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도주 우려 적어’ 불구속 송치, 결국 도주…검찰, 경찰에 추적 협조 요청 안해, 결국 공개수사
#초기에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남편 윤 씨를 가평의 한 계곡에서 사망에 이르게 한 이은해와 공범 조현수가 받는 혐의는 살인과 2건의 살인 미수,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 미수 등 총 4건이다. 검찰은 두 사람이 윤 씨의 보험금 8억 원을 수령할 목적으로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피해자를 기초 장비 없이 뛰어내리게 한 뒤 구조하지 않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보고 있다. 2019년 6월 사고 발생 이후 3년 간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아오던 두 사람은 지난 2021년 12월 1차 검찰 조사 직후 잠적해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피의자 검거가 지연되자 일각에서는 수사기관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수사기관은 피의자에게 살인죄와 살인 미수죄를 적용하고도 3년 가까이 사건을 손에 쥐고만 있었다. 수사 주체가 바뀔 때마다 적용 혐의와 증거도 늘었지만 신병 확보 등의 실질적인 조치는 없었다. 경찰과 검찰은 피의자의 주거지가 명확하고 연락이 잘 돼 구속의 필요성이 없었다고 하지만 피의자들 입장에서는 증거 인멸의 시간이 3년이나 있었던 셈이다.
피해자 윤 씨의 매형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초기 수사기관이 제대로 나서지 않아 직접 발로 뛰면서 자료를 수집했다”며 “수사기관이 제대로 대응했으면 이은해를 놓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첫 수사는 2019년 6월 30일. 사고 발생지를 관할한 경기 가평경찰서가 맡았다. 경찰은 윤 씨의 사망 사건 수사에 착수한 지 5개월 만에 단순 익사로 사건을 처리했다. 이은해의 지인이었던 목격자들의 '단순 사고'라는 진술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가 ‘익사’로 나타난 점 등을 종합해 타살 가능성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당시 유족은 이미 이은해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족은 가평경찰서 측에 “이은해의 휴대전화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은해는 “남편의 장례로 경황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경찰이 재차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하자 “가방을 통째로 분실했다”며 거부했다. 유족의 의혹 제기 외에 다른 이유를 대지 못한 경찰도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할 수 없었고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다.
2019년 11월. 이은해는 사건이 종결된 지 한 달 만에 보험회사에 윤 씨의 생명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한다. 이번엔 경기 일산서부경찰서가 유족의 지인으로부터 윤 씨의 사망과 관련된 보험사기 제보를 받고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번 수사에는 계곡 사망 사건뿐만 그 해 2월과 5월에 있었던 강원도 양양 펜션과 경기도 용인의 낚시터에서 있었던 살인 미수 사건도 포함됐다.
윤 씨가 이은해에게 심리적 지배를 당해왔다는 정황은 이때 포착됐다. 평소 물을 무서워했다는 윤 씨가 오후 8시가 넘은 시각에 스스로 4m 높이의 폭포에서 뛰어내린 것을 의아하게 여긴 경찰이 전문가에게 윤 씨의 심리를 의뢰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윤 씨의 사망 전 심리 상태는 가스라이팅 피해자와 비슷한 상태로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산서부서는 이 사건을 1년 간 수사한 후 2020년 12월 이은해 등을 살인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불구속 송치했다. 살인 혐의를 적용하면서도 불구속 수사를 한 이유에 대해 경찰 측은 “이은해 등이 출석 요구에도 성실히 응했으며 도주 우려가 적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적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경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만큼의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경찰은 양양 펜션 사건과 용인 낚시터 사건 등 수사 범위에 있던 살인미수 사건에 대해서는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2020년 1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간 사건은 다시 피의자들의 주거지가 있는 인천지검으로 넘어간다.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지검은 두 달이 지나 서야 살인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재수사에 들어간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총 3번의 현장 검증, 관련자 30여 명 조사, 피의자 주거지 압수수색 등이 진행됐다. 또 법원으로부터 14건의 영장을 발부 받아 이들의 계좌와 통화 내역을 추적해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 “복어 독 먹였는데 왜 죽지 않느냐”는 이 씨와 조 씨의 대화 내용도 이 과정에서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검은 이 증거를 토대로 앞서의 경찰이 적용하지 못 했던 두 건의 살인미수 혐의도 추가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1차 검찰 조사에 나와 혐의를 부인하는 이은해에게 확보한 문자 내용 등의 증거를 보여주고 추궁했다고 한다. 3년 가까이 혐의를 부인하던 피의자도 확실한 증거 앞에서 무너졌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이은해는 조사를 마친 후 친구에게 “구속될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자유로운 상태였던 피의자들이 구속을 염려해 그 길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상당 부분의 자료를 확보한 검찰이 살인에 이어 살인미수로 입건되고도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의 신병확보를 신속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한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피의자의 소재가 명확한 점 등을 토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단계는 아니라고 봤다는 입장이다.
#"피해자와 유족만 억울한 상황"
법조계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엇박자 수사도 아쉬운 점이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검찰과 경찰의 협동 수사가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추적 수사에 특화되어 있는 경찰의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출입국 기록과 휴대전화 기록, 주거지 탐문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피의자의 소재를 찾지 못한 검찰은 3월 30일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검찰은 이때도 언론과 국민에 협조를 구할지언정 경찰에 협조 요청은 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 도주 후 소재 파악을 위해 추적 수사를 지속해 왔으나 소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국민의 협조를 얻어 조속히 피의자를 잡기 위해 공개수배로 전환했다”고 했다. 다만 검찰에는 공개수배 전단 관련 규정이 없어 피의자의 인적정보는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실제로 공개수배는 주로 경찰에서 하는 까닭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보완수사를 통해 범죄 혐의점을 밝혀낸 만큼 독자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번 사건을 검찰과 경찰의 자존심 싸움으로 해석한 이도 있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정치권에서 이번 사건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설명하려고 가져다 쓰더라. 경찰과 검찰은 오랜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수사를 하며 특화된 부분이 다르다. 검찰은 경찰보다 더 많은 권한이 있으니 넓은 범위의 수사가 가능했고 다소 부족했던 경찰의 수사를 보완했다. 지적대로 검찰의 보완 수사 의지가 없었으면 이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을 수도 있다”면서도 “그래서 지금 이은해와 조현수는 어디 있느냐”며 “아쉬운 점은 검찰이 잠적 초기부터 추적 수사와 정보망이 넓은 경찰에 협조 요청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다. 수사권이 어느 쪽에 있든 지금은 피해자와 유족만 억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천지검은 4월 6일 인천경찰청에 협조요청을 했다. 이에 인천경찰청은 10일 검찰의 요청을 받아 강력범죄수사대 중심으로 ‘가평 계곡 살인사건 공개수배자 추적전담팀’을 꾸렸다고 밝혔다. 남은 시간은 두 달 반 정도다. 앞서 두 번의 체포영장을 발부 받은 검찰은 기한 만료를 앞두고 얼마 전 다시 세 번째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이번 영장의 유효기간은 7월 7일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