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초선모임 “검찰정상화 후퇴” 수정안 불만…당 일각 “무리하다 지방권력 내줄라” 냉가슴
#검수완박 수정안 뜯어보니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하고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발의한 법안의 원안은 ‘검찰공화국을 막기 위해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내용이었다. 검찰 직접 수사 대상을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로만 한정하고, 검찰 직접수사 유예기간을 3개월로 한정했다. 검찰의 보완수사 권한을 박탈했고, 검찰 수사관이라는 직위도 없앴다.
이를 놓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던 4월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내놨다. 박병석 의장 중재안은 현재 검찰에 남은 6대 중대범죄 중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등 2개 분야 수사만 남기고, 나머지는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국회에 사법개혁특위를 구성, 특위가 1년 6개월 안에 중대범죄수사청을 입법 및 발족시켜 검찰에 남은 2개 분야 수사권도 폐지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대해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하며 원안은 한 발자국 후퇴하게 됐다.
무난히 처리될 것 같았던 검수완박 입법은 다시 변곡점을 맞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이준석 당 지도부, 윤석열 당선인 등의 반대로 국민의힘이 중재안 합의를 파기하면서였다. 그 후 민주당은 국민의힘 일부 의견을 수용한 수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선 상정된 수정안이 당초 준비했던 원안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중재안은 검찰 직접 수사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제한했으나, 수정안에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올라갔다. ‘중’이 ‘등’으로 문구가 바뀐 셈이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반발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이후 시행령을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1년 6개월 뒤 폐지한다는 내용도 사라졌다.
보완수사에 대해서도 완화된 내용이 담겼다. 박 의장 중재안에서는 ‘송치 사건의 범죄 단일성·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지’했지만, 본회의의 수정안에서는 ‘검사는 송치 사건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경찰이 자발적으로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에 한해 현재와 같이 보완수사를 할 수 있게 열어둔 것이다.
수정안은 검찰의 보완수사 대상이 되는 이의신청 주체에서 고발인을 제외해 새로운 논란을 일으켰다. 고발인은 사건 당사자인 고소인, 피해자와 함께 형사소송법상 이의신청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정안에 따르면 고발사건의 경우 경찰이 불송치 처분해도 고발인은 이의신청을 해 검찰의 보완수사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고발인 항고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조직을 축소시켜 힘을 빼는 변화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민주당 원안에는 현재 6000여 명에 달하는 ‘검찰 수사관’ 직위를 아예 없애는 내용도 있었다. 검찰청에는 검사와 일반 행정직 공무원만 남겨 사실상 직접수사를 하기 힘든 구조를 꾀한 것이다. 하지만 수정안에는 검찰 수사관을 없애는 내용도 결국 빠졌다.
민주당은 그렇다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자평한다. 검찰 직접수사가 가능한 부패·경제범죄의 경우에도 수사·기소 검사를 분리했고, 검찰총장이 분기마다 직접수사 부서의 직제와 인원·운영 현황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을 포함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또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별건 수사 금지에 관한 조항을 신설해 내용을 구체화했다. 검사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송치 받은 사건에 관해서는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죄사실의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고, 수사기관은 수사 중인 사건의 범죄혐의를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합리적인 근거 없이 별개의 사건을 부당하게 수사해선 안 되며, 다른 사건의 수사를 통해 확보된 증거 또는 자료를 내세워 관련 없는 사건의 자백이나 진술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검찰에서 떼어낸 수사권을 맡길 중수청의 발족 가능성도 수정안을 보면 낮아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박 의장 중재안에 담겼던 ‘사개특위 구성 후 6개월 안에 중수청 설립 입법 조치 완성, 1년 이내 중수청 발족’이라는 시점이 수정안엔 명시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대의견에도 담기지 않았다.
실제 국회에서 중수청 설립을 두고 벌써부터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합의안이 파기된 것이고, 중재안은 원천 무효가 됐다”며 “민주당이 검수완박법을 강행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개특위 구성도 파기됐다. 사개특위 구성에 협조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박홍근 원내대표는 “일방적 합의 파기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민주당은 합의서와 합의 정신에 입각해 관련 입법과 후속 조치를 계속 취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은 중수청 설치를 논의할 사개특위 구성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4월 2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사개특위 구성 결의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정의당 배진교 의원도 동참했지만, 국민의힘은 불참했다. 사실상 민주당 단독 의결이었다.
국민의힘은 운영위 개최를 두고 국회법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에서 “국회법에 교섭단체 간사 협의로 안건을 정하게 돼있다. 오늘 분명히 국민의힘은 개회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운영위를 강제로 소집했다”고 지적한 뒤 퇴장했다. 민주당은 사개특위 구성 결의안을 조만간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사개특위가 구성되면 중수청 설치 등에 대한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다.
