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개봉 미룬 3년 치 대작 줄줄이 출격…블록버스터 외화들 성수기 선점, 관객들은 즐겁지만…
1년에 한 명 내지는 두 명 정도 등판하는 1000만 관객 감독만 5명이 올해 동시 출격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영화는 역대 흥행 1위인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8년 만에 내놓는 속편 ‘한산: 용의 출현’이다. 또 다시 이순신 감독을 들고 나온 김한민 감독에게는 비장의 카드 ‘구선(거북선)’까지 갖춰져 있다. 올해 최대 기대작으로 여름방학 시즌 개봉이 유력한데 추석 시즌 개봉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영화 ‘영웅’, 김용화 감독이 ‘더 문’ 등도 1000만 관객 감독이 만든 기대작이다. 게다가 최동훈, 윤제문, 김용화 감독은 모두 두 편 이상의 1000만 관객 영화를 연출한 ‘쌍천만 감독’이기도 하다. 또 다른 1000만 관객 감독인 류승완 감독의 ‘밀수’, 강제규 감독의 ‘보스턴 1947’도 올해 개봉한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분류되는 감독들의 영화도 대거 개봉하는데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 영화 ‘브로커’ 등이 대표적이다.
확실한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톱스타 배우들이 출연하는 기대작들도 즐비하다. 송강호·이병헌·전도연 주연의 ‘비상선언’(감독 한재림), 박보검·수지·정유미·최우식·탕웨이 주연의 ‘원더랜드’(감독 김태용), 유아인·라미란·안재홍 주연의 ‘하이파이브’(감독 강형철), 송중기 주연의 ‘보고타’(감독 김성제), 황정민·현빈 주연의 ‘교섭’(감독 임순례), 현빈·유해진·다니엘 헤니 주연의 ‘공조2: 인터내셔날’(이석훈 감독), 마동석·한석구 주연의 ‘범죄도시2’(이상용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세 가지 분류로 올해 주요 개봉 예정 한국 영화를 언급했는데 이 외에도 다양한 기대작들이 대거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기대작 가운데에는 2020년이나 2021년에 이미 개봉했어야 할 영화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개봉이 미뤄져 사실상 3년 치 기대작이 한꺼번에 쏟아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이 끝나고 극장가가 정상화되는 시점이 4월 내지는 5월 이후임을 감안하면 3년 치 기대작을 8~9개월 동안 모두 개봉해야 한다.
그만큼 개봉 일정 잡기가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1000만 감독 영화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대작 영화는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시즌, 내지는 설과 추석 시즌 등 성수기에 개봉한다. 성수기 시즌에 한두 주 간격을 두고 이런 텐트폴 영화가 개봉하는데 올해 4월 이후에는 성수기 구분 없이 계속 텐트폴 영화가 개봉될 수밖에 없다. 보통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입장에서 텐트폴 영화는 가급적 관객이 많은 성수기에 경쟁작 개봉 일정을 감안해 개봉 일을 확정하는데 올해는 서로에게 경쟁작이 너무 많다.
문제는 관객들이 한국 영화만 관람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영화만큼 외화도 대거 개봉할 예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 일정이 밀린 것은 할리우드 등 해외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계가 개봉 일정을 저울질하고 있는 동안 글로벌 영화사들은 연이어 개봉 일정을 발표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은 오미크론 대유행을 지나 대대적으로 방역 규제를 풀고 있어 극장가도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 영화계가 가장 신경 쓰는 곳은 마블을 보유한 디즈니다. 디즈니는 이미 올해 주요 마블 영화의 개봉 일정을 확정했다. 우선 ‘모비우스’가 4월 1일 개봉하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5월 6일 개봉한다. 여름 성수기인 7월 8일에는 ‘토르: 러브 앤 썬더’가 개봉하며 11월 11일에는 ‘블랙팬서 2: 와칸다 포에버’가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 극장가에서 마블 영화의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매번 그랬듯이 한국 영화계는 마블 영화와의 겹치지 않도록 개봉일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미 마블 영화가 성수기마다 포진을 마치고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나마 12월 겨울방학 시즌에는 개봉 예정인 마블 영화가 없지만 12월 16일에는 워너브러더스의 DC코믹스 영화인 ‘아쿠아맨2: 로스트 킹덤’이 개봉한다. DC 영화가 마블 영화만큼 국내에서 폭발적인 흥행력을 입증하진 못했지만 ‘아쿠아맨1’은 국내에서도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했던 터라 2편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3월 1일 ‘더 배트맨’을 개봉한 워너브러더스는 4월 8일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등 올해 라인업을 발표한 상황인데 흥행 여세를 연말 ‘아쿠아맨2: 로스트 킹덤’까지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한편 디즈니에는 마블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6월 17일에는 애니메이션 ‘라이트이어’가 개봉할 예정이며 아직 일정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실사 영화 ‘피터 팬과 웬디’도 올해 개봉 예정이다. ‘라이트이어’는 인기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버즈 라이트이어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라 기대치가 높고, ‘피터팬과 웬디’는 ‘알라딘’ 열풍을 일으킨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원작 실사영화다.
이렇게 블록버스터 대작 외화들이 개봉 일정을 선점한 상황에서 한국 영화계는 아직도 대부분의 기대작들의 개봉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예산 82억여 원을 투입해 3월부터 한국 영화 신작 개봉을 촉진하는 특별기획전을 연다. 올해 개봉하는 한국 영화를 극장이 자율적으로 선정해 ‘특별기획전’ 형태로 개봉하면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라 블록버스터 외화의 공습 속에서 그나마 한국 영화계가 숨통을 조금은 틀 수 있을 전망이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