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공들인 넷플릭스, 애플TV+ ‘코다’에 작품상 영예 빼앗겨…‘파친코’ 제2의 ‘오징어 게임’ 될지 관심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로이 코처의 수상 소식을 발표하고 트로피를 건넨 시상자가 윤여정이라 한국에서는 더 화제가 됐는데, 윤여정은 ‘코다’를 제작한 애플TV+의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출연 배우이기도 하다.
사실 밥상을 차린 것은 넷플릭스다.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닌 OTT 영화를 제작하는 넷플릭스는 그 한계를 깨기 위해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해왔다. 2018년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스페인어 흑백영화 ‘로마’가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초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한 것이다.
쉬운 길은 결코 아니었다. 넷플릭스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OTT 영화의 위상을 달리 하기 위해 2017년 봉준호 감독과 손잡고 ‘옥자’를 만들어 노아 바움백 감독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과 함께 두 편이나 제7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는 성과를 일궈냈다. 그렇지만 초청작은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프랑스 극장협회의 반발로 그 이듬해부터 칸영화제는 OTT 영화를 초청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의 도전은 더 거세졌다. 극장 개봉 영화에 맞서는 OTT 오리지널 영화의 위상을 위해, 넷플릭스는 선도업체로서 최선을 다했고 결국 이듬해 ‘로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세계 3대 영화제도 중요하지만 미국이 기반인 넷플릭스는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도 오랜 기간 정성을 들여왔다. 그리고 2022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절호의 찬스가 됐다.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파워 오브 도그’는 최다부문 후보 선정 영화가 됐는데 특히 작품상이 유력했다. 이외에도 ‘돈 룩 업’, ‘틱, 틱...붐!’ 등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도 후보에 올랐다.
그렇지만 결과는 또 넷플릭스를 외면했다. 그것도 가장 참담한 결과였다. 대망의 작품상은 기대했던 ‘파워 오브 도그’가 아닌 ‘코다’에게 돌아갔다. ‘코다’는 ‘남우조연상’과 ‘각색상’까지 가져갔다. ‘코다’는 극장 개봉 영화가 아닌 OTT 영화로 넷플릭스가 아닌 애플TV+ 오리지널 영화다. 넷플릭스는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최초의 작품상 수상 OTT 영화’라는 영광을 애플TV+에 내주고 말았다.
OTT 업체들의 자존심 대결이 벌어진 또 다른 부문은 남우주연상이다. 5명의 배우가 후보에 올랐는데 이들 모두 OTT 오리지널 영화를 통해 후보가 됐기 때문이다. 하비에르 바르뎀(‘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아마존 프라임), 베네딕트 컴버배치(‘파워 오브 도그’-넷플릭스), 앤드류 가필드(‘틱, 틱...붐!’-넷플릭스), 윌 스미스(‘킹 리차드’-HBO Max), 덴젤 워싱턴(‘맥베스의 비극’-애플TV+) 등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2편이나 된다. 그렇지만 수상의 영광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이슈메이커가 된 ‘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물론 넷플릭스도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이 감독상을 받는 성과를 올렸지만 무려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까지 유력했던 작품임을 감안하면 너무 아쉬운 결과다.
그렇다고 넷플릭스의 아성이 흔들리진 않는다. 디즈니+, 애플TV+, HBO Max, 아마존 프라임 등 경쟁 OTT 업체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다소 주춤할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2021년 하반기 공전의 히트를 친 ‘오징어 게임’ 등을 통해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아마존 프라임과 디즈니+의 약진이 거듭되는 상황이라 자칫 1위 자리도 흔들릴 수 있는 위기 상황이기는 하다. 이런 까닭에 넷플릭스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수상을 더 간절히 바랐지만 불발되고 말았다.
이제는 작품상을 가져간 애플TV+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애플TV+는 미국 OTT 시장 점유율이 5% 수준에 불과해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등에도 크게 밀리는 수준이다. 글로벌 유료 가입자도 200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반면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는 11배가량 많은 2억 2000만여 명이다.
애플TV+의 최대 약점은 콘텐츠 부족이다. 오랜 기간 다양한 콘텐츠와 제휴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온 넷플릭스는 4000여 편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고, 디즈니와 마블은 물론 20세기폭스에 루카스필름까지 더해진 콘텐츠 왕국 디즈니+는 무려 1만 6000여 편의 콘텐츠가 제공된다. 반면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만을 서비스하는 애플TV+는 아직 70여 편뿐이다.
결과적으로 애플TV+의 승부수는 양보다 질일 수밖에 없다. 이런 승부수가 제대로 통해 애플TV+는 ‘코다’로 아카데미 시상식 최초의 OTT 영화 작품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가져갔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시기에 애플TV+의 진정한 승부수도 던져졌다. 바로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파친코(PACHINKO)’다.
애플TV+의 ‘파친코’는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로 2017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에도 오른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주요 배경은 일본이고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뤄 주요 출연진 상당수가 한국 배우지만 미국에서 제작한 미국 콘텐츠다.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하며 번영을 이뤄낸 이민 가족 삶을 그려낸 대하드라마라는 점에선 이민자 사회인 미국에서도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TV+는 우선 3회까지 글로벌 공개된 뒤 매주에 한 회씩 순차 공개하는 방식을 도입해 마지막 회까지 공개됐을 때의 최종 흥행 성적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작품성 자체에 대한 미디어의 반응은 극찬의 연속이다. “지금까지 나온 애플 최고의 쇼”(파이낸셜타임스), “눈부신 한국의 서사시”(BBC),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할리우드리포터), “한 여성의 강인한 정신을 담은, 시리즈 중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보석”(포브스) 등이 해외 외신들이 보낸 찬사다.
유력 비평 사이트 인디와이어는 “섬세하고 부드럽게 전개되지만 강렬함이 공존한다”라고 평가했으며, 미국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도 3월 21일 기준 ‘신선도 지수(평론가 평가)’ 98%와 ‘팝콘 지수(관객 평가)’ 93%를 기록 중이다.
작품 하나의 힘이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기존 유료 가입자 수가 워낙 적어 ‘파친코’를 통한 유료 가입자 증가 효과가 엄청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애플TV+의 기준에서 급증일 뿐, 경쟁 OTT 업체들을 위협할 수준까지 상승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2021년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엄청난 글로벌 흥행력을 감안하면 ‘파친코’가 그 이상의 효과까지 보여줄 수도 있다. 비록 ‘파친코’는 미국에서 제작한 미국 콘텐츠이지만 ‘오징어 게임’에 이어 또 한 번 한국인과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가 미국 OTT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