당초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중수청 발족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한동훈 후보자에 오히려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권 한 관계자는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중수청 설립 방안에 따르면 법무부 소속으로 두고, 청장에 대한 임면권은 대통령이 갖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택한 인사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아래에서 지휘하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이에 중수청이 또 다른 검찰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이제 야당이 되는 민주당이 굳이 중수청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한동훈 장관의 힘을 키워줄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방침을 세워도, 검수완박 입법 처리를 끝내면 곧바로 지방선거 정국이다. 사개특위 구성안까지 본회의 처리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방선거 끝나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국민의힘에서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사개특위 구성안 의결을 강행했다. 단순히 하는 척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도 “검찰정상화는 민주당이 계속 추진해야 할 과제다. 이를 완수하려면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가질 중수청이 반드시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반대해도 민주당은 검찰정상화의 길을 뚜벅뚜벅 가야 한다. 이번 의결도 그런 차원”이라고 말했다.
#수정안에 불만 쏟아내는 민주당 처럼회
‘검수완박’ 법안이 원안-중재안-수정안을 거치면서, 민주당이 주장한 ‘검찰정상화’가 아닌 형사사법체계에 허점이 생긴 ‘누더기’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경 수사권 2차 조정’ 수준의 법안을 처리하려고 이처럼 사생결단을 벌였어야 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러한 비판은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나온다. 주로 민주당 내 강경파 초선 모임인 ‘처럼회’를 향한 목소리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집무실 이전 강행, 인사 실패 등으로 인해 윤석열 당선인 지지율이 40%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본전만 해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 거부권’ 때문에 서두른다고 하지만 지금의 의석수로는 솔직히 뭘 해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리해서 밀어붙이는지 알 수가 없다. ‘입법 독주, 발목잡기’ 프레임에 걸리면, 지방권력을 내줄 수 있다. 반대 의견이 제법 있지만 모두 눈치를 보고 있다. ‘금태섭 학습효과’다. 자칫 ‘찍혔다간’ 민주당에서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처럼회’ 소속 의원들은 검찰정상화가 후퇴됐다면서 불만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이수진 의원은 4월 28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박병석 의장의 중재안이 수사·기소의 완전분리라는 검찰정상화 개혁을 크게 후퇴시켰지만, 적어도 역사의 방향성을 인정한다고 생각해 수용했다. 이를 명확하게 한 것이 법사위에서 처리한 ‘원안’이다. 그런데 본회의에는 수정안이 상정됐다. 일부 조문에 대해 박 의장이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하고, 별건수사를 방지하기 위해 중재안의 취지에 맞게 법사위에서 심도 있게 논의한 법안마저도 후퇴되는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민주당 의원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법사위에서 처리한 원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미 국회의장 중재안으로 검찰정상화 개혁이 후퇴되고 국민의힘이 합의를 헌신짝 버리듯 파기해버린 상황에서 더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운하 의원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줄 알았는데, 도로 제자리에 서있게 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검찰공화국 시대를 활짝 열어주는데 들러리를 서고 말았다”며 “검찰개혁의 역사에 가장 비참한 실패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시일야방성대곡의 비통한 심경이다. 잔뜩 기대를 모았던 국민들의 격분과 극심한 좌절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라고 토로했다.
처럼회는 민주당 내 초선 의원 모임으로, 21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20년 6월 개혁을 표방하며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김용민 김남국 김승원 황운하 이탄희 최강욱 의원 등이 구성했다. 이어 민형배 이수진(동작) 장경태 한준호 유정주 의원 등이 합류하면서 수가 10여 명으로 늘었다.
처럼회는 검찰개혁에 목소리를 내왔다. 김용민 의원은 검찰이 공소만 담당하도록 하는 공소청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황운하 의원은 검찰의 6대 범죄 수사를 대신 맡을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을, 이수진 의원은 특별수사청 설치법을 각각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민주당은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처럼회 소속 의원들을 전진 배치했다. 민형배 최강욱 김남국 김용민 이수진 의원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에서도 검수완박과 관련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강경 목소리를 내는 초선 의원들의 의견이 과하게 표출됐다. 이어 지지자들도 이에 동조하면서, 다른 의원들까지 휩쓸리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국회 여야가 싸우고 협상하는 과정은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법안이 내재한 위험성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만든 원안만 고집하고 밀어붙이면, 국회의 절차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꼬집었다.
반면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여러 사람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시한을 못 박고 밀어붙인다고 비판하지만, 오히려 시한을 정한 건 윤석열 당선인과 한동훈 후보자다. 협의 의사는 전혀 없이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검찰의 강력한 권력을 견제한다는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재안이 아닌 원안을 5월 3일까지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원안이 아닌 수정안이 올라간 것에 대해서는 의원으로서 아쉽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면 다시 최소 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일부라도 통과시키려 한 점은 지지자들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