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 강제 출연 피해 방지법’ 무난한 통과 전망…AV 실제 성행위 금지 법안 두고는 시끌
일본에선 수년 전부터 AV 출연을 원치 않는 이들의 강제 출연 피해가 사회 문제로 대두돼 왔다. 이제 성인이 된 18세와 19세는 AV 강제 출연 피해에서 미성년자이기에 받을 수 있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다. 이에 일본 정치권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제법안을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AV 촬영 과정에서 실제 성행위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논의 중이다. 일본 네티즌들은 이를 ‘AV 금지법’이라 부르며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성년 연령 기준에 대해 대한민국 민법 제4조는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고로 만 나이다. 2011년 19세로 성인의 기준이 개정된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선거권은 18세가 기준이다. 2019년 법 개정으로 선거권이 만 18세로 확대됐고 2021년 12월 31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지방선거 출마 최저 연령 기준이 25세에서 18세로 낮아졌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 후보 등록을 완료한 10대 출마자도 7명이나 된다.
이제 성인의 기준도 18세로 낮추는 논의도 서서히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 생일이 지난 고3 학생부터 성인이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선 고3이 마음대로 음주와 흡연을 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 가장 논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성인 기준은 18세다.
일본에서는 4월 1일부터 성년 연령 기준이 20세에서 18세로 낮아졌다. 관련법이 생긴 1876년 이후 146년 만의 변화다. 이제 18세와 19세 일본인은 흡연과 음주는 물론이고 경마 등의 공영 도박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성인 연령 기준을 두 살 내리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가 가장 들썩인 부분은 고등학생의 AV 출연을 둘러싼 논란이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미성년자이던 18세와 19세가 AV에 출연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성진국’답게 일본은 이미 미성년자이자 고등학생인 18세와 19세의 AV 출연이 가능했다.
한국이라면 미성년자 출연 AV를 제작하거나 보는 행위 등이 모두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위반이다. 게다가 2015년 헌법재판소는 성인이 미성년자를 연기한 음란물도 아청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대략 규모가 1조 엔(약 9조 956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일본 AV 업계는 그동안 수많은 AV 스타를 발굴해냈지만 모든 배우가 원해서 AV에 출연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까닭에 일본에선 AV 강제 출연 피해가 오랜 기간 사회적인 문제였다.
가수나 배우, 모델 등 연예인이 되고 싶어 에이전시 업체와 계약을 맺은 뒤 AV에 출연을 강요당하는 사례가 가장 흔하다. AV 출연을 거절하면 계약 위반으로 엄청난 위약금을 내야 해 어쩔 수 없이 AV 출연 강요를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라비아 촬영이라고 속이고 AV 촬영을 강요하는 사례도 많고, AV 출연 자체에는 동의했지만 비인간적인 성행위나 연출을 강요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폭력과 협박 등으로 AV 출연을 강요당하기도 하는데 심지어 AV에 출연시키기 위해 고교생 상대 인신매매 범죄까지 일어났다.
‘AV 강제 출연 피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각종 단체에서 인권침해 조사보고서 등이 발표되면서 일본은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2017년 설립된 AV인권윤리기구가 대표적인데 여기에선 배우들로부터 피해와 판매 중지 접수를 받는다. 일본의 대형 AV업체들이 대거 AV인권윤리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18세와 19세의 경우 민법이 미성년자로 분류하고 있어 계약 취소가 가능하도록 했다. 계약 위반이라고 위약금을 내라며 AV 출연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일본 민법이 성인 기준을 18세로 낮추면서 18세와 19세가 더 이상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없게 됐다.
결국 5월 25일 일본 중의회 내각위원회는 일본 여야 6당이 내놓은 구제법안 ‘고등학생 AV 강제 출연 피해 방지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중의회 본회의와 참의회를 거쳐야 하지만 일본 언론은 모든 과정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치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방향까지 고민 중이다.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소속인 쓰쓰미 가나메 중의원 의원은 내각위원회 법안 표결에 앞서 AV 촬영 과정에서 실제 성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성행위를 수반한 AV 금지법)을 당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쓰쓰미 가나메 의원은 “AV 촬영 과정에서 실제 성관계를 하면 성병이나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릴 위험이 있고 임신을 걱정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개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성 착취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나 영화 속 살인 장면도 어디까지나 연기일 뿐, 실제 살인을 저지르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모리야마 히로유키 의원 역시 “이번 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 차원에서 지원 단체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검토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화답했다.
‘고등학생 AV 강제 출연 피해 방지 법안’은 그동안 일본이 오랜 기간 고민해온 사회 문제인 ‘AV 강제 출연 피해’ 관련 사안인 데다, 민법의 성인 연령 기준 하향에 따른 구제 법안이라 일본에서도 당연한 수순이라는 반응이다. 그렇지만 일명 ‘성행위를 수반한 AV 금지법’을 두고는 일본 사회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최대 포털 야후 재팬에서 ‘AV 금지(AV 禁止)’가 5월 25일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올랐고, 26일에도 ‘AV 금지법(AV 禁止法)’이 여전히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라 있다. 아무래도 반대 의견을 보이는 일본 네티즌들이 많은데 AV 촬영 과정에서 실제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AV 제작 자체를 금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