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차이는 테라 한국 영업 위해 설립된 회사”…차이 이사 테라 명함 사용 등 단순 제휴 그 이상 정황
"2019년 테라와 제휴를 맺고 협업했다. 그러나 2020년에 파트너십을 종결했다"는 해명도 선 긋기를 위한 사실관계 왜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두 회사가 사업 제휴를 제외하면 특수한 관계가 전혀 없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요신문이 입수한 판결문에서 법원은 "차이는 테라의 한국 영업을 위해 설립된 법인"이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1년 11월 4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누설),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차이 정보보안팀 이사 A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80시간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A 씨는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스트리미에서 차이로 이직하면서 정보보호관리체계 관련 영업비밀을 유출했다. A 씨는 회사 전산 시스템 접근 권한이 정지되고 사옥 출입카드를 회수당했다. 하지만 부하 직원 도움을 얻어 영업비밀 자료를 취득했다.
차이와 테라 관계는 재판 쟁점 중 하나였다. A 씨가 영업비밀 취득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로 인한 스트리미의 손해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차이와 스트리미는 동종업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가 테라와 관련된 업무도 수행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A 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씨가 퇴사하기 이전에 직원들에게 자신이 테라와 차이로 이직한다고 언급하고 테라 CISO(정보보호최고책임자) 명함과 차이 정보보호최고책임자 명함을 각각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차이와 테라가 사업 제휴를 맺기 전부터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테라와 차이로 이직한다"던 A 씨의 퇴사일은 2019년 3월 12일. 테라와 차이가 블록체인 연구 및 사업협력을 위한 업무제휴 협약 체결을 발표한 2019년 6월 12일보다 정확히 3개월 앞선 시점이다. 재판부는 "차이는 테라의 한국 영업과 관련된 회사로 보이고, A 씨도 그와 같이 인식하고서 2개 회사 명함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또 재판부는 "A 씨의 차이 사무실 책상에서 스트리미의 ISO(국제표준화기구)/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 27001 정보보호 운영증적 바인더와 함께 테라/가즈아랩스 및 몽골 합작법인 ISO 27001 인증 취득 컨설팅 수행방안 서류가 압수됐다"고 했다. 앞서 일요신문이 지난 5월 19일 보도한 테라와 가즈아랩스(현 커널랩스)의 긴밀한 관계를 강하게 의심할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다. 가즈아랩스는 테라 알고리즘과 관련한 특허권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테라 기반 블록체인 서비스인 미러 프로토콜과 앵커 프로토콜 서비스 개발과 운영에 참여했다(관련기사 [단독] ‘테라’ 개발 관여 국내 법인 포착…검찰 합수단 1호 타깃 되나).
차이 측은 5월 25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차이와 테라가 단순한 사업 제휴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는데 사실상 그 이상의 관계가 아니냐"는 질문에 "차이와 테라가 사업 제휴로만 연관된 회사였다는 해명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회사의 초기 지분 등 정확한 관계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차이 측은 "문제가 된 앵커 프로토콜 등은 차이와 테라 관계가 정리된 후 출시됐다"고 강조했다.
#한창준 차이 초대 대표도 테라 출신 정황 짙어
차이와 테라의 연결고리는 신현성 전 대표뿐만이 아니다. 일요신문은 한창준 차이 초대 대표가 차이 대표를 맡기 전 테라에서 일한 정황도 다수 포착했다. 한 전 대표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에서 2019년 1월 16일 열린 블록체인 관련 행사에 테라 소속으로 참여했다. '암호화폐 시장과 금융 시장의 협업'을 주제로 한 토크의 패널 중 한 명이었다. 한 전 대표의 직함은 재무 총괄(Head of Finance)로 표기됐다. 해외 채용 사이트에 게재된 한 전 대표의 프로필에는 2018년 1월부터 테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했다고 나온다.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에 한 전 대표는 테라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2018년 9월 13일 차이 설립 당시 회사 이름이 지구전자결제였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당시 신현성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테라는 땅, 지구라는 뜻"이라며 "탄탄하고 안정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루나(달)는 어쩌면 반대의 뜻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차이는 사명을 2019년 9월 19일 지구전자결제에서 현재 이름으로 바꿨다. 2019년 6월 12일 테라와 업무제휴 협약을 발표했을 당시 사명이 지구전자결제였음에도 보도자료 등에 사명을 차이라고 표기했다.
신 전 대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차이 최대주주에 올랐는지, 2018년 9월 차이 설립 당시 지분을 보유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차이는 비상장사라 지분 관계 파악이 어렵다. 차이는 2021년 12월 31일 기준 싱가포르에 위치한 차이페이홀딩컴퍼니(Chai Pay Holding Company)가 최대주주다. 차이 보통주 100%를 보유했다. 차이페이홀딩컴퍼니의 최대주주는 신 전 대표다. 차이페이홀딩컴퍼니는 테라와 마찬가지로 신 전 대표와 권도형 테라 대표가 함께 설립한 회사다. 권 대표는 여전히 차이페이홀딩컴퍼니 주요 주주다.
신 전 대표가 차이 최대주주에 오른 날은 2020년 10월 23일로 확인됐다. 중앙그룹이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돼 차이 또한 계열사로 이름을 올리면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총수의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을 특수관계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신 전 대표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의 처조카다. 차이는 2022년 중앙그룹 계열사에서 다시 제외됐다. 지분 변화 때문은 아니다. 공정위로부터 독립 경영을 인정받아 차이를 포함해 신 전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 6곳이 계열사 명단에서 빠졌다.
차이페이홀딩컴퍼니는 수차례 투자를 통해 차이 최대주주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차이 법인등기부를 보면 2020년 10월 23일 우선주 8400만 주가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로 전환됐다. 기존 보통주 5000만 주보다 더 많은 양이다. 해당 우선주는 2020년 2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발행됐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