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인 ‘아싸’서 유력 차기 주자로 급부상…불리해진 경기도정 성과부터 내는 게 최우선 과제
김동연 당선인은 선기기간 내내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에 오차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뒤처졌다. 선거 후반 김 당선인 지지율 추이는 오르막, 김은혜 후보는 내리막이었고 승패를 예단하기 힘든 대혼전 양상을 띠었다. 6월 1일 7시 30분 투표 종료 후 발표된 KBS·MBC·SBS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김은혜 후보 49.4%, 김동연 당선인 48.8%로 불과 0.6%포인트(p) 차이었다.
개표 초반 김 후보가 5%p 가까이 김 당선인을 앞서면서 국민의힘 내에선 ‘수도권 싹쓸이’ 기대가 퍼졌다. 김 후보 캠프에선 ‘사상 첫 여성 광역단체장 김은혜’란 구호가 흘러나왔다. 6월 1일 자정을 넘어서며 조금씩 표차를 좁히던 김 당선인은 개표 96.6%가 이뤄진 시점인 오전 5시 32분 역전에 성공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김동연 49.06%, 김은혜 48.91%. 불과 0.15%p(8913표) 차였다.
전국에서 날아든 패배 소식으로 침통하던 민주당에 안도감이 돌았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사실 경기도도 힘들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김동연 당선인의 공직 경력과 실력을 경기도민이 높이 샀기 때문”이라면서 “김 당선인은 경선에서 경기도 맹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안민석 염태영을, 그리고 본선에선 윤 대통령 최측근 김은혜 후보를 꺾었다. 민주당은 선거에서 참패했지만 유력한 대선 후보를 한 명 얻었다”고 말했다.
1982년 행정고시를 거쳐 공직에 몸담은 김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로 임명됐다. 그는 2021년 대선 기간 새로운물결을 창당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대선 막판 이재명 당시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이후 새로운물결은 민주당과 합당했고, 김 당선인은 경기지사직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이번 승리로 김 지사는 당의 아웃사이더에서 단숨에 유력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
민주당이 참패한 선거에서 이뤄낸 결과라는 점 때문에 김 지사 승리는 더욱 빛난다. 민주당은 17개 시도 광역단체장 중 텃밭인 호남과 강세 지역이었던 제주를 제외한 12곳에서 패배했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은 5곳을 차지하며 민주당(2곳)을 눌렀다. 국민의힘은 교육감 선거, 기초단체장·의회 선거에서도 대약진에 성공하며 2018년 지방선거에서의 대패를 설욕했다.
경기도만 놓고 살펴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 31곳의 시장·군수 선거에서 민주당은 불과 9곳을 따내는 데 그쳤다. 2018년 지방선거 땐 29곳을 승리했었다. 민주당은 현역 단체장이 대거 출마했음에도 수성에 실패했다. 전체 142석 중 135석을 이겼던 경기도의원 선거에선 71석에 불과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4석에서 70석으로 늘었다. 비례대표를 합하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경기도의원은 78석 동석이다.
정가의 시선은 김 당선인이 향후 선거 패배 책임을 놓고 벌어질 당 내홍에서 어떤 스탠스를 보일지에 쏠린다. 현재 민주당은 신주류인 친명(이재명계)과 친문 진영이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친문에선 ‘이재명 책임론’을 거론하며 이재명 의원 2선후퇴를 꺼냈고, 이에 반해 친명에선 ‘이재명 아니면 당을 누가 개혁하느냐’라는 물음으로 맞섰다. 중립성향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느냐. 둘 다 책임이 있는데. 친문이나 친명 모두 고개를 숙여야 할 판에 내부 총질을 하고 있다. 답답하다. 2년 후 총선이 벌써 걱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 당선인 승리는 많은 걸 시사한다. 왜 경기도민이 김 당선인을 택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 당선인은 계파를 떠나 중도와 실용 이미지다. 강경한 패거리 정치에 대한 경고다. 무게감이 커진 김 당선인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친문과 친명 간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김 당선인을 친명 성향으로 보긴 한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의원과 단일화를 했고, 또 이번 지방선거에선 이 의원이 김 당선인을 경선 때부터 지원했다. 김 당선인 역시 선거 유세 때 ‘이재명 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했다. 하지만 김 당선인은 친문과도 접점이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출신이다. 김 당선인은 이 의원이 선거 막판 김포공항 이전을 꺼내들자 “아무 조율 없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면서 미묘하게 선을 긋기도 했다.
김 당선인 주변에선 그를 특정 계파 소속이라고 하는 데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김 당선인의 한 측근 인사는 “김동연이 살아온 길을 봐라. 군사정권부터 문재인 정부 때까지 일한 사람이다. 맡은 일 잘하고,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김 당선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미덕은 계파가 아니라, 실용과 중도”라고 말했다. 이 말엔 김 당선인을 친명계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부정도 담겨 있다.
여의도에선 주가가 급상승한 김 당선인이 당내에서 ‘이재명 대항마’가 될 것으로 관측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친문계 움직임에 주목한다. 친명계가 이재명 의원이라는 차기 주자를 갖고 있는 반면, 친문계는 ‘포스트 문재인’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외부에서 들어와 당내 세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김 당선인으로서도 당 최대 세력인 친문과의 연대는 ‘남는’ 장사다. 김 당선인 정치 스케줄이 차기에 맞춰져 있다면 확실한 카드를 갖고 있는 친명보단 친문계와 이해득실이 더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당선인에 대한 과대평가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어렵게 승리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원외 광역단체장으로서의 역할엔 한계가 있다는 이유다. 김 당선인 측에서도 “당분간 도정에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 당선인은 6월 2일 당선 소감에서 “민주당에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당의 현안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앞서의 김 당선인 측근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 경제부총리 시절 청와대 사람들과 자주 싸웠던 것도 이 때문”이라면서 “김 당선인이 당의 어려움을 모른 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김 당선인이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어 보인다. 30년 넘게 몸 담아온 공직과는 달리 ‘정치인 김동연’은 아직 국민들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이번 지방선거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르긴 했지만 아직 도정은 출발조차 안했다. 더군다나 전임인 이재명 시장이 압도적인 민주당 소속 단체장과 도의원 숫자 덕분에 업무를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반면, 김 당선인은 그렇지 못하다. 김 당선인 정치 인생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