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인근 CCTV 확인, 이씨 부친 “딸 자수한다” 주소 건네…살인미수 2건과 살인 혐의 ‘3년 만의 구속’
#삼송역 인근 오피스텔서 은신하다가…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4월 16일 낮 12시 25분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살인과 살인미수 등 혐의로 이은해와 조현수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은신처는 삼송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로, 입주가 올 2월부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장 2개월 정도를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최근까지 자기 명의의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숨어 지내다가 이은해 아버지의 설득으로 자수의사를 밝혀 경찰이 이날 검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4월 초 지하철 3호선 삼송역 인근을 돌아다니는 이은해와 조현수를 이면도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화면을 통해 확인하고 탐문해왔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의 대략적인 주거지 위치는 파악했으나 구체적인 호수까지는 알아내지 못 했는데, 오피스텔을 수색할 경우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공개수사 전환 이후 연락을 이어오던 이은해의 아버지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해와 연락해 설득을 해오던 이은해의 아버지는 “딸이 자수하려고 한다. 오피스텔이 삼송역 근처라고 한다”며 구체적인 주소를 알려주고 경찰과 함께 오피스텔을 찾았다고 한다. 체포 당시 조현수는 스스로 복도로 걸어나왔으며 오피스텔 안에 있던 이은해도 검거됐다. 두 사람 모두 저항은 없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받는 혐의는 살인과 2건의 살인 미수 그리고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 미수 등 총 4건이다. 검찰은 이들이 2019년 6월 30일 이은해의 남편 윤 씨의 보험금 8억 원을 수령할 목적으로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피해자를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기초 장비 없이 뛰어내리게 한 뒤 구조하지 않는 방법으로 살해했다고 보고 있다. 또, 같은 해 2월과 5월에도 윤 씨에게 복어 피가 섞인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에 빠뜨려 살해하려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는다. 두 사람은 사망 사건 이후 2년여 동안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아오다 2021년 12월 1차 검찰 조사 직후 잠적했다.
#신병 확보 안해 도주 빌미 제공
첫 수사는 2019년 6월 사고 발생지를 관할한 경기 가평경찰서가 맡았다. 경찰은 윤 씨의 사망 사건 수사에 착수한 지 5개월 만에 단순 익사로 사건을 처리했다. 이은해의 지인이었던 목격자들의 '단순 사고'라는 진술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가 ‘익사’로 나타난 점 등을 종합해 타살 가능성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당시 유족은 이미 이은해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족은 가평경찰서 측에 “이은해의 휴대전화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은해는 “남편의 장례로 경황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경찰이 재차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하자 “가방을 통째로 분실했다”며 거부했다. 유족의 의혹 제기 외에 다른 이유를 대지 못한 경찰도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할 수 없었고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다.
2019년 11월. 이은해는 사건이 종결된 지 한 달 만에 보험회사에 윤 씨의 생명보험금을 청구했다가 거절당한다. 이번엔 경기 일산서부경찰서가 유족의 지인으로부터 윤 씨 사망 관련 보험사기 제보를 받고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 두 번째 수사에는 사망 사건뿐만 아니라 그해 2월과 5월에 있었던 강원도 양양 펜션과 경기도 용인의 낚시터에서 있었던 살인 미수 사건도 포함됐다.
윤 씨가 이은해에게 심리적 지배를 당해왔다는 정황은 이때 포착됐다. 평소 물을 무서워했다는 윤 씨가 오후 8시가 넘은 시각에 스스로 4m 높이의 폭포에서 뛰어내린 것을 의아하게 여긴 경찰이 전문가에게 윤 씨의 심리를 의뢰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윤 씨의 사망 전 심리 상태는 가스라이팅 피해자와 비슷한 상태로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두 사람은 이때도 구속되지 않았다. 일산서부서는 1년간 사건을 수사한 후 2020년 12월 이은해 등을 살인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불구속 송치했다. 살인미수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다. 불구속 수사를 한 이유에 대해 경찰 측은 “피의자가 출석 요구에도 성실히 응했으며 도주 우려가 적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적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0년 12월 사건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피의자들의 주거지가 있는 인천지검으로 넘어간다. 인천지검은 보완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들의 살인 혐의를 뒷받침할 유의미한 증거가 상당수 확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2021년 2월부터 11월까지 총 3번의 현장 검증, 관련자 30여 명 조사, 피의자 주거지 압수수색 등이 진행됐다. 검찰은 또 법원으로부터 14건의 영장을 발부 받아 이들의 계좌와 통화 내역을 추적하기도 했다. “복어 독을 먹였는데 왜 죽지 않느냐”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도 이 과정에서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검은 이 증거를 토대로 경찰이 적용하지 못 했던 2건의 살인미수 혐의도 추가로 입건했다. 검찰은 1차 조사 당시 혐의를 부인하는 이은해와 조현수에게 증거 일부를 보여주며 추궁했는데 증거를 보고 구속을 염려한 두 사람은 조사를 마친 당일 잠적했다.
범인 검거가 지연되면서 경찰과 검찰의 책임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살인죄와 살인 미수죄를 적용하고도 3년 가까이 사건을 손에 쥐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수사 주체가 바뀔 때마다 증거가 늘어 혐의 입증은 수월해졌지만 막상 신병 확보 등의 실질적인 조치는 하지 않아 피의자 도주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경찰과 검찰은 피의자의 주거지가 명확하고 연락이 잘 돼 구속의 필요성이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한편, 피해자 유족은 16일 “초기 수사에서 좀 더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장 크다”며 “처남(윤 씨)이 당한 일은 주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었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