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입은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 시도까지…진실공방 앞두고 활동 중단도
데뷔 직전 학폭 논란이 터진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김가람과 관련해 그의 소속사인 쏘스뮤직과 모회사 하이브는 일관되게 “해당 멤버가 친구들을 사귀다가 발생한 일을 교묘하게 편집해 악의적으로 음해한 것이며 오히려 김가람이 학폭 피해자였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학폭 피해를 폭로한 이들을 고소해 입막음에 나서는 한편, 5월 2일 예정된 데뷔를 강행해 활동을 지속하기도 했다. 고소 위협에 더 이상 학폭 사건이 거론되지 않으면서 김가람의 논란도 사그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가운데 지난 5월 15일, 한 네티즌이 2018년 3월 작성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 통보서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해당 문서에는 가해 학생의 이름으로 김가람이 적혀 있었다. 연예계 학폭 폭로에서 이 같은 문서 자료가 공개된 적이 처음이다 보니 진위 여부에 대한 지적이 빗발쳤지만 쏘스뮤직은 "기존 입장에서 바뀐 것은 없다"며 무대응으로 일관해 역으로 증거의 신빙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5월 19일에는 결국 피해자가 직접 나서기에 이른다. 피해자 유은서(가명) 양의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대륜은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 통보서는 본 법무법인이 의뢰인으로부터 제출 받은 경인중학교장 직인이 날인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 통보서와 그 내용이 일치한다"며 "유은서는 2018년 4월 말~5월 초 경 김가람과 그 친구들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된 집단가해를 견디지 못하고 사건 1~2주 만에 다른 학교로 전학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후 2018년 6월 4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됐고 학교폭력 가해학생인 김가람은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특별교육이수 6시간, 동조 제9항에 따라 학부모 특별교육이수 5시간 처분을 받았고, 피해자인 유은서는 동법 제16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심리상담 및 조언 등의 보호조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집단가해를 견디지 못해 전학을 갔지만 오히려 “유은서의 잘못으로 강제전학을 당했다”는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며 전학 이후에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도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경미한 학폭 사례의 징계 조치는 1~3호 처분에 해당하는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나 교내 봉사 등에 그친다. 5호 처분인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가 적용됐다는 건 김가람의 가해 행위가 상당히 심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폭 가해 판정점수 7~9점이 부과되는 사회봉사(4호 처분)보다 한 단계 높은 조치로, 가해학생의 선도나 교육에 필요하다고 자치위원회가 의결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즉, 봉사활동 등 낮은 단계의 조치로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는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학폭에 대한 특별 교육이나 심리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다.
이후 4년 뒤 김가람의 르세라핌 데뷔 소식이 전해진 뒤 유은서 역시 해당 사실을 알고 큰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맞지만, 학폭 폭로를 밝힌 것은 유은서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학폭 피해자가 유은서임을 알고 있는 동창이나 일부 네티즌들이 그에게 악의적인 비난 메시지를 퍼부었고, 모자이크 된 유은서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협박까지 가했다는 게 피해자 측이 밝힌 현 상황이었다.
대륜 측은 “하이브의 입장문까지 더해지면서 유은서에 대한 무차별적 2차 가해가 더욱 거세어짐에 따라 김가람의 유은서에 대한 집단 가해 행위, 유은서의 심경을 담은 탄원서, 김가람이 학폭 가해학생으로 조치받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통보서를 첨부해 하이브에 내용증명을 보냈다”라며 “피해자는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고 다만 사실과 다른 입장문을 삭제해 줄 것과 사실에 근거한 입장표명을 다시 해줄 것, 피해자에 대한 사과를 표시해 줄 것, 추후 김가람과 그 친구들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 사실과 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을 것을 촉구했으나 하이브는 어떤 회신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김가람의 연예활동은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2차 가해로 인한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견디지 못한 유은서는 결국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으며, 하이브가 계속 ‘폭로는 악의적인 음해이며 김가람은 피해자’라는 입장을 고수할 경우 가해 증거 자료를 모두 공개하겠다고도 덧붙였다.
피해자 측의 입장 발표에도 “2018년 당시 발생한 사안의 일부 내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정리해서 발표한 것”이라고 맞불을 놨던 하이브와 쏘스뮤직은 5월 20일 다시 공식입장을 내고 피해자의 주장에 반박했다. “이 사안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유은서)가 학폭위를 요청하면서 되려 피해를 입은 친구를 위해 나섰던 김가람이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사안”이라는 게 소속사의 주장이다. 서로 친했던 두 사람이 학기 초 험담으로 인한 갈등을 빚어 관계가 깨졌고, 이후 유은서가 김가람의 친한 친구가 학교에서 탈의 중일 때 속옷만 입은 사진을 촬영해 이를 SNS에 공개적으로 올리면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소속사 측은 “김가람을 포함한 친구들이 유은서에게 항의하는 과정에 어떤 물리적, 신체적 폭력 행위가 없었고 유은서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며 “오히려 자신에게 항의한 친구들을 가해자로 지목해 학폭위에 회부한 뒤 본인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 버렸다. 그 결과 김가람과 친구 1명은 학폭위 처분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가람도 “화분으로 친구를 때렸다. 강제전학 왔다”는 허위 소문으로 고통 받은 학폭 피해자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가람은 중학교 1학년 때의 학폭위 처분 이후 사이버 불링 등 학폭으로 상처를 받은 피해자가 되기도 했지만 이후 본인의 꿈과 미래를 위해 착실하게 정진해 왔다”며 “그러다 이번 데뷔 과정에서 온갖 루머로 공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당사는 김가람과 논의해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데 집중하기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가람이 복귀할 때까지 르세라핌은 5인 멤버 체제로 활동하게 된다.
연예계 학폭 폭로 사건에서 피해자가 실제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한 것도 이번 김가람 사태가 최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엔 하이브와 쏘스뮤직의 ‘덩치에 맞지 않는’ 초보적인 대응이 큰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적어도 피해자 측이 내용증명을 보냈을 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일부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이 아니라 인정과 사과를 우선했다면 이렇게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소속사가 보호하고 싶은 멤버가 미성년자인 것처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피해자 역시 어린 학생이라는 점에도 신경써야 했다는 쓴 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한편, 김가람이 자숙하는 동안 소속사와 피해자 측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피해자 측이 밝힌 대로 김가람의 당시 상세한 학폭 가해 내용이 공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앞서 피해자 측은 “소속사가 계속 ‘폭로는 악의적인 음해이며 김가람은 피해자’라는 입장을 고수할 경우 가해 증거 자료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9일 이후 김가람과 같은 중학교 출신이라는 네티즌들의 또 다른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향후 상황 전개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