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출신 KS 라인, 경제+통합 두 콘셉트 충족…YS부터 MB까지 4대 정권 요직 거쳐 무난한 청문회 예상
한 후보자는 경제 및 대미 전문가로, 정치 신인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족한 경륜과 국정운영 경험을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고위 공직에 몸담은 만큼, 인사청문회에서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반대가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4월 3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저와 함께 새 정부 내각을 이끌어갈 국무총리 후보자는 한덕수 전 총리”라고 발표했다.
정통 엘리트 관료 출신인 한 후보자는 40여 년간 4개 정부에서 고위 공직에 몸담은 바 있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 관료사회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 후보자도 배석했다.
한덕수 후보자는 1949년생으로 전북 전주 출신이다. 1967년 경기고를 졸업, 서울대 경제학과를 입학해 이른바 ‘KS(경기고-서울대)’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서울대를 3등으로 졸업해 대법원장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서울대 수석 졸업생에게 대통령상을, 차석 졸업생은 국회의장상, 3등 졸업생은 대법원장상, 4등 졸업생은 문교부장관상을 줬다.
한 후보자는 서울대 재학 중인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1977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2년 후 하버드대 경제학 석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1980년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상공부로 자리를 옮겨 미주통상과장으로 일하다 1982년 한 번 더 미국으로 유학, 1984년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상공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 1989년 부이사관으로 승진, 상공부 중소기업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국장을 맡았다. 1990년엔 산업정책국장으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중 산업 관련 정책 실무를 맡았다.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통령비서실로 파견돼 경제수석 아래 산업담당비서관을 맡았다. 1년 후 청와대를 나와 관리관으로 승진하며 상공부로 복귀,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하다 통상무역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상무역실장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추진과 대일 무역 규제 해제 등 실무를 맡았다.
1996년 12월 48세의 나이로 차관에 올라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냈다. 이어 1998년 3월까지는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근무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1998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이때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최초로 추진했고,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APEC 정상회의 관련 실무를 처리했다.
2001년 3월부터 12월까지는 주OECD 대한민국대표부 대사,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월까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냈다. 2002년 1월에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됐으나, 6개월 만에 한-중 마늘협상 파문으로 경질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2003년 6월 산업연구원 원장에 오른 데 이어, 이듬해 2월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실장 재임 기간 중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다. 또한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관련 업무도 지원하며 정무와 안보 관련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3월부터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이 기간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금산법(금융-산업자본 분리 정책)’을 담당했다. 당시 재무관료가 아닌 정통 통상산업관료 출신이 재경부 장관을 맡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이 한 후보자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3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3·1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고, 한명숙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한 후보자에게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하도록 했다. 또한 부총리 퇴임 직후인 2006년 8월에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해 한미 FTA가 체결되도록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4월 한 후보자를 국무총리에 임명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였다. 총리 재임기간 동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는데, 한 후보자는 김영일 당시 북한의 내각총리와 남북총리회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보수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한덕수 후보자는 중용됐다. 한미 FTA 협상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공을 인정받아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3년간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당시 그는 한미 FTA 비준 과정에서 미국의 각 지방정부와 의회를 순회하며 설득에 나서 ‘한미 FTA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 초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미국 내 여론을 돌리고 미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하는 임무를 맡아, 결국 2011년 한미 FTA가 미 의회에서 비준되는 데 일조했다.
주미대사를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나 2012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한국무역협회 회장, 2015년 1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지냈다.
과거 부하직원들로부터 ‘일이 취미인 사람’ ‘일 중독자’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업무 외에 한눈을 팔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이번에 국무총리에 오르면 한 후보자는 박정희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김종필 총재와,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직을 수행한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세 번째로 서로 다른 정권에서 국무총리직을 맡은 인물이 된다.
한덕수 후보자는 올해 73세로 적지 않은 나이다. 또한 2012년 주미대사로 일한 이후 10년 넘게 공직에 나서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업무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계속 공부해오는 스타일이라 정책에 대한 이해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다”며 “오래 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과 위기대응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측면이 있고, 건강도 지금 너무 좋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당선인은 경제 및 대미 전문가, 국민 통합, 경륜 등의 요소를 두루 고려해 한 전 총리를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 신인인 윤 당선인에 부족한 경륜과 국정운영 경험을 보완해줄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는 대내외적 엄중한 환경 속에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기틀을 닦아야 하고,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경제안보 시대’를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한다”며 “한덕수 후보자는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총리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는 지명 후 열릴 인사청문회에서 ‘거야’ 더불어민주당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한 후보자는 ‘무난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한 후보자는 정파와 관계없는 실무형 관료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 능력을 높이 사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민주당에서도 반대할 명분이 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 후보자는 슬하에 자식이 없다. 앞서 관계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주로 발목을 잡는 게 자녀 문제다. 그 점에서도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 후보자는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둘러싼 대내외적으로 경제와 지정학적 여건이 매우 엄중한 때에 국무총리 지명이라는 아주 큰 짐을 지게 돼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우면서 매우 무겁고 또 큰 책임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한 후보자는 외교·국방 자강력 강화, 재정건전성 제고, 국제수지 유지, 생산력 향상 등 차기 정부의 주요 과제 4가지를 제시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