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전대 치르면 민주당 골로 갈 것…강성 지지자들 ‘5년째 양념질’ 정말 비참하다”
연이은 선거 참패 후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상황에 대해 박용진 의원이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건넨 말이다. 당내 소신파로 꼽히는 박용진 의원이 이른바 ‘문자폭탄’을 처음 받게 된 건 2017년 대선 경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만 통에 가까운 문자에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는 일이 잦아지자, 박 의원은 “대처하는 요령이 생겼다”며 미소를 지었다.
박 의원이 꼽은 민주당 몰락의 기점은 2019년 조국 사태. 이후로부터 민주당 강성 지지층들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잦아졌고, 당에는 ‘오만’ ‘불통’의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그렇게 서서히 중심을 잃기 시작한 당은 지난 3·9 대선 패배 이후 6·1 지방선거에서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민주당은 앞으로 어떻게 쇄신해야 할까. 박 의원은 6월 10일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비대위의 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전당대회 룰이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100% 국민 여론 반영도 괜찮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민주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 원인은 무엇이라 보나.
“신뢰가 붕괴했다. 국민들이 민주당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민주당의 오만, 불통, 무능 때문이다. 조국 사태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고위공직자 7대 인사 기준, 우리가 만들어놓고 우리가 안 지켰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조국 사태 이후는 어땠나.
“조국 사태는 가장 최상위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인사를 잘못 추천했으면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조국 전 장관을) 지키겠다고 했다. 의원들이 나서서 범죄 의혹을 방어하려고 온갖 논리를 들이댔다. 이뿐인가. 위성정당 만들고 당헌당규 개정해 재보궐 선거 후보를 냈다.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질리게 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입법독주 프레임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검찰을 바라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식에 대해서 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의의 기준이 검찰인가. 브로커 검사, 스폰서 검사, 떡값 검사…. 대한민국 검사들, 돈 있고 백 있는 사람들한테 한없이 온정적이었다. 무소불위의 검찰, 개혁해야 한다. 하지만 개혁안을 오만, 불통으로 그렇게 독주할 필요는 없었다. 꼼수 탈당(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의 민형배 의원 탈당 지칭)까지 하면서. 국민들이 보셨을 때 민주당은 갈 데까지 간 거다.”
―민주당의 불통, 오만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만 옳다고 하는 자기 세계관에 갇혀 있다. 내부에서 쓴소리가 나오면 무시한다. 외부의 비판과 견제 목소리에도 귀를 닫아 버린다. ‘우리처럼, 우리들만 강경하게’다. 입으로만 혁신이다. 4·7 재보선에서 지고도 당대표는 송영길, 원내대표는 윤호중이었다. 그 나물에 그 밥 아닌가. 이번에도 똑같은 시스템으로 전당대회를 치른다? 민주당 진짜 골로 갈 거다.”
―‘이재명 책임론’을 놓고 당이 어수선하다.
“이재명 의원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도, 이 의원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도 다 웃기다. ‘이 의원에게 책임이 없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이 의원을 오히려 얕잡아 보는 평가 아닌가. 그의 책임과 지휘 하에 선거를 치렀는데 그에 걸맞게 책임을 따지고 반성하는 게 맞다. 이제 와서 이 의원 때문에 진 게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나.”
―이재명 의원은 전당대회에 출마할까.
“나오고 말고는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다. 본인의 출마가 왜 혁신인지, 다음 총선에서 본인이 승리를 약속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때가 돼서 나오는 게 아니라, 민주당 혁신을 위한 본인만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이재명 의원의 재보선 출마를 어떻게 봤나.
“호흡이 가쁘다. 길게 안 보고 짧게 대응하고 있는 거 아닌가. 민주당의 중요한 자산인데 너무 빨리 현금화시키는 것 아닌가 싶다. 주식 할 때 자산을 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나. 뜨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데 조금 올랐다고 바로 팔고. 단타 매매다. 이 의원도 그렇고, 우리 당도 그렇고 모두 장기투자 안목을 갖출 필요가 있다.”
―친문(친문재인)계와 친명(친이재명)계의 내홍이 벌어졌다.
“싸울 게 있으면 싸워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요란해야 된다. 혁신의 방망이질로 부술 건 다 부수고 새로 지을 건 새로 짓고 해야지. 낡은 틀에 안주하면 그야말로 다음 총선에서 다 죽는 거다. 조용하게 질서 있는 논의? 한가한 소리다.”
―586 운동권의 대표주자인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민주당을 이끌게 됐다. 비대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 위원장은 쓴소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찾아야 할 사람이다. 의원들이 싸우고 비대위는 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혁신의 완성은 제도 개혁에 있다. 전당대회 룰을 제대로 뜯어 고치는 혁신형 비대위로 가야 한다.”
