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F·롯데 출혈경쟁 심화로 새벽배송 철수…IPO 성공 여부로 기업 운명 갈릴 전망
#BGF·롯데가 새벽배송 접는 까닭
지난 4월 15일 BGF는 헬로네이처를 BGF네트웍스의 종속회사로 편입시키고 B2B(Business to Business·기업 간 상거래) 사업으로 전환을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헬로네이처 주력 사업인 새벽배송은 경쟁 심화 및 사업 부진을 이유로 5월 말을 끝으로 철수하게 된다. 새벽배송 특성상 고비용 구조로 수익성 확보가 어렵고 최근 물류비 상승까지 더해져 향후 시장 전망이 어둡다는 것이 사측 설명이다. 대신 기존 역량을 활용해 프리미엄 신선식품 소싱 및 공급, 차별화 상품 개발, 온라인 채널 제휴 판매 등으로 사업 영역을 조정할 방침이다.
BGF 관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추진해 그룹의 신성장 기반을 다지고 새로운 경쟁우위를 발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기존 이커머스 업체들 외에 대형 유통 업체들까지 뛰어들며 갈수록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로 접어드는 시점에 맞춰 발빠르게 사업 전환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사업을 확대한 지 한 달 만에 전면 철수한 것을 고려하면 오너가 의지로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헬로네이처는 홍석조 BGF그룹 회장의 장남인 홍정국 BGF 대표의 경영능력 첫 검증대로 꼽혔다. 홍 대표가 전략부문장이던 2018년 헬로네이처 인수를 직접 주도하면서 5년 안에 신선식품업계 1위로 올려놓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헬로네이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면서 2020년 매각설에 휩싸였다. 지난해 4월 물류센터를 경기 부천시에서 광주시 곤지암으로 확장·이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새벽배송 서비스를 천안·아산·청주·대전·세종 등 중부권으로 확대했고, 지난 3월에는 업계 최초로 강원 원주시까지 진출하는 등 외연을 넓혀가는 중 단행된 사업 전환이다.
앞서 4월 18일 롯데쇼핑의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도 인건비와 물류비 부담을 이유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20년 5월 새벽배송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서비스를 접게 된 셈이다. 대신 롯데온은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의 오프라인 매장 강점을 살려 2시간 안에 상품을 배송하는 ‘바로배송’ 서비스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롯데홈쇼핑의 새벽배송 ‘새롯배송’도 종료된다.
#새벽배송 시장 성장세 이어지지만…
BGF와 롯데온의 새벽배송 철수는 올해 상장을 앞둔 SSG닷컴·컬리·오아시스에 대한 평가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증폭될 수밖에 없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사업 특성상 매출이 늘수록 인건비와 운반비, 포장비 등의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신선식품 배송에 필수적인 콜드체인 물류센터 건립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마켓컬리는 지난해 3월 300억 원을 들여 김포에 신선물류센터를 새로 열었고, 지난 4월 13일엔 경남 창원에 630억 원을 투자해 물류센터를 추가로 짓는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쿠팡도 32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대구첨단물류센터를 열었다. 지난 3월 컬리는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했고, SSG닷컴과 오아시스는 올해 IPO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실제 오아시스마켓을 제외한 새벽배송 업체들은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그만큼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마켓컬리와 SSG닷컴의 영업손실은 각각 2177억 원, 1079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480%, 129% 증가한 수치다. '계획된 적자'를 내세우고 있는 쿠팡도 반등을 꾀하지 못하고 있다. 누적 적자는 6조 원에 달한다. 지난해 오아시스마켓은 매출 3570억 원, 영업이익 57억 원을 기록했다. 전국물류망 등을 구축하는 등의 공격적 투자를 하지 않은 점이 오아시스마켓 흑자 배경으로 꼽힌다.
결국 새벽배송 업체들이 진검승부와 동반추락이라는 갈림길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견이 있긴 하지만, 새벽배송 시장 성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8년 5000억 원에서 2020년 2조 5000억 원으로 커졌고, 2023년엔 11조 9000억 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정소연 교보증권 연구원은 “새벽배송 활성화 및 온라인전환 가속화에 따라, 온라인 장보기 침투율은 2020년 21.3%에서 2023년 30%, 2025년 40%까지 확대될 것”이라며 “특히 장보기를 대체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식품의 메인 라스트마일(물품이 소비자에게 배송되는 마지막 단계)로 자리매김해서 새벽배송 시장 자체는 계속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벽배송 업계는 시장의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생존이 가능한다면 흑자 전환 가능성은 충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와 관련, 새벽배송업계 한 관계자는 “1등 기업 점유율이 20%가 안 되는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투자하면서 적자를 내고 있다”면서 “시장이 건강해지고, 흑자가 나오는 기업이 나오려면 철수하는 곳이 많이 나와야 한다. 3강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된다면 모두 흑자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생존한 새벽배송 업계의 최근 발걸음은 한층 빨라지고 있다. 지난 4월 18일 마켓컬리는 배송 자회사 프레시솔루션의 사명을 ‘컬리 넥스트마일’로 바꾸고, 다른 기업 서비스 배송을 대행하는 ‘3자 배송 사업’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부터 SSG닷컴은 네이버 장보기관에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했고, 신세계그룹에 인수된 지마켓글로벌(G마켓·옥션)도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4월 말 SSG닷컴과 지마켓글로벌은 유료 통합 멤버십을 출시할 예정이다. 양사 모두 적자 규모를 줄이기보다는 거래액을 늘리는 편이 기업가치 산정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IPO 시장 침체기라 몸값 기대치 밑돌 듯
관건은 상장 성공 여부다. 이는 곧 기업의 생존으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하다. 상장을 통해 확보한 '실탄'의 규모에 따라 투자의 규모가 달라진다. 문제는 IPO 시장 침체로 인해 몸값이 기대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미국 금리 인상 우려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리스크로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IPO 시장도 위축됐다.
실제 지난 4월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분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스팩기업·리츠 제외)은 18개사로 전년 동기(24개사) 대비 25%가량 줄었다. 수요예측 평균 경쟁률도 869 대 1로 전년 같은 기간(1222 대 1) 대비 하락했고, 공모가 대비 시초가 상승률도 46.86%로 지난해 상장한 종목(75.79%)보다 낮았다. 현대엔지니어링, 대명에너지, 보로노이 등은 공모를 철회하기도 했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와 BGF는 새벽배송 시장에서 존재감이 전혀 없던 곳으로 대기업이 사업을 철수한다고 하니까 상징적으로 크다고 느껴질 뿐, 실질적으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춘추전국시대 경쟁 속에서 생존한 새벽배송 업체들이 안정화된 시장에서 효율화를 제고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