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찰이 무혐의 결론 내리자 검찰이 보완수사 요청…정치권 소용돌이에 두산그룹 “입장 없어”
두산그룹은 2010년대 들어서면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신사옥 건설을 추진했다. 두산의료재단은 1991년 분당구에 병원 건설을 목적으로 9936㎡(약 3000평) 규모의 부지를 약 72억 원에 매입했다. 그렇지만 인근 지역 병원이 포화 상태라는 이유로 실제 병원 건설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두산의료재단은 2002년 두산건설에 부지를 넘겼고, 성남시는 2015년 해당 부지의 용도를 병원용지에서 상업용지로 변경하는 것을 승인해줬다. 용도 변경 후 두산그룹은 신사옥 착공에 들어갔고, 지난해 분당두산타워라는 이름으로 완공됐다. 현재 두산큐벡스, 두산밥캣 등 두산그룹 일부 계열사가 입주해 있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분당두산타워 부지와 건물을 분당두산타워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에 6174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두산그룹이 1991년 72억 원에 매입한 부동산을 2021년 6174억 원에 매각한 것이다. 분당두산타워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의 주요 주주는 두산프라퍼티,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엠플러스자산운용 등이다. 두산프라퍼티의 분당두산타워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 지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8.60%다.
다만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과 엠플러스자산운용이 보유한 지분은 종류주이기 때문에 분당두산타워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는 두산그룹 계열사로 분류된다. 두산그룹은 분당두산타워 건설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수천억 원의 차익을 봤고, 분당두산타워 운영권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지 용도 변경 과정과 관련해 성남 FC 부당 후원 의혹이 불거졌다. 부지 용도 변경 후 두산건설이 성남 FC에 42억 원을 후원했기 때문이다. 장영하 변호사는 성남 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고문과 성남시 공무원, 성남 FC 대표이사 등을 제3자 뇌물죄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지난해 증거 불충분으로 이재명 고문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이 최근 보완수사 요청을 내렸고, 이에 따라 분당경찰서는 지난 5월 17일 두산건설과 성남 FC를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당시 경찰의 무혐의 결정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성남 FC 사건 관련해 (검찰 내부에서) 수사 결과에 의문이 가니 재수사를 해야겠다고 하고, 경찰에 보완수사지휘를 내려야 한다는데도 지청장이 막고 있다”며 “두산그룹은 병원지구를 상업지구로 변경해서 수천억 원의 이익을 봤고, 뇌물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두산건설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더불어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지난 5월 18일 “이재명 고문에 대한 표적수사이자 억지수사이고, 지방선거에 대한 부당한 선거개입”이라며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재명 고문에 대한 탄압을 즉각 멈춰달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도 지난 5월 23일 성명을 통해 “해당 압수수색은 엄연히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개입”이라고 밝혔다.
당사자인 두산그룹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과 엮였을 때는 이슈를 키우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라면서도 “당사자의 명쾌한 해명이 없으니 추측성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2015년 당시 두산그룹 총수는 박용만 전 회장이었다. 의혹이 수사 결과 사실로 밝혀진다면 박 전 회장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 전 회장은 올해 1월 이재명 고문을 공개적으로 만나 경제 관련 현안을 논의하는 등 이 고문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전 회장과 이재명 고문은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한다”며 “두산그룹 특혜 의혹, 성남 FC 거액 후원, 박 전 회장과 이 고문의 친분 관계,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국민적 의구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박용만 전 회장은 지난해 두산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사임했고, 두산그룹 계열사 지분도 전량 매각했다. 박 전 회장은 현재 컨설팅 업체 벨스트리트파트너스를 이끌고 있으며 친족독립경영을 이유로 두산그룹 오너 일가와의 특수관계도 해소됐다. 그럼에도 뇌물을 공여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예로 삼성그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차례 압수수색을 받은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 등 삼성그룹 주요 경영진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반대로 박용만 전 회장이 두산그룹에서 은퇴해 현 두산그룹이 사법처리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압수수색이나 재판에 대한 피로감은 있고,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은 감수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박용만 전 회장이나 두산건설은 두산그룹과 관계가 없고, 현재 두산그룹에 남아있는 당시 실무진들에게 법적으로 큰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박용만 전 회장은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되는 재계 인사 중 하나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거론되는가 하면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을 맡으면서 소신 발언을 한 것이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박 전 회장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
두산건설을 인수한 큐캐피탈파트너스에도 최근 상황은 부담이다. 큐캐피탈파트너스는 지난해 스카이레이크파트너스, 유진자산운용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두산건설 지분 53.6%를 약 3700억 원에 인수했다. 두산건설이 분당두산타워 부지를 소유했었고, 성남 FC에 후원한 주체였던 만큼 공식 재판에 들어가면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 두산건설 관계자는 “따로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