―전당대회 룰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당심 대 민심 5 대 5(현행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 국민 10%, 일반당원 5%)다. (지금 거론되는) 대의원 40%, 권리당원 45%, 일반 국민 10%, 일반당원 5%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만 상대로 하는 전당대회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전당대회가 아니다. 이건 바꿔야 한다.”
―100% 일반 국민 여론 조사 반영도 거론된다.
“100%도 괜찮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민심이 많이 섞이면 섞일수록 좋다. 지금 전당대회 경선 룰이 단 1%의 민심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일반 국민 10%에게 물어보는데, 역선택 방지조항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면 배제시킨다. 우리 당 지지율, 지금 30%다. 나머지 70% 얘기를 듣지 않는 당이 어떻게 집권을 하나. 70%는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에서 우리 찍었던 분들이다.”
―통합형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주장도 나온다.
“동의한다. 지금보다 훨씬 변할 것이다. 대표의 전횡 혹은 이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당내 갈등들이 사라질 수 있고, 다양한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 다만 2010년 ‘빅3(정동영 정세균 손학규) 지도부’ 때처럼 상시적인 갈등구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 명의 대표에게 권한을 몰아준다고 해서 지금 갈등이 봉합되진 않을 것이다.”
―비대위의 민주당 쇄신 방안이 있다면.
“쉽진 않을 거다. 전당대회를 8월 말에 치른다고 하면 비대위 역할은 딱 하나뿐이다. 전당대회 치르는 데 한 달 반 정도 소요된다. 7월 중순 이전에 당 대표 후보들이 나오면 (비대위가) 뭘 결정하기 어렵다. 제도 혁신에 집중을 해야 한다.”
―‘개딸(개혁의딸)’ 등 강성 지지층이 당의 개혁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있다.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2017년 대선 경선 때부터다.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에 대해 비판하거나 지적하면 문자 폭탄이 돌아왔다. 그때 나온 말이 양념(당시 문재인 후보는 이를 ‘민주주의의 양념’이라 했다)이다. 5년째 ‘양념질’을 당하고 있다. 제가 한 말대로 했으면 당이 여기까지도 안 왔을 거다.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문자 폭탄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이 방식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
―소위 ‘찍힌’ 셈이다. 그래도 왜 쓴소리를 이어가는가.
“다 당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민심을 반영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정당의 역할이다. 민심을 반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니깐 오늘의 민주당이 된 거다. 당 안에서 치이기도 하고 강성 지지자들에게 욕 문자도 많이 받고(실제 박 의원은 하루에 1000건 이상의 문자 폭탄을 받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서 할 말을 하는 게 정치인의 자세라고 본다. 바람이 분다고 해서 머리를 숙이면 되겠는가.”
―지도부가 강성 지지자들에게 휩쓸리는 걸 보면 어떤가.
“아쉽다. 어쩔 땐 무섭다(웃음). 나만 이러다가 잘못되나. ‘넌 다음 공천에서 아웃’ ‘국짐(국민의힘)으로 가라’ 등 일관된 경고와 협박들을 계속 받고 있다. 재벌 개혁안으로 인한 재벌 총수들로부터의 공격, 유치원 3법 등으로 원장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그것도 당원들이라 스스로 자임한 분들에게….”
―비참한가.
“정말 비참하다. 내 집이라 생각해 서까래가 무너질 것 같다고 했더니 저 새끼 쫓아내라고 하는 격 아닌가. 근데 봐라. 서까래 무너졌지 않나.”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출신 인사들을 연이어 발탁하고 있다.
“인사편중 비판을 받은 전직 대통령 중에 대통령 입으로 ‘너네도 그랬다’고 하는 분들 없었다. 조선 시대에 세종이 장영실 발탁했을 당시에 신하들이 ‘어휴, 훌륭하신 용인술이십니다’ 이랬겠나. 아니다. 난리였다. 왕(王)도 직접 설명하고 설득했지, 저러지는 않았다. ‘너넨 안 그래? 나도 할란다’ 이건 아니다. 인사 지적이 있으면 여러 각도로 고민하고, 신뢰를 실어줄 수 있도록 해서 좋은 결과를 내게 하는 게 맞지 않나.”
―앞으로 계획은 궁금하다. 전당대회 출마하나.
“글쎄. 씨름으로 하는 건지, 격투기로 하는 건지 봐야….”
―비대위가 정하는 룰에 따라 출마할지 안 할지 정한다는 말인가.
“7080 젊은 정치인들이 나서라는 의견이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들에게 민주당을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다. 전 대선에도 출마했고, 민주당 혁신에 대해서도 주장해왔다. 책임감 있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2024년 총선도 남았다.
“전 계약직이다(웃음). 열심히 총선 준비하겠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