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역사 승강기 설치 이명박 시장 때 공약, 할머니 임종 방해 영상 ‘악마의 편집’…“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 요구 중
#이준석 “장애인도 시간 지나면 탑승 제한해야”
이준석 대표는 3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부조리’로 정의하고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대표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문재인 정부 하의 박원순 시정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 지속해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라며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해 가면서 하는 경우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발언은 뒤에 나왔다. 이 대표는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을 적극 투입해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장애인 승객에게 정차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출입문 취급을 위해 탑승제한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리하면 공권력이 승객을 인질 삼고 있는 전장연의 시위에 물리적 대응을 해야 하며,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탑승을 제한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이 대표의 과격한 언사를 두고 당 안팎으로 말이 나왔지만 이 대표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26일에는 한 시위자가 “할머니 임종을 맞으러 가야 한다”는 시민에게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말한 영상을 공유했다. 27일에는 “전장연은 독선을 버려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는 등 5일 동안 무려 10여 개의 글을 올리며 연일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 대표의 말을 뜯어보면 사실과 다른 점이 적지 않다. 먼저 전장연에게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한 것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아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이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문제를 정파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시위 뒤엔 다섯 명의 죽음이 있었다(관련기사 “다섯 명 죽음 뒤 얻은 엘리베이터” 광화문역 장애인 18년 투쟁사).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타던 한 장애인이 떨어져 사망한 뒤로 2002년 발산역, 2006년 인천 신연수역, 2008년 화서역, 그리고 2017년 신길역까지 네 명이 더 리프트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장애인들은 지하철역 내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서울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처음 약속과 달리 사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또한 재임 시절 ‘2022년까지 100% 설치’를 약속했지만 예산 편성이 되지 않았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 임기 내에도 전임 시장들의 약속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당연한 권리를 장애인들은 햇수로만 20년째 요구해오고 있는 셈이다.
이 대표가 전장연의 시위를 비난하며 올린 ‘할머니 임종 방해 영상’ 역시 사건 전후 맥락을 자른 채 퍼진 것으로 밝혀졌다.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한다”는 시민의 말에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답한 모습이 영상으로 찍혀 퍼지게 된 것인데, 실제 현장에서 이 회장은 곧바로 “나도 비슷한 일을 겪어 봐서 그 마음 잘 안다. 몇 년 전에 어머니 임종이 가까워 왔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장애인 콜택시 배차가 안 돼서 병원에 가지 못했다”며 “너무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부분은 영상에 담기지 않았다.
이에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준석 당대표와 출근길 막혀서 불편했던 시민들은 나머지 부분은 볼 마음도 없겠고 그 순간만 지나면 또 사라지는 것이니까 당신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씁쓸한 소회를 남겼다.
시민들을 볼모로 잡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시위를 벌인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에 앞서 80여 차례 기획재정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언론과 시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을 뿐이다.
#복지부 매년 쓰지 못 하는 예산 750억 원
권력에 편승한 혐오는 빠른 속도로 대중에게 번져가고 있다. 여당 대표가 연일 장애인 시위를 비난하자 이에 동조하는 대중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대표의 페이스북에는 “사과하지 마라. 더 강하게 밟아라”, “장애인이라고 떼쓰면 되는 줄 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약자로 인정하고 수없이 많은 특권을 주고 있다” 등의 댓글이 다수 달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장애인보다 수없이 많은 특권을 받는 장애인이 시민을 볼모로 삼아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 걸까. 전장연이 요구하는 건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다. 출근은 비장애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운영비 등 장애인의 이동권을 포함해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운영비(134억 원)와 탈시설 자립 지원 시범예산(807억 원)을 국가보조금으로 책임지고, 필요할 경우 하루 최대 24시간 장애인 활동지원(1조 2000억 원)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특별한 권리가 아니라 이동과 교육 등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다.
2018년 기준 특수교육대상 학생 1인당 평균 특수교육비는 연간 3039만 8000원이지만, 장애인 1인당 평생교육비는 연간 2287원이다. 1년에 2287원으로 무엇을 얼마나 배울 수 있느냐는 것이 전장연 측의 입장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 따르면 장애인의 55.3%가 중졸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으며, 장애인의 소득은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의 48.4% 수준이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 쓰지 못하고 불용처리한 예산은 750억 원에 달한다. 2020회계연도 보건복지부 소관 세출예산현액은 57조 9811억 5100만 원으로 이 가운데 474억 3500만 원은 다음 연도로 이월했으며 쓰지 못한 불용액은 749억 2000만 원이다. 소관 기금에서는 215억 8300만 원을 다음 연도로 이월했고, 1조 1176억 9600만 원을 불용처리했다. 지방정부가 집행하지 못한 금액은 2020년 기준 32조 1000억 원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을 잘하면 전장연 측의 요구 일부는 수용이 가능하다.
이 대표는 국회가 협조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통과됐으니 되지 않았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 말대로 국가나 도에서 이동지원센터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개정안은 2021년 말 국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기존 발의안의 “지원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은 임의조항인 “지원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법률에 흔히 쓰이는 “할 수 있다”는 강제력이 없어 사실 ‘하지 않아도 된다’로 풀이되기도 한다. 의무조항이 아닌 국비 지원에 적극적으로 임할 지자체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한편, 전장연은 3월 30일부터 출근길 시위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신 이날부터 매일 오전 8시 경복궁역에서 릴레이 삭발식을 열고 인수위 측에 책임 있는 답변을 촉구할 계획이다. 또 4월 20일까지 요구사항에 대한 충분한 답변을 받지 못할 경우 시위 재개도 검토할 방침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