신이 있으니까 그걸 안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보기엔 착각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 여론조사상에 나타난 약간의 우위 현상 속에서 이대로 가도 좋다고 보고, 여론 흐름을 제대로 못 보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후보가 2월 28일 투표용지 인쇄 전 마지막 담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단일화 거부 자세를 지속하면서 안 후보 저격을 계속하고 있는 이준석 대표에 대한 상응조치도 안 후보 측이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 막바지 국민의힘에 당내 분란이 찾아올 우려가 쌓여가고 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