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MMORPG 대히트, 게임업계 이끈 선구자…서울대 컴공과 친구들과 경쟁하며 성장, ‘검사장 커넥션’ 곤욕도
고인의 지나온 삶은 ‘서울대 86학번’과 떼어놓을 수 없다. 화합과 불화를 번복하며 고인의 인생을 뒤흔든 인연의 대부분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시절 맺었다. 넥슨의 창업과 이후 행보에도 서울대 재학 시절 친구들의 영향을 톡톡히 받았다. 아내인 유정현 씨와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학교 2학년 때 신입생이던 서울대 87학번인 유 씨를 만나 인생의 동반자로 만들었다. 유 씨는 넥슨의 창업에 힘을 보탰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는 경영지원본부장 역을 맡아 남편을 도왔다. 지금은 NXC의 감사를 맡고 있다.
넥슨 창업 단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친구는 ‘서울대 86학번’ 컴퓨터공학과 동기인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다. 고인은 1994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카이스트 대학원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게임 회사를 차릴 결심을 한다. 이때 두 팔 걷어붙이고 함께 창업에 나서 넥슨의 기틀을 다진 동지가 ‘천재 개발자’ 송재경 대표다.
개발 자금이 절실했던 초기 넥슨은 당시 수요가 폭발적이었던 홈페이지 제작을 담당하는 회사로 출발했으나 둘의 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영에 두각을 드러냈던 고인이 개발 자금을 끌어오는 동안 송 대표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게임 개발에 몰두한다. 둘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국내 최초의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바람의 나라’다. 김진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1996년 출시된 ‘바람의 나라’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빼어난 그래픽 그리고 2000년대의 인터넷 기반 PC 환경이라는 토양 위에서 ‘대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바람의 나라’ 정식 출시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친구 사이가 틀어졌다. 개발업무 일체를 담당했던 송 대표는 돌연 넥슨을 떠났다. 당시 고인과의 불화가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송 대표는 넥슨의 경쟁사인 엔씨소프트에 둥지를 틀게 된다.
고인의 친구로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대 87학번인 김택진 회장은 1997년 3월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고인과 김 회장과 송 대표는 셋이서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송 대표가 넥슨을 떠나 아이네트로 옮기자 김택진 회장은 아이네트를 인수하며 송 대표를 영입한다. 이들의 협업으로 신일숙의 동명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리니지’가 태어났고 단일 게임 최초로 누적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후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앞다퉈 새로운 게임을 출시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발전의 동력이 되는 치열한 경쟁 체제를 유지했다. 두 대표가 뭉칠 때도 있었다. 2011년 도쿄증권거래소에 넥슨을 상장해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게 된 NXC는 2012년 6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지분 14.68%를 취득한다. 세계적인 게임회사 EA를 인수하기 위해 두 회사가 협력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EA 인수가 불발되면서 상황이 애매해졌다. NXC가 엔씨소프트 지분 다량을 보유했으나 경영에는 참여하지 못한 채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2014년 10월 지분을 약간 더 매입해 1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넥슨이 2015년 1월 27일 지분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 공시하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10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경영권을 놓고 벌어진 둘의 갈등은 일단락됐다.
고인은 2014년 친구들과 함께 벤처 자선회사 ‘C 프로그램’을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고인과 김택진 대표, 서울대 컴공과 86학번이자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현 GIO(글로벌투자책임자),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인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현 이사회 의장,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86학번인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C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과학인과 단체 등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긍정적인 선순환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고인의 인생을 뒤흔들 사건이 벌어진다. 서울대 법대 86학번이자 고인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진경준 전 검사장과의 ‘커넥션’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2016년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로 약 150억 원에 달하는 진경준 전 검사장의 재산 규모가 알려지며 자산 형성 과정에 관심이 쏠렸다. 직후 진 전 검사장이 2005년 넥슨에서 4억 2500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 당시 비상장 기업이던 넥슨의 주식을 대거 매수한 뒤 상장 후 매도해 129억 원의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은 사실이 알려졌다.
고인이 진 전 검사장에게 약 5000만 원의 여행 경비를 제공하고 제네시스 승용차를 공여한 점도 덩달아 알려지면서 두 친구는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대학 시절부터 친구관계였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의 심리를 복잡하게 했다. 1심에서는 ‘선물’로 2심은 ‘뇌물’로 3심에서 다시 ‘선물’로 규정되면서 판결이 뒤집히기를 반복했다.
결국 파기환송심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그의 명예에 돌이킬 수 없는 흠집이 났다. 결국 2016년 고인은 넥슨의 등기이사직을 사임하며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저는 사적 관계 속에서 공적인 최소한의 룰을 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법의 판단과 별개로 평생 이번의 잘못을 지고 살아가겠다’고 전했다.
다만 넥슨 내부에서는 마냥 배척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넥슨코리아에 재직 중이었다고 밝힌 A 씨는 “사내 내부망에 비판 의견이 올라오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JJ회장(고 김정주 이사의 별칭)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 후 고인은 예전처럼 사업에 의욕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넥슨의 사업 실적도 부침을 반복했다. 2018년에는 넥슨코리아는 약 518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고 상장 계열사인 넥슨지티와 넷게임즈도 2019년 1~3분기 동안 각각 45억 원과 21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넥슨은 2019년 돌연 매각 절차에 돌입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
2019년 한 해 동안에는 게임 ‘HIT’ ‘듀랑고’ ‘마블 배틀라인’ 등의 서비스를 종료 결정했고 또 같은 해 11월 ‘드래곤하운드’를 비롯한 5개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넥슨코리아 전직원 연봉을 800만 원 인상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국내 IT업계 연봉의 ‘줄인상’ 대열을 이끌었다. 새롭게 인재를 영입하며 신기술 도입에도 의욕을 보였던 고인은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매각 대금과 관련한 입장 차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7월 고인은 돌연 NXC 대표에서 물러났다. 취임한 지 16년 만이다.
이런 가운데 급작스럽게 전해진 비보에 관련 업계는 침통한 분위기다. 김택진 대표는 그의 부고를 들은 후 페이스북에 “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며 “같이 인생길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는 글을 남겼다. 송재경 대표 역시 페이스북에 믿기 어렵다는 심정을 전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만나 인생의 모험을 함께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다”며 “부디 떠나간 곳에서는 편안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의 A 씨는 “비보를 들은 후 고인에 대해 잘 모르는 저연차 직원들을 포함해 주변에서 다들 크게 놀라고 안타까워했다”며 “고인이 단순히 기업의 총수가 아니라 넥슨이라는 회사의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넥슨의 다른 직원 B 씨는 “어릴 때부터 넥슨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넥슨에 들어오게 됐고 고인은 내 우상이자 롤모델”이었다며 “한동안 다들 황망한 심정을 추스르기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넥슨의 게임을 즐겼던 이들 역시 추모에 나섰다. 한 넥슨 유저는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했지만 넥슨에서 출시한 게임을 잘했던 덕분에 친구들이 나를 같이 노는 무리에 끼워준 적 있다”며 “고인이 없었다면 나는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을 것이다”는 감사 인사를 보내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