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력 강해지고 중증도 떨어질 가능성…WHO,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료 검토중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서서히 그 끝이 보이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서태평양 지역과 동남아시아에선 여전히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 추세지만 이미 대유행을 지나간 국가들은 대부분 안정기에 돌입했다. 이처럼 오미크론 변이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종식을 앞당겼지만 또 다른 변이가 등장해 상황을 다시 악화시킬 수도 있다. ‘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될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의 마지막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아직 WHO가 파이라는 이름을 공식으로 부여하지 않았지만 세계 각국 연구기관에서 하나둘 새로운 변이를 보고하고 있다.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변이 바이러스는 ‘델타크론’이다.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가 섞인 잡종 변이로 만약 델타의 높은 위중증률과 치명률에 오미크론의 높은 감염력이 더해진다면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사실 델타크론이 최근에 발견된 것은 아니다. 1월 초 키프로스공화국의 키프로스대학 생명공학·분자 바이러스학 연구소 소속 전문가들이 델타크론을 처음 발견했다. 레온티오스 코스트리키스 연구소 소장은 “새 잡종 변이는 델타 변이의 유전적 기반에 오미크론의 여러 돌연변이 요소들이 합쳐져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델타크론은 실존하는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아닌 실험실 오염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톰 피칵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델타크론이라는 새 변이가 발견됐다고 알려졌지만 실험실 오염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반면 키프로스 연구팀은 실험실 오염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렇게 잊힌 델타크론이 최근 유전자 정보가 공식 확인되면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3월 8일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과학자들이 세계 최대 코로나19 게놈 서열 데이터베이스인 국제인플루엔자정보공유기구(GISAID)에 델타크론 변이의 완전한 유전자 정보를 제출하면서 비로소 델타크론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이미 2월에도 워싱턴DC 공중보건연구소의 스콧 은구옌 박사가 GISAID에 제출된 프랑스 코로나19 샘플에서 델타크론을 발견했다.
결국 3월 10일 WHO 코로나19 기술팀장이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 지역에서 델타크론이 확인됐다”고 공식 확인한 뒤 “다만 사례는 매우 적고 중증도는 다른 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본적으로 1월에 처음 발견됐지만 3월까지 개체 수가 급증하지 않은 데다 중증도도 심각하진 않다. 따라서 델타크론이 오미크론을 밀어내고 새로운 우세종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델타크론과 같은 변이는 거듭해서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오미크론의 하위 변이인 ‘스텔스 오미크론(BA.2)’이 있다. 3월 14일 기준 국내 감염 검출률도 26.3%나 된다. 스텔스 오미크론은 오미크론보다 평균 세대기도 0.5일 빨라 전파력이 30%가량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미트론의 낮은 중증도는 그대로 유지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델타 변이가 우세종일 당시 하위 변이인 델타 플러스가 새롭게 발견됐지만 델타 변이의 큰 틀에서 함께 관리됐던 것을 감안하면 스텔스 오미트론 역시 오미크론 변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전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이다. 다시 말해 WHO로부터 파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부여 받을 새로운 변이가 언제쯤 어떤 형태로 등장하느냐다.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세지지만 중증도는 떨어지는 변이가 우세종이 되는 형태로 진행한다. 델타 변이 역시 ‘우한’ 폐렴이라 불리며 확산되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이후 등장한 알파, 베타, 감마 변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은 강하고 중증도는 약한 편이었다.
강한 전파력을 바탕으로 델타 변이는 전세계적인 우세종이 됐다. 이후 엡실론, 제타, 에타, 세타, 요타, 카파, 람다, 뮤 등 8개의 변이 바이러스가 더 등장했지만 델타 변이보다 전파력이 떨어져 우세종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막강했던 델타 변이는 더 강한 전파력의 오미크론에 우세종의 자리를 내줬는데, 오미크론은 전파력이 더 강한 만큼 중증도는 약해졌다.
결국 언젠가 파이 변이가 등장할 수 있지만 오미크론의 우세종 자리를 빼앗으려면 더 전파력이 강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중증도는 더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전파력은 오미크론보다 떨어지지만 중증도가 강한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해 파이라는 이름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형태의 신종 변이 바이러스라면 전파력이 강한 기존의 오미크론을 밀어내고 우세종이 되긴 힘들다. 우세종이 되지 못한 변이 바이러스는 곧 사라진다. 그렇게 위세가 당당하던 델타 변이도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면서 거의 사라졌다.
행여 전파력은 약하지만 중증도가 높아진 파이 변이가 등장할지라도 처음 발견된 국가와 인접 국가들이 어느 정도 기간만 방역으로 잘 버티면 극복할 수 있다. 반면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은 강하고 중증도는 떨어지는 형태의 파이 변이가 등장할 경우 우세종이 될 수 있지만 이는 대유행 종식을 더욱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오미크론보다 위중증률과 사망률이 더 낮은 변이 바이러스는 계절 독감보다도 가벼운 질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롭게 등장할 파이 변이가 코로나19 팬데믹의 마지막 ‘변수’가 아닌 팬데믹 종식을 앞당기는 ‘상수’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면서 서서히 코로나19 대유행 종식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는 2월 16일(현지시각)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오미크론 등 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가 진화하면서 점점 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보게 될 확률이 80%이고 오미크론보다 더 치명적일 시나리오는 20% 수준”이라고 밝혔다. 물론 치명적인 신종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할 확률이 20%나 된다는 얘기가 여전히 불안 요소일 수 있다.
방셀 CEO는 “지금이 코로나19 팬데믹 최종 단계라고 보는 게 타당한 시나리오”라고 밝혔다. 행여 오미크론보다 치명적인 신종 변이가 등장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전파력이 약해 오미크론을 대신해 우세종이 될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방역을 강조해온 WHO에서도 변화의 기운이 느껴진다. 3월 12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WHO가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종료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PHEIC는 갑작스럽게 특정 질병이 세계적으로 대거 유행하는 경우 국제보건규정(IHR)에 따라 WHO가 발령하는 최고 수준의 국제 보건 경보다.
WHO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뒤 미국과 독일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1월 PHEIC를 발령했으며, 40여 일 뒤 팬데믹을 선언했다. PHEIC 발령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임박했음을 알렸던 WHO가 2년 2개월여 만에 PHEIC 종료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팬데믹 종식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