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기준 따르지 않거나 파견 직원에 부당 지시까지…LH “즉시 징계 조치 및 제도개선 추진 중”
LH 연구원들의 각종 부정행위가 발견돼 다시 한 번 논란이 예상된다. 경상남도 진주시 LH 본사. 사진=연합뉴스
#최저 점수가 8.6점인데 0점? 엉터리 연구원 채용 과정
일요신문이 입수한 LH 감사실의 내부 감사결과 자료에 따르면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원 A 씨는 최근 취업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씨의 직책은 차장급으로 연구과제 보조업무를 수행할 기간제 연구원의 채용 업무를 담당했다.
A 씨는 연구에 필요한 기간제 연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채용 자격요건(도시공학과·도시계획학과·스마트도시학과·드론학과 등 졸업)에 미달하는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해당 연구에 필요한 기간제 연구원은 1명이었고, 지원자도 1명이었다. 적격자가 없으면 공고문에 따라 재공고를 실시해야 했다는 것이 감사실의 판단이다.
다른 연구에서는 서류전형 관련자격 점수를 잘못 계산해 합격 요건을 갖췄지만 탈락한 지원자가 발생했다. 관련 자격 점수는 자격증을 기준으로 측정되는 계량점수로 10점 만점에 최저 점수는 8.6점이다. 그러나 A 씨는 심사 과정에서 지원자에게 0점을 부여했다. 해당 지원자는 관련자격 점수에서 8.6점을 받으면 서류평가 통과 점수인 70점이 넘어 면접을 볼 자격이 있었다.
A 씨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요청에 따라 프로젝트 실무전문가는 만 20~34세를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락한 지원자는 40대로 채용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관련자격 점수를 0점으로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채용공고문과 서류평가 배점기준을 따르지 않고, 주관적 판단에 따라 임의 탈락시키는 것은 엄연한 인사규정 위반에 해당한다. 감사실은 A 씨에게 감봉 1개월, 부서 실장인 B 씨에게는 견책 처분을 내릴 것을 LH에 요구했다.
#파견 직원에게 부당 지시…위탁 계약도 엉터리
C 씨는 2018년부터 토지주택연구원 주택성능연구개발센터(HERI)에서 연구 및 실험시설 운영·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감사실 감사 결과 C 씨는 대학교 산학협력단 소속 파견 직원 D 씨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D 씨는 그의 소속 대학교와 LH의 공동 연구를 위해 파견된 인력이었다. 그러나 C 씨는 D 씨에게 개인적인 자체 연구를 위해 관련 출장을 다니며 실험을 시키는 등 총 9차례 부당한 업무를 지시했다.
뿐만 아니다. C 씨는 다른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계약을 체결하지도 않고 실험을 대행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어떤 협력업체는 LH의 실증실험동 시설을 14회 사용했지만 C 씨는 2회에 한해서만 사용료를 받고, 12회를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 LH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 감사실은 LH에 C 씨에게 정직 3개월의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연구원 E 씨는 용역 업무를 위한 도급 계약 체결 과정에서 자격 요건인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비계·구조물해체 공사업 또는 보링·그라우팅공사업’을 누락했다. 그 결과 시공에 필요한 건설공사업을 등록하지 않은 업체가 도급 계약 상대자로 선정됐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LH는 보링·그라우팅공사업을 등록한 다른 업체와 위탁시공 계약을 체결했다. 결국 처음 계약을 맺은 업체는 아무런 용역을 제공하지 않고 계약금만 받은 셈이다.
연구원 F 씨는 자녀가 수강한 전화영어 교육을 자신이 수강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 자기계발교육비 122만 원을 수령하기도 했다. F 씨는 본인의 영어 교육비가 6개월 단위로 결제되지만 LH의 자기계발비 신청은 매월 제출해야 하는 시스템이기에 자녀의 영수증을 대신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F 씨가 허위로 서류를 제출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
LH 관계자는 “감사실 처분요구에 따라 (연구원들에 대한) 조치를 즉시 취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용역 등 계약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위원회를 신설해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연구원에 대해 교육훈련종합이수제 도입 및 연구윤리교육 강화 등 청렴의식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도권 3기 신도시 등에서 토지를 매입한 LH 직원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LH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내부 쇄신 LH, 갈길 먼 신뢰 회복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LH는 정부보조금으로만 14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공기업 직원의 도덕적 해이는 공공성과 경영성과를 저해하는 요인”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직자윤리법 적용을 확대하고, 감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최근 LH 임직원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LH는 내부 쇄신에 나섰다. LH는 지난 5월 14일 △사업지구 지정 전 임직원 토지 보유 현황 조사 △임직원이 부동산 취득할 시 사전 신고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김현준 LH 사장은 “부동산 투기 등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해 엄중히 조치할 것”이라며 “새롭게 도입된 부동산 등록, 취득 제한, 거래조사 등을 철저히 시행해 LH가 국민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