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고생해서 분리수거하면 뭐하나…스티커 접착제 탓 국산 플라스틱 재활용 힘들어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후변화, ESG(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탄소 중립 등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리사이클링(재활용)과 업사이클링(재활용품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도 관심의 대상이다. 지속 가능한 도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쓰레기를 최대한 재활용해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활용 열풍에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패션업계가 기후 위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비자를 위해 ‘착한 패션’으로 다가가는 모습이다. 많은 기업이 앞다퉈 폐플라스틱, 버려진 페트병을 활용해 섬유 원단을 만들어 옷으로 재탄생시켰다며 판매 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의류 가운데 국내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상품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한 화학기업 임원은 “국내에서 재활용된 페트병을 활용하면 의류를 만들 수가 없다. 페트병 재활용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고부가가치 소재인 옷을 만드는 섬유를 뽑아낼 수가 없다고 알고 있다. 한국 폐플라스틱은 질이 떨어져서, 섬유처럼 만들려고 하면 뚝뚝 끊어진다. 길게 뽑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옷을 만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폐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는 옷들의 원료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한 페트병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온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일본에서 왔다. 일본 페트병 재활용 퀄리티가 워낙 좋다. 그러다 요즘은 중국에서 온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재활용된 페트병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트렌드가 또 변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현재 일본에서도 리사이클링 플라스틱 수요가 늘어나면서 일본에서 자체 소화되고 있어 과거처럼 수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이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한국에서 플라스틱 업사이클링 상품, 페트병 재활용 의류 등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면서 중국에서는 아예 이 시장을 노린 산업도 생겨나고 있다.
앞서 페트병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서는 1만~2만 원 더 주더라도 착한 소비의 일환으로 페트병으로 만들었다는 의류를 사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재활용된 페트병으로는 의류를 못 만드니 대부분 수입해 와야 하는데 중국이 이 시장을 노리고 페트병을 생산한 뒤 곧바로 구겨서 한국으로 수출한다. 그래도 마진이 남는다고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재활용 플라스틱을 구할 수 없어서 새 재료보다 재활용 된 게 더 비싸다. 중국에서 수출한 건 사실상 새 페트병이나 다름없으니 이걸로 섬유를 만들면 길게 잘 나온다고 한다. 한국에서 웃돈을 주면서 중국 좋은 일만 시키고 있던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페트병 재활용 문제가 이상하게 꼬인 배경에는 환경부의 재활용 정책이 지적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애초에 불허 대상인 제조 방식이 허가되면서 국민들만 괴롭힌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최근 환경부는 페트병 라벨을 떼서 재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전세계적으로 국민이 라벨을 떼서 재활용하는 정책을 운용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라벨을 떼는 건 풍력선별이란 장치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라벨이 아니라 접착제다.
한 재활용 업계 전문가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는 국민이 직접 라벨을 떼서 재활용하는 나라는 없는데 이들 나라가 한국보다 재활용이 더 잘된다. 한국은 라벨을 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생산돼선 안 되는 제품이 생산되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 재활용이 잘된다고 하는데 접착제 때문에 재활용된 플라스틱의 품질이 굉장히 낮다. 우리나라에서 재활용된 플라스틱으로는 계란판 껍데기 정도 만드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전문가는 “국민은 국가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데 재활용은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즉석밥 용기가 재활용이 안 된다는 건 많이 알려졌지만 이건 그나마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라도 있다. 그보다 나쁜 건 스티커를 붙여 놓은 제품들이다. 우리나라는 세정제 등 상품 전면에 스티커를 그대로 붙이는 제품들이 있는데 이건 다른 나라에서는 허가가 안 된다고 봐야 한다. 이걸 국민이 뗀다고 해도 접착제가 남아 있어 어차피 재활용에 차질이 생기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게 재활용품에 섞이면 재활용을 하더라도 그 수준이 떨어져 쓸 데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말을 종합해보면 한국은 국민들은 열심히 재활용하지만 생산돼선 안 되는 제품이 많아 쓸모가 별로 없다. 반면 외국은 애초에 재활용 잘되는 것만 생산하게 해 재활용을 열심히 안 해도 재활용 수준이 올라간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열심히 국민이 모은 플라스틱에 붙여진 스티커를 떼기 위해 가성소다에서 끓여야 한다. 그러면 플라스틱 순도가 떨어져 제대로 된 제품으로 만들 수 없다.
결국 한국 시장에서 중국만 웃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준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재활용 업계 전문가는 “결국 외국처럼 대표적인 플라스틱 상품인 페트병은 만들 때부터 재활용이 쉽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환경부 재활용 우수 등급에는 유럽, 일본, 심지어 중국에서 금지된 페트병이 포함돼 있다”면서 “국민이 라벨을 떼도 접착제가 페트병에 남으면 옷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 수 없다. 외국에서는 접착제가 페트병에 남는 방식은 생산 금지하는데 이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