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12차례 미사일 발사 벼랑끝 존재감 과시…윤석열 향해 원색적 비난 “도발 책임 돌리기”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12차례에 걸친 무력도발을 감행했다. 이중 7차례는 1월에 일어난 일이다. 1월 5일 자강도 일대에서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급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도발 포문을 열었다. 1월 11일엔 MRBM 최종 시험발사를 했다. 1월 14일엔 평안북도 의주 인근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 KN-23 2발을 동해상으로 쐈다.
1월 17일 평양 순안국제공항 일대에선 동해상으로 KN-24 2발을 발사했다. 1월 25일 장소 미상 내륙에서 장거리 순항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쐈다. 1월 30일엔 자강도 무평 일대에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1발을 쏘아 올렸다. 여기까지가 1월 북한이 자행한 무력도발 일지다.
이 무력도발은 국내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월은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도발을 하긴 했는데, 한국을 향해선 강력한 인상을 남길 수 없는 시기였다”면서 “당시 쏟아지던 북한의 도발은 대선을 앞두고 최대한 존재감을 끌어올리려는 의도였을 텐데 그렇게 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월 도발 총력전을 벌였던 북한은 제20대 대선을 전후로 다시 연쇄 무력도발에 돌입했다. 2월 27일 북한은 ‘정찰위성 개발’을 명분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용 탄도미사일을 1발 쐈다. 3월 5일 ICBM 개발용 탄도미사일을 1발 더 추가했다. 3월 16일에도 같은 탄도미사일 1발을 쐈지만, 이날 발사는 실패였다. 상공 20km에서 미사일이 폭발한 까닭이다.
머쓱해진 북한은 3월 20일 종목을 바꿔 다시 한 번 도발에 나섰다. 평안남도 숙천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방사포를 4발 쐈다. 3월 24일엔 무력도발 강도가 최고조에 달했다. 신형 ICBM ‘화성-17형’을 고각으로 시험발사했다. 비행거리는 1080km, 정점고도는 6200km 이상으로 파악됐다.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넣는 발사체를 시험한 셈이다.
북한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는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3월 29일(미국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회담한 뒤 “불안정을 초래하는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우려를 공유했다”면서 “이는 명백한 복수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3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 방문했다. 브뤼셀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북한 ICBM 시험발사 소식을 긴급보고받은 기시다 총리는 “용서할 수 없는 폭거”라면서 “단호하게 비난한다”고 했다.
임기 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3월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스스로 파기한 것”이라면서 “정부 교체기에 안보에 한 치도 빈틈이 없도록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유관국 및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모든 대응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국제사회 비난 여론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도발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3월 28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공격무기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북한이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는 신형 ICBM 발사 기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면서 “계속해 국방건설 목표를 점령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압도적 군사력을 갖춰야 제국주의자들 위협을 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후속도발을 예고하면서 도발 수위를 높일 의지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3월 28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안보위원회 현안보고를 통해 “일부에서 4월 북한의 핵실험을 예측하고 있다”면서 “특히 소형화 다탄두에 대한 가능성이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넣는 ICBM 관련 도발을 한 시기는 제20대 대선을 전후로 분포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회를 가동시킨 시점에서 ICBM 시험발사를 했다. 대선 전부터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평화’를 강조해 온 윤 당선인 안보정책이 취임 전부터 시험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대북 소식통들은 제20대 대선을 비롯한 굵직한 정치 현안들이 북한 도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운전자론’에 공감했던 북한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막판 ‘레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판단되는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사실 이런 양상은 2020년 6월 16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부터 예고된 조치”라면서 “2020년을 기점으로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해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얻을 실익이 크지 않다는 내부적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은 핵폐기 등 실질적인 조치가 미비한 상태로 남북이 평화무드를 아무리 조성한들, 경제적인 목줄을 쥐고 있는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 대선 국면에서 방어체계인 킬체인(Kill-Chain)을 언급하며 ‘선제 타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면서 “북한은 인수위 정국부터 윤 당선인 임기 초반까지 윤 당선인의 ‘인내의 레드라인’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는 간보기에 돌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식통은 “2019년 이후로 한국, 미국과 대화가 단절된 북한은 지난 3년여 동안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면서 “코로나19로 국경을 폐쇄하면서 완전한 고립을 자처했고, 내부적으로는 경제와 보건분야에서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두 번째 ‘고난의 행군’이란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고 했다. 그는 “핵실험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도 이런 사면초가 형국을 타파할 유일한 해결책이 핵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중국 거주 북한 소식통은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벼랑 끝에서 뒤가 없는 형국”이라면서 “내부 결속과 외부 협상 모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강대강 대치국면’을 연출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다만 북한 내부적으론 전면전을 치를 역량 자체가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파국을 초래하는 레드라인을 넘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점진적으로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원색적 도발에 시동을 걸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3월 27일 “윤석열이야말로 이명박, 박근혜와 한 바리에 실어도 짝지지 않을 대결광신자이며 화근덩어리”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3월 26일 또 다른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푼수 없이 헤덤비는 저능아라는 것을 웅변으로 실증하고 있다”고 윤 당선인을 맹비난했다.
북한 선전매체들의 맹비난과 관련해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뒤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기존에 하려고 했던 도발 계획을 이행하며 그 책임을 윤 당선인 쪽으로 돌리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