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째 운항 중단…노조는 자구안 제출하고 사측은 재매각 추진하지만 정부 특별한 움직임 없어
지난 3월 이스타항공이 항공기 운항을 전면 중단한 이후 8개월째 비행기를 띄우지 못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대유행(Pandemic·팬데믹) 이후 대부분 저비용항공사(LCC)가 경영난에 빠졌다. 이에 KDB산업은행은 지난 3월 무담보 조건 자금 대출 형식으로 LCC를 지원했다. 하지만 당시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하던 제주항공이 지원을 받으면서 이스타항공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무산된 현재도 정부 차원의 이스타항공 지원은 전무하다. 오히려 정부는 이스타항공을 지원할 뜻이 없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 9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스타항공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기에 직접 지원이 어렵다”며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7월에는 김상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이 브리핑에서 “이스타항공이 플랜B를 제시하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돕는 순서로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이스타항공의 자구 노력에 따라 정부의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에 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측은 임금 삭감, 체불임금 일부 반납, 순환 무급휴직 등을 약속하며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에 여러 경로로 자구안을 전달했지만 국토부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무 응답이 없다”며 “국정감사 때 노조를 만나겠다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무소식이고, 여당 의원들도 말뿐이었다”고 전했다.
#재매각 추진 지지부진
한편 이스타항공 사측은 재매각을 시도 중이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당초 이스타항공은 10월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법정관리를 신청할 계획이었다. 회생절차에 들어가 부채를 탕감하고 DIP 파이낸싱(회생 기업에 대한 대출)을 받은 후 일부 국내 노선의 운항을 재개한다는 것이었다. 이스타항공 사정에 정통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한 곳과 기업 한 곳이 이스타항공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그러나 제주항공처럼 인수 계약을 철회하는 곳도 있는 상황인데 인수 계약을 맺기 전까지는 이스타항공 재매각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재매각 추진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불거지는 등 진통도 적지 않았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지난 9월 사측의 재매각 작업을 믿을 수 없다며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했다.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임금 체불 채권자이기에 채권자 자격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변호사와 상담한 결과 현재로서는 법원이 회생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일단은 보류 중”이라고 전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 재매각이 성공하면 미래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본다. 앞의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모든 항공사가 어렵지만 이스타항공은 그간 구조조정을 많이 했기에 비용 발생이 적어 생존 자체만 놓고 보면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국제선 운항을 재개하면 노선과 슬롯을 갖고 있기에 플라이강원 등 신생 항공사보다 유리하고, 국토부도 이번 일을 겪었으니 항공사 신규 허가나 운수권 배분도 당분간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 없이는 이스타항공의 재매각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항공업계 다른 관계자는 “해외 지역까지 코로나19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때까지 이스타항공이 버티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며 “아시아나항공이나 제주항공도 정부 지원 없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인데 정부 지원이 없으면 굳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려는 곳도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지원 없이 이스타항공의 재매각은 쉽지 않다. 지난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관계자들이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정부는 이스타항공 지원책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그간 이스타항공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한 건 사실이지만 정부가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국토부는 항공산업을 살리겠다는 것보다 산업은행이나 기획재정부 논리만 쫓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집권 여당이 나서 달라”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타항공 직원들이 직장을 떠났지만 코로나19로 탓에 재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스타항공에 남은 직원들도 수개월째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수백억 원에 이르는 미지급 임금 때문에 이스타항공이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할 수도 없다. 이스타항공의 한 직원은 “아시아나항공 지원액의 100분의 1만 있어도 이스타항공은 생존이 가능하다”며 “이동걸 회장이 아시아나 매각을 추진하면서 일자리에 대한 특혜라고 언급했는데 1500명의 이스타항공 일자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실이 전해지면서 정부 여당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허청회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지난 4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위원장이 단식 농성 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며 “노동을 존중한다는 정권에서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노동자를 이렇게 외면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응호 정의당 부대표도 지난 19일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이 아직도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정부와 집권여당이 나서면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이스타항공이 어떻게 된다고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