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통해 ‘단순투자자’로 참여
▲ 현대증권이 제4이통 사업에 1800억 원을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2008년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증권 부띠크 모나코 개점행사에 축사를 하는 모습. 사진은 합성. |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3일 주파수 할당 계획을 의결하면서 제4이동통신 사업의 서막이 올랐다. 현대그룹의 제4이통 파트너는 익히 알려진 대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주도하는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사실 지난 6일 이미 현대증권 이사회는 ‘제4이동통신사업 관련 IST컨소시엄 참여(안)’라는 단독 안건으로 이사회를 개최했다(<일요신문> 1014호 ‘현대 vs 동부 제4이통 쟁탈전 막후’ 제하 기사에서 ‘한 계열사’로 언급). 이날 이사회에서는 유망산업 투자를 통한 수익구조 다변화를 목적으로 4G(와이브로 어드밴스트, WiBro-Advanced) 전국망 상용 서비스 사업을 위해 IST 참여를 가결했다.
당시 현대증권 이사회는 IST에 직접 참여해 6500억 원의 자본금 중 4.9%에 해당하는 320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컨소시엄 자본금 확정(6500억~8000억 범위 예상)에 따라 출자 규모는 변경될 수 있지만 지분출자 한도는 5%(최대 400억 원) 이내로 제한했다. IST컨소시엄이 방통위로부터 사업권을 따내는 조건이었다.
현대증권이 지분출자 한도를 5% 이내로 제한한 이유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제24조 때문. 이 조항은 금융회사(현대증권)가 비금융회사(IST)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소유하면서 사실상 지배하고 있거나, 지배관계가 아니라도 20% 이상 소유할 경우 금융위원회에 사전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삼성카드가 보유중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 중 5%를 제외한 지분 매각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증권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의 컨소시엄 자본금 출자로 결정되는 듯했던 현대그룹의 제4이통 투자 방식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현대그룹의 주력인 현대상선 대신 현대증권의 출자액수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현대상선이 해운업 불황 등으로 실적부진의 늪에 빠졌기 때문에 현대그룹 수뇌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듯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18일 열린 현대증권 이사회는 유상증자의 건 외에 ‘PEF(사모투자전문회사) 유한책임사원 투자의 건’을 가결했다. 주요 내용은 중장기 자기자본투자 수익률 제고를 목적으로 이동통신사업 등 유망 사업에 투자 예정인 총 7000억 원(예정) 규모의 PEF에 최대 1800억 원(7000억 원 기준 25.71%)을 출자하겠다는 것.
현대증권은 출자액의 한도 내에서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사원(LP, Limited Parter)으로 참여하며, PEF는 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은 블라인드 형식으로 5년간(사원총회 결의로 연장 가능)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PEF는 투자검토 대상인 IST컨소시엄에 참여할 예정으로 현대증권은 IST에 먼저 투자확약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지난 6일 이사회 안건과 달리 현대증권의 IST 출자 과정이 복잡해진 것은 출자 액수 증액에 따라 금산법 적용이 달라진 때문이다. 지난해 9월 1일 금융위원회는 ‘금산법 제24조 규제 운용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금융위는 당시 금융회사가 PEF에 LP로 투자할 경우 승인 대상에서 제외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PEF의 LP 투자자는 PEF의 다른 회사 보유 지분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므로 규제할 필요가 없다. 보유 지분율 제한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현대그룹(현대증권)은 IST에 지배력(경영권) 없는 ‘단순투자자’로만 참여한다는 얘기다.
현대증권 이사회의 이 같은 결정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먼저 현대그룹 측의 말대로 “공시 의무가 없다”지만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 자체로 시장에서 비판 받을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논의 중이라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뒤이어 무리한 투자 논란이 일 수 있다. 서두에 밝혔듯이 현대증권은 대형투자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해 6000억 원 가까운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큰돈이 들어오겠지만 쓸 곳도 많다. 현대증권은 당장 1000억 원 안팎이 들어가는 대영저축은행 인수를 추진 중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현대증권이 사업영역이 전혀 다른 곳에 거액을 투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4이통에 참여하면 사업의 수익이나 성패와 상관없이 통신망 구축 등 설비투자에서 IT 계열사인 현대U&I의 매출을 보장할 수 있다는 매력도 현재와 같은 출자 방식으론 의미가 없다. IST의 IT 물량을 가져오기 위해 현대증권이 지배력을 행사하면 자본시장법을 위반하게 돼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사회 때 한 이사는 “PEF가 투자하는 대상기업에 현대그룹이 사실상의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제반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출자를 기화로 현대그룹이 본의 아니게 금산분리 완화 논란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금융위가 금산법 제24조 규제 운용 개선안을 내놓자 경제개혁연대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PEF는 GP(General Partner, 업무집행조합원)와 LP들 사이의 자유로운 협의를 통해 매우 유연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는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고 재벌총수의 지배력 확장을 방지하고자 하는 금산법의 취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며 보완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IST가 사업권을 따낸 뒤 현대그룹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상 결정을 내리면 지배력 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현대그룹이 배후로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아직까지 문제가 된 경우는 없지만 모니터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