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사태 1년, 대장동 논란으로 역할론 재부상 ‘아이러니’…차기 정부의 개혁도 ‘회의적 시선’
#표류하는 LH 조직 개편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LH 투기 사태가 불거지자 “LH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 불능으로 추락했다”며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하는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LH 조직 개편안으로 △주택·주거복지 부문과 토지 부문을 병렬 분리하는 방안 △주거복지 부문과 주택·토지 부문을 병렬 분리하는 방안 △주거복지 부문은 모회사로 주택·토지 부문은 자회사로 수직 분리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정부는 2021년 7월과 8월 공청회를 거쳐 여·야 합의 후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었다.
정부에서는 3개의 방안 중 LH를 모회사와 자회사로 분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LH 개편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개편 작업이 수월하지 않았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공청회에서 “해체 수준 개편 발언에 매몰돼 조직 분리를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기원 민주당 의원도 “모·자회사 수직분리 안은 득보다 실이 크다”며 “자회사는 될수록 모회사에 이익을 덜 보내려고 할 것이고, 모회사의 통제 감독이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 특혜 논란이 불거진 후에는 정치권에서도 LH 조직 개편 동력이 힘을 잃는 모습이다. 민간 사업자가 개발 사업으로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것이 논란이 되면서 공기업의 역할론이 재부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의 주요 이슈도 LH가 아닌 대장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투기에 가담한 일부 LH 직원이 무죄를 선고받은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제2형사부는 2021년 11월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혐의로 기소된 LH 직원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A 씨가 취득한) 내부정보는 LH가 직접 사업을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LH 사태를 계기로 국회가 관련법 개정에 나서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주택특별법과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이다. 국회는 공공주택특별법의 ‘업무처리 중 알게 된 정보 이용을 금지한다’의 내용을 ‘주택지구 지정 관련 미공개정보 이용을 금지한다’로 개정했고, 처벌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위반 행위로 얻은 재산상의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로 확대했다. 공직자이해충돌방지법은 2021년 5월 제정된 것으로 주요 내용은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현재도 부동산 투기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3월 4일 기준 부동산 투기 의심사례 1670건과 6652명을 단속한 결과 4200명을 기소했고, 62명을 구속했다. 대부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사건 별로 유·무죄 판결이 엇갈린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부동산 불법 투기에 대한 처벌만 강화됐을 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LH 개혁과 관련해서는 소식이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오는 5월 9일 만료됨에 따라 LH 조직 개편은 사실상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LH 조직 개편과 관련해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윤 당선인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LH의 기능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윤 당선인은 건설임대 중심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연평균 10만 호씩 5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LH 조직 개편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은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개인의 일탈을 고치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이번이 기회다 싶어서 쪼개기 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과연 LH 개편안의 핵심이라고 보는가”라며 “약 1만 명의 LH 전체 임직원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소수의 일탈자들이 저지른 일인데 조직을 쪼개는 것이 접근의 방식이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뚜렷한 LH 혁신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임재만 세종대학교 교수는 “과거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통합 당시 오랜 기간 논의한 것을 비추어볼 때 LH의 기능 분리 역시 신중하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LH 기능을 분리할 경우 개별 기능의 전문성을 높이고, 기존 사업의 지속성을 어떻게 강화할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당사자인 LH는 지난해 직원 정원 2000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하는 등 자체적인 조직 개편에 나섰다. LH는 지난해 1단계로 약 1000명의 직원 정원을 줄였고, 최근 발주한 ‘조직인력 정밀진단 및 설계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추가로 정원을 축소할 계획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직원 숫자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직원 정원이 줄어든 것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LH의 일반 정규직 직원의 정원은 2020년 말 7317명에서 6738명으로 줄었지만 현원은 7150명에서 7116명으로 큰 차이가 없으며 정원보다 현원이 많은 상황이다. 공공기관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 등에 한해서만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므로 직원을 강제로 해고할 수도 없다.
LH는 올해 1월에도 본사 9개 본부를 6개 본부로 축소하고, 중복기능이 있는 처·실을 통합했다고 밝혔다. 본사 축소를 통해 확보한 인력은 지역 현장 조직으로 배치된다. 하지만 정세균 전 총리가 언급한 “해체 수준의 조직 개편”과는 거리가 멀다. 당초 문재인 정부에서 언급한 모회사·자회사 분리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후속 조직 개편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올해 2월 개최된 LH 혁신위원회에서도 조직 개편과 관련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시민단체에서는 추가적인 LH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투명경영이 확보되지 않으면 차명으로 투기하는 등의 방식으로 투기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변호사는 “LH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에서 조직에 대한 제도 개선이 논의돼야 한다”며 “LH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조직 개혁에 관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LH 관계자는 “인력 감축이나 본부 축소 등 우리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진행을 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며 “모회사로 분리하는 등 조직의 틀을 수정하는 개편은 LH에 재량권이 